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커플 (2006)

2010.03.20 22:17

DJUNA 조회 수:3811

각본: 홍정은, 홍미란, 연출: 김상호 출연: 한예슬, 오지호, 김성민, 박한별, 김광규, 김정욱, 이미영, 정수영, 이상이

파프리카 [환상의 커플]의 원작은 게리 마샬의 1987년작 [Overboard]. 시리즈는 이 영화의 비디오 출시제인 [환상의 커플]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어요. 시리즈의 작가인 홍자매는 도입부와 설정만 빌렸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래도 설정의 힘이 워낙 강한 작품이니, 원작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지요.

듀나 영향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마샬의 영화는 리나 베르트뮬러의 오리지널 [스웹트 어웨이]의 영향을 분명 받았겠죠. 물론 보다 전통적인 미국 스크루볼 코미디, 특히 프랭크 카프라의 영향도 받았을 거고요. 이 영화의 기본 설정은 [어느 날 밤에 생긴 일]에 베르트뮬러의 노골적인 SM 요소를 첨가한 것에 가까워요. 버릇없는 상류 사회 여성과 세상의 쓴 맛을 아는 노동자 계급 남자가 만나서 충돌하다가 사랑에 빠지는데, 거기에 약간의 변태스러운 독기가 들어있는 거죠. 물론 어쩔 수 없는 할리우드 가족 영화라 모두에게 좋은 해피 엔딩으로 맺어지지만요.

파프리카 이 영화는 1992년에 인도에서 [Ek Ladka Ek Ladki]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되었지요? 홍자매가 이 영화를 보았을 것 같지는 않지만, 남자 주인공의 네 아들이 세 조카로 바뀐 건 인도 리메이크 영화와 설정이 같아요.

듀나 네 아들을 둔 중년의 홀아비를 한국 미니 시리즈 주연으로 삼는 건 곤란하고, 남자 애 넷보다는 셋이 다루기 편하니까요. 짝도 맞아 보이고. 전 그냥 우연인 것 같더라고요.

파프리카 홍자매 버전 [환상의 커플]이 가진 가장 노골적인 장점은 그 길이지요. 미니 시리즈를 따라가다보면 이런 설정을 왜 2시간 안쪽의 극장용 영화로 낭비했는지 상상이 안 갈 정도거든요. 이야기를 사방팔방으로 펼칠 소재와 설정들이 굉장히 많아요. 하긴, 이것도 콜롬부스의 달걀과 같아서 직접 보기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기도 해요.

듀나 그 중 가장 생산적인 건 안나 조/나상실과 장철수의 관계죠. 원작 영화에서 이들의 관계는 그냥 일방적이에요. 조안나 스테이튼이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후로 딘 프루잇은 조안나 위에서 군림하죠. 그 사람을 납치하고 속이고 부려먹고 길들여요. 딘은 나중에 조안나와 사랑에 빠져 지배자의 위치에서 내려오지만 그건 순전히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에 맞추기 위해서에요.

하지만 홍자매 버전에서는 두 주인공들의 관계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아요. 장철수는 단 한 번도 딘 프루잇이 누렸던 지배자의 위치에 오른 적이 없어요. 일단 안나 조에게 나상실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름을 붙여주고 일을 맡기면 150만원 정도의 인건비를 뽑을 수 있을 거라는 간단한 계획부터 먹히지 않았죠. 나상실은 집안 일을 제대로 하기는 커녕 계속 문제를 일으키며 장철수의 돈을 까먹으니까요. 게다가 나상실은 단 한 번도 장철수에게 고분고분하게 군 적이 없어요. 늘 대들고 속이고 게으름 피우고 명령을 회피하죠.

그러는 동안 먼저 길들여지는 건 장철수예요. 아직 자기가 형식적으로나마 우위에 있는 상황에서도 장철수는 은근슬쩍 마님을 사랑하는 마당쇠처럼 굴기 시작해요. 그것도 자발적으로. 16부 클라이막스에서 장철수가 안나 조에게 하는 고백을 들어보세요. 그건 "마나님, 무슨 명령을 내리셔도 말없이 복종하겠나이다!"를 로맨스의 언어로 번역한 것에 불과해요. 이 과정은 꽤 섬세해서 2시간의 러닝타임만 가지고는 충분히 다루기 어려워요.

파프리카 그래도 후반부에선 나상실은 꽤 능력있는 가정주부로 변신하지 않나요? 더 이상 세탁기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설거지나 청소의 기술도 익혔고 애들도 잘 다루고요. 애들에게 직접 설거지를 시킬 정도까지 발전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듀나 그런 나상실의 모습이 보여지는 건 14부죠. 이미 장철수가 자기 범죄를 고백해서 이들의 역학 관계가 다시 바뀐 지 한참 뒤의 일이에요. 한마디로 나상실은 그냥 알아서 적응한 거죠.

