전설의 고향: 구미호 (2008)

2010.03.21 07:51

DJUNA 조회 수:3888

각본: 하미선, 김재은 연출: 곽정환 출연: 박민영, 김하은, 김태호, 최당석, 박웅, 정재순, 이연두

아시겠지만 올해 여름에 개봉되는 한국 호러 영화는 [고死: 피의 중간고사] 하나밖에 없지요. 그 빈틈을 어떻게 채울까나? 행인지, 다행인지, 새 [전설의 고향] 시리즈가 나왔습니다. 그걸로 빈 자리를 채워보죠.

2008 [전설의 고향] 시리즈의 첫 편은 [구미호]입니다. [구미호]는 지금까지 한국 공포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었고 [전설의 고향]에서도 꽤 여러 번 써먹었습니다. 그러니 새로 이야기를 뽑아내기가 어려울 법도 한데, 이번 시리즈에서는 나름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나왔던 이야기와 정반대의 접근법을 취하는 것이죠. 선악의 위치를 바꾸는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사람들은 구미호의 저주를 받았다는 이씨 집안 사람들입니다. 저주를 받았다면서 이 사람들은 왜란, 호란 다 피하면서 떵떵 거리며 잘 살아왔지요. 그건 구미호가 될 가능성이 있는 여자아이들을 미리 사전 제거하는 치밀함 때문이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초경을 맞으면 일종의 테스트를 받고 구미호가 될 게 분명하면 죽여버린 뒤 시집 갔다고 속이죠. 참으로 천벌받을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이 에피소드의 주제는 조선시대 양반들과 그들의 성차별적인 관습에 대한 경멸과 증오입니다. "너네들이 얼마나 재수없고 더러운 놈들이었는지 아느냐!"로 요약할 수 있겠죠. 이 이야기의 시대배경이 19세기 중엽이고 에필로그가 서구문명이 들어오고 일본제국주의의 마수가 현실화되는 20년 뒤까지 이어지므로 여기엔 보다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주제도 추가됩니다. 한 마디로 과거사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뒤끝이 안 좋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꿀꿀한 이야기죠.

그렇다면 호러물로서는 어떤가? 가문 남자들이 주인공일 때는 괜찮습니다. 공포보다는 증오가 올라오지만 그게 이야기의 목표죠. 하지만 박민영 구미호의 역습이 그려지는 후반부는 많이 약합니다. 하얀 분칠을 하고 통통한 아홉 꼬리를 팔랑거리는 구미호의 분장은 나름 창의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설명 묘사가 부족하고 뒤가 너무 짧습니다. 그리고 호러 효과가 굉장히 나빠요. 나름 창의적이라고 했지만 저 분장은 몇 초만 지속되어도 약발이 떨어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박민영 구미호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장면들은 그냥 실소감이에요. 자신이 없으면 그냥 보여주지 말란 말입니다. 다음에 새 [전설의 고향] 시리즈를 만들 생각이라면 일단 발 루튼의 영화들을 한 번 마스터하시길. 요샌 DVD 전집도 나와서 구하기 쉽습니다. 절반 정도만 흉내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올 겁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계속 거슬리는 건 HD 디지털의 날카롭고 즉물적인 질감입니다. 암만 생각해도 이런 화면은 [전설의 고향]과 어울리지 않아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08/08/06)

기타등등

처음 살해당하는 구미호 아가씨의 귀신은 참 예쁘더군요. 특히 죽어가는 엄마한테 피눈물 흘리며 다가올 때.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