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터튼과 브라운 신부

2010.02.05 22:00

DJUNA 조회 수:3703

1.

길버트 키스 체스터튼의 이 성공적인 탐정과 시리즈에 대한 대중의 다소 안이한 편견이 있는데, 그것은 체스터튼이 카톨릭 작가이고 브라운 신부가 신부 탐정이기 때문에, 이 시리즈가 인생과 신앙에 대한 대중적인 이야기를 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 시리즈를 읽게 되면 당연하게도 방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체스터튼이 카톨릭 작가가 아니라는 말도 아니고 브라운 신부가 신부복을 입은 홈즈라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을 읽기 위해 서는 체스터튼이 인생보다는 철학에 대해, 신앙보다는 신학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들에는 이성에 대한 믿음과 이해라는 중심 테마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2.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제 1작인 [푸른 십자가]는 그런 면에서 모범적인 예가 됩니다. 일단 간단한 줄거리를 볼까요? 프랑스 경찰 바랑탕은 괴도 프랑보우를 뒤쫓아 파리에서 런던으로 왔지만 아무런 단서도 없습니다. 그러던 그는 이상한 행동을 계속 되풀이 하는 두 신부를 만나게 되고 이상하게 생각한 형사는 그들의 뒤를 쫓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들은 푸른 십자가를 가진 브라운 신부와 프랑보우로, 프랑보우가 십자가를 훔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챈 브라운 신부가 형사를 거기까지 유인해온 것입니다.

이 단편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브라운 신부와 가짜 신부의 신학 토론입니다.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장면을 읽으면 프랑보우가 가짜 신부라는 것을 알게 되며 체스터튼이 왜 카톨릭을 선택했는지 알게 됩니다. 이 대화에서 브라운 신부가 말하는 것은 바로 카톨릭이 이성의 종교이며 심지어 신마저도 이성의 한계 안에 갇혀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윤리적 가치 역시 이성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 브라운 신부의 소설에서는 개신교에 대한 야유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부러진 칼]과 [신의 철퇴]가 그렇지요. 이 두 작품의 범인들은 모두 경건한 신자인데, 이성과 무관한 신앙의 광기로 인해 엉뚱한 길로 빠져들고 말지요. 이성의 도움을 받아 믿음을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믿음은 위험하기까지 한 것이 아닐까요?

3.

체스터튼은 결코 논리와 신앙의 전사는 아닙니다. 이성과 논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처럼 브라운 신부는 이성과 논리의 한계를 알고 있지요. 엘러리 퀸의 소설들이 늘 논리적인 파탄에 빠지는 이유는 그가 논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논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만이 논리에 모든 것을 의지하거나 논리 자체를 배격하는 법입니다.

브라운 신부는 종종 야유하듯 명백한 추론으로 보이는 가설을 내놓은 뒤 깨부수며 좋아하지요. 대표적인 예가 제가 늘 인용하는 걸작인 [이즈라엘 가우의 명예]입니다. 이 작품은 본격 미스테리를 연구하고 싶은 분들은 마땅히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다시 되풀이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브라운 신부는 어떻게 사건을 푸는 것일까? 미스 마플처럼 그의 인생 경험에서 진상을 끌어내는 것일까? 천만에요. 브라운 신부의 걸작들에서 브라운 신부의 인생 경험이 어떤 도움을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사실 정반대입니다. 브라운 신부가 훌륭한 탐정일 때는 그가 경험을 무시하는 '시인인 학자'일 경우입니다. 진짜 위대한 탐정답게 그는 직관을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그의 직관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 직관입니다.

[브라운 신부의 동심]이란 그의 첫번째 단편집의 제목은 핵심을 찌르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선입견도 개입시키지 않고 대상을 봅니다. 그것은 시인의 눈입니다. 그러나 그런 자유 상태에서 그의 이성은 최고로 활동하며 무엇보다 경험의 졸렬한 결합인 상식을 무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체스터튼이 만들어낸 이상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진실을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상함에 방해받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브라운 신부의 아름다운 패러독스들이 탄생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달했습니다.

4.

체스터튼의 소설은 '관념 소설'입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사변과 패러독스를 늘어놓기 위한 수단이며 우화입니다. 그리고 브라운 신부 시리즈에 시적인 아름다움을 부여하는 것 역시 그 사변들입니다. 체스터튼은 퍼즐 추리 소설이라는 형식이 가장 철학적인 문학형태라는 것을 움베르코 에코보다 거의 한 세기 이전에 인식한 인물입니다. 나중에 이러한 요소들은 그의 위대한 후계자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에 의해 계승되게 됩니다. (9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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