하여간 사정은 바뀌지 않아요. 안나 조건 나상실이건, 우리의 주인공은 끝까지 마나님이죠. 장철수는 어떻게든 이 위치를 바꾸어보려 했지만 실패해요. 그가 할 수 있는 건 정직하게 다가가 일대일로 주인공을 사랑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게 장철수가 올라갈 수 있는 최상의 위치죠.

파프리카 저랑 의견이 조금 다르네요. 전 나상실을 일종의 소공녀 캐릭터로 봤거든요. 아무리 장철수가 딘 프루잇처럼 성공적인 지배자 노릇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나상실에게 떨어진 고난은 만만치 않아요. 기억도 잃었고, 익숙하지 않은 가사노동에 시달려야 하고, 싫어도 달리 갈 데가 없어요. 자신을 단두대에 오르는 마리 앙트와네트와 비교했던 세라 크루와는 달리 나상실의 사태판단은 훨씬 현실적이지만.

하여간, 전 이 사람이 "기죽으면 안 돼. 기죽으면 빌붙을 수가 없잖아"라고 독백할 때 뭉클했어요. [소공녀]에서 그랬던 것처럼 나상실의 매력 일부는 지상세계에서 떨어진 뒤에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도도한 공주님이 드문드문 노출시키는 연약함에 있어요. 이건 소위 '캔디' 캐릭터와는 달라요. '캔디들'과는 달리 나상실은 자신의 피해자 위치를 과장하지 않지요.

듀나 나상실은 원작의 조안나보다 훨씬 다채로운 캐릭터니까요. 영화 내내 질질 끌려다니는 조안나와는 달리, 나상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이고 이야기의 거의 모든 요소들이 나상실을 공주님처럼 비추어주는 데 활용됩니다. '한예슬 8종 세트'니 뭐니 하는 것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죠. 거의 매 에피소드마다 나상실은 시청자들의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이상 해요.

소위 '소공녀' 위치도 생각보다는 복잡해요. 나상실의 살짝 드러나는 연약함이 캐릭터의 매력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건 양념에 불과해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안나 조와 나상실이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단지 안나 조는 자신의 매력이 완전히 드러날 수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안나 조는 자기 세계에서 여왕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애교를 떨 필요도 없고 남들의 비위를 맞추어주어야 할 필요도 없지요. 주변 사람들에게 안나 조는 그냥 무례하고 무섭고 인간성 더러운 존재일 뿐입니다.

이 사람이 나상실이 되어 전혀 다른 환경 속에 던져지자 원래 이 사람이 가진 장점들이나 매력이 드러납니다. 그중 일부는 그냥 대비효과죠. 몸빼 바지를 입은 시골 아낙네가 도도한 상류 사회 귀부인처럼 굴고 있으니 튀어 보이지 않을 수 없지요. 자신의 감정을 감추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또는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속마음이 비교적 쉽게 노출되는 것도 무척 귀엽고요.

다른 면들은 그냥 장점입니다. 나상실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영리하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고 태도와 행동이 무척 매력적인 예쁜 사람이죠. 안나 조의 주변 사람들이 이걸 눈치채지 못한 건, 그 사람이 자신의 밥줄을 쥐고 흔드는 무시무시한 마녀였기 때문입니다. 볼 여유가 없었을 거예요. 그런 걸 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접근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하지만 그런 위협을 받지 않는 철수네 이웃들은 사정이 다르죠. 한동안 강자 수준의 '미친 년' 소리를 들었으니 오히려 더 관대할 수도 있었을 거고요.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나상실과 가장 먼저 친구가 된 사람이 강자라는 건 여러 모로 재미있습니다. 강자는 '동네 미친 년'이지만 그 동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운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선입견 없이 세상을 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어떻게 보면 나상실이 태어난 건 장철수가 그 이름을 지어주었을 때가 아니라 강자의 선입견 없는 직설적인 시선이 그 사람에게 멎었을 때일 겁니다. 결국 타자의 시선은 우리 자신만큼 우리의 정체성의 확립에 중요해요.

파프리카 따지고 보면 장철수도 처음부터 눈치채지 못한 건 마찬가지지요. 장철수에게 안나 조는 하나의 스테레오타입입니다. 부당한 짓을 하고도 자신의 재산과 권력을 이용해 멀쩡하게 빠져나가는 기득권 계층이에요. 장철수가 안나 조에게 품고 있었던 증오는 순전히 계급적인 것입니다. 그건 안나 조가 자기보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과는 상관이 없어요. 안나 조의 재산은 의미있는 비교를 하기엔 지나치게 많고 자신 역시 그렇게 가난한 편은 아니니까요. 장철수에게 안나 조는 일종의 추상적인 분노의 대상입니다.

안나 조에게도 장철수는 스테레오타입입니다. 이런 계급 사람들이 막연히 품고 있는 블루 컬러 계급 남성에 대한 선입견이 그대로 반영되었지요. 그는 무식하고 공격적이고 음흉합니다. 특히 성적인 위협은 노골적이에요. 아무리 그게 운 나쁜 우연 때문에 발생한 오해라고 해도요.

그래도 일단 둘이 모든 예의와 가면을 집어 던지고 싸우기 시작한 뒤부터는 의미있는 상호작용이 일어납니다. 속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고 서로를 독립적인 인격체로 받아들이지요. 두 사람은 여러 모로 운이 좋았는데, 초반 에피소드의 피튀기는 대결이야말로 비교적 자연스럽게 서로의 속내를 열어주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안나 조의 남편 빌리는 끝까지 그 단계까지 가지 못했어요. 안나 조가 두르고 있는 외피를 깨기 위해서는 예의바른 접근법 이상이 필요 했나 봐요.

듀나 모든 좋은 주인공들은 주체와 대상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1) 그들에게 공감하거나, (2) 그들을 대상화한 뒤 사랑에 빠지거나 하죠. 이들 중 하나만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볼만 하죠. 시청자들에게 나상실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요?

제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인터넷에서 가끔 나상실이 완벽한 남성 판타지라고 우기는 글들을 봤기 때문입니다. 전 그 사람들의 생각이 왜 그렇게 단순한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나상실은 이성 시청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캐릭터가 전적으로 대상으로 창조되었다고 우기는 건 좀 웃기지 않습니까? 왜 한 드라마의 캐릭터가 매력적이면 그건 곧 이성 시청자들의 재산이 됩니까? 나상실 캐릭터는 여성들에겐 어필하지 않습니까? 심지어 전 이 시리즈의 시청률이 인기보다 낮은 게 남성 비율이 높아서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게 그렇게 믿겨지지도 않거니와, 그렇다면 비슷한 시간대에 방영되는 [대조영]의 시청률은 어떻게 설명한단 말이죠?

파프리카 글쎄요. 나상실은 김삼순이 아니지요. 완벽한 공감의 대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는 아닙니다. 그러기엔 우리와 너무 먼 사람이니까요. 대부분 시청자들은 일차적으로 나상실을 대상화해 바라볼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그 사람의 입장이나 대사에 공감한다고 해도요.

그 온갖 불편한 장식에도 불구하고 나상실은 우리보다 나은 사람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나상실은 당연하게 하지요. 이 사람에게는 탐관오리를 몰아내는 암행어사와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일상생활의 유쾌하지 않은 권력구조와 습관을 경쾌하게 깨거나 거부하거나 그 정체를 밝히지요.

그 사람에게는 정말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안나 조는 자신 이외의 모든 사람들을 깔보았지만 사람들의 (주로 직업적인) 능력과 가치는 정확히 판단했지요. 이 버릇은 나상실이 되어 남해 마을로 내려온 뒤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나상실은 일단 어떤 사람의 가치를 분석해서 이해한다면 자신과 남의 고정관념에 그렇게까지 얽히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 상황을 받아들이거나 그 지식을 이용하지요. 나상실이 장철수의 조카들을 그렇게 쉽게 다루었던 것도 그 때문입니다. 오유경의 의도와 속내를 그처럼 정확하게 꿰뚫어볼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지요.

듀나 '꽃다발' 오유경은 순전히 '청순가련형' 한국 멜로드라마 여성 주인공들을 풍자하기 위해 창조되었죠?

파프리카 네, 긴 치마 입고 자전거를 모는 등장 씬부터 소위 '포카리스웨트' 이미지를 그대로 빌려왔잖아요. 유경에 대한 나상실의 촌평들은 그대로 기존 한국 멜로드라마의 공식에 대한 야유로 연결됩니다. 그런 사람들의 행동은 내숭과 음흉함으로 이해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오히려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하는 지 알고 그 음흉함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유경 쪽이 더 솔직하지요. 이는 그런 고정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여 현실세계에서 인공적으로 재생산하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야유이기도 합니다. 후자 쪽에 더 힘이 들어갔을 거예요. 드라마 캐릭터들을 미워해봤자 한계가 있으니까요.

듀나 그런 면에서 나상실은 사람들이 평상시엔 직접 대 놓고 못하는 말을 시원스럽게 대신 해주는 '언니' 같은 느낌이 있습니다.

파프리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짜장면, 오징어, 막걸리, 파스, 전기장판과 같은 서민적인 취향에 하나씩 빠져드는 나상실의 모습에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물론 위에서 세련되게 폼잡고 있던 상류사회의 귀부인이 얼굴에 짜장면을 잔뜩 묻히고 먹는 모습은 쌤통이기도 하고 그만큼이나 귀엽기도 합니다. 남해 사람들의 가식없는 소박한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공적인 기능도 있고요. 하지만 전 여기에 "언니도 이런 걸 좋아해!"식의 순진무구한 우쭐거림도 녹아 있다고 봅니다. 시리즈에서 나상실은 이들의 가치를 정식으로 '인증'합니다.

듀나 나상실에 비하면 장철수는 단순합니다. 시리즈를 계속 보다보면 장철수에 대해 이전에 몰랐던 정보들이 하나씩 나오긴 해요. 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단순합니다. 1편의 장철수와 16편의 장철수는 꽤 다르지만, 그건 그가 외부의 영향에 의해 변화했기 때문이지, 원래부터 복잡한 무언가를 안에 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그의 역할은 나상실의 행동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그의 위치는 이중적입니다. 시청자들이 배우 오지호 또는 캐릭터 장철수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동안에도 그의 기능은 여전히 그들을 대신해 나상실이라는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점을 제공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상실에 대한 장철수의 반응은 저에게 은근히 익숙합니다. 인터넷 고양이 사이트나 카페에서 언제나 듣던 소리거든요. 나상실에 대한 장철수의 절규, 욕설, 비명은 귀여운 고양이를 가진 주인들이 방문객들을 염장지르기 위해 올리는 자랑섞인 게시물들과 내용, 형식 면에서 거의 동일합니다. 욕같이 들리지만 사실 예찬이고 행복한 비명인 거죠. 물론 고양이 주인들과는 달리 시리즈 초반의 장철수는 진짜 고통스러워하는데, 그래야 시청자들의 SM적인 쾌락이 극대화되기 때문입니다.

파프리카 장철수가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건 순전히 돈 때문이지요. 나상실은 장철수의 돈을 계속 날리면서 그의 통점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재미있지 않나요? 이 시리즈에서 돈은 권력잡기라는 보다 중요한 주제의 기능적인 도구에 불과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주인공 역할로 전면에 등장하는 경우는 거의 없죠. 안나 조의 돈은 장철수에게 위협이 되지 못하고, 빌리는 장철수에게 뇌물을 먹이는 데 실패합니다. 심지어 장철수 자신이 돈을 잃었을 때도 돈 자체보다는 그 돈을 잃었을 때 느끼는 고통과 상실감이 더 중요하고요. 결정적으로 오유경에게, 안나 조가 부유한 상속녀라는 사실은 나상실을 '철수오빠'로부터 쫓아내는 무기지요.

듀나 빌리의 경우는 아니죠. 그는 진심으로 돈에 대해 걱정합니다.

파프리카 그건 그가 이 시리즈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안나 조는 거부이고, 아무 것도 없는 나상실은 잃을 게 전혀 없으며, 장철수는 자기 가게와 은근히 묵직한 재산이 있습니다. 심지어 오유경에게도 지금까지 익숙해진 삶을 이어갈 수 있을만한 능력과 직장이 있고요. 그들은 상대적으로 돈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하지만 빌리의 경우는 사정이 달라요. 처음부터 끝까지 돈에 얽혀 있지요. 그에게도 자기 재산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익숙해진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겠지요.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계속 장애물을 만나 걸려 넘어지는 것도 바로 그 돈 때문입니다. 한참 방황하던 그가 아내를 되찾으려 결심한 뒤에도, 돈은 솔직함에 방해가 되지요.

듀나 15부에서 오유경과 안나 조의 대사는 그래서 재미있죠. 오유경이 기억을 되찾은 안나에게 "돈 많은 남편이 있어서 그렇게 오만하게 굴었구나?"라고 말하면, 안나 조는 "네가 모르는 게 있는데, 그 돈은 전부 내 거거든?"이라고 대답하죠. 이건 처음부터 돈 이야기, 돈자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돈과는 거의 상관이 없어요. 중요한 건 안나 조에게 남편을 떠나 장철수를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느냐는 거죠.

[환상의 커플] 대사가 대부분 그래요. 늘 조금씩 뒤틀려 있고 어긋나 있고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없지요. 많이들 [환상의 커플]이 내숭 떨지 않는 시리즈라고 착각하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16부작인데도, 나상실과 장철수는 13부 마지막에야 키스를 하고 14부에 가서야 한쪽이 다른 한쪽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요. 그것도 전화로요. 거기까지 가는 동안 그들은 서로에 대한 호감을 정반대의 방식으로 표출해요. 은근히 진심에 가까워지면 잽싸게 말을 바꾸고요. 다들 수줍어 죽으려 그래요.

대표적인 예가 8부의 유명한 '나상실 박치기'인 것 같군요. 폭풍 때문에 죽은 줄 알았던 장철수가 돌아와서 울먹이는 자기를 놀려대자 나상실은 "죽어랏! 장철수!"라고 외치면서 박치기를 하죠. 그건 제가 최근 몇 년 동안 본 것들 중 가장 사랑스러운 애정 표현이었어요. 나상실의 애정표현은 동거인의 팔다리를 발톱으로 긁어대는 고양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어요. 아프지만 정말 사랑스럽죠.

파프리카 그에 비하면 오유경은 전통적인 여자주인공처럼 행세해요. 하늘하늘 청순가련형처럼 굴면서 남자를 꼬시는 거예요. 그런데도 오유경은 말과 행동이 네 명의 주인공들 중 가장 솔직해요. 아마 다른 시리즈에서는 숨겨져 있던 매커니즘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오유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가처럼 행동해요. 심지어 실연당할 때도 그래요. 그에 비하면 나상실은 아마추어예요. 투박하고 거칠고 속내를 언제 드러내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웃기는 건 그런 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거지만요. 사실 연애물에서 너무 정통적으로 굴면 재미없잖아요. 진짜로 재미있는 연애물 주인공들은 오히려 연애물 주인공처럼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그게 오히려 정통적인 규칙이지요.

듀나 오유경에게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부분은 그 사람이 주인공처럼 생겼으면서 악역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아마 그래서 별 것 아닌 위치에도 불구하고 오유경이 실제 이상으로 위협적으로 보이는 거겠죠. 장르 공식에 맞추어 보면 나상실은 중간에 떨려나가는 조연 같고, 오유경이 진짜 주연 같거든요. 그 오랜 습관 때문에 시청자들은 나상실 쪽을 진심으로 걱정하게 되지요. 오유경 자체엔 어떤 관심도 갖지 않으면서도요.

파프리카 그래도 오유경은 결말이 좋더라고요. 결말만 보면 가장 발전한 캐릭터잖아요. 로맨티시즘의 기만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기 힘으로 성공한다는 새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박수쳐 주고 싶어요. 아마 안나 조에게 남자를 빼앗긴 뒤로 작전을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했겠지요.

안나 조의 남편 빌리 박도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지요. 시리즈 내내 악역의 위치에서 악역처럼 굴지만 정작 악당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거든요.

듀나 주인공과 악당을 가르는 건 카메라와 캐릭터 사이의 거리이지, 행동의 차이가 아니죠. 게다가 빌리 박은 사악한 인물은 아니잖아요. 그 사람의 가장 큰 단점은 우유부단함과 나약함이죠.

파프리카 [환상의 커플]을 적당히 편집하면 빌리 박을 주인공으로 한 완결된 러브 스토리가 하나 나올 수 있을 거예요. 오래 전에 아내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린 남자가 기억을 잃고 다른 남자의 곁에 있는 아내를 보면서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사랑을 다시 깨닫는다는 이야기 말이에요.

듀나 그 사람 이야기도 자기가 마음만 먹었다면 잘 풀릴 수 있었을 거예요. 안나 조에게 돌아갈 수는 없어도 멋진 제3자가 되어 퇴장할 수는 있었겠지요. 역시 그 우유부단함이 일을 망쳐 버렸지요. 아마 그 사람은 영영 행복해질 수 없을 거예요. 자신이 매저키스트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 상태가 자신에게 최상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파프리카 계주와 공실장의 러브 스토리도 언급해야 할 것 같네요. 이들의 이야기는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기존 한국 멜로드라마의 패러디지요. 심지어 이 이야기는 연결될 필요도 없어요. 특정 장면들을 패러디하는 것으로 충분하니까요. '사돈의 팔촌' 에피소드는 너무 노골적이라 보면서 한참 웃으면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더라고요. 하지만 풍자의 방향은 정확했지요. [환상의 커플]은 기존 멜로드라마의 재료를 그대로 쓰고 스토리도 대충은 따라가면서 부분부분에서 공식을 깨트리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니, 이런 순수한 패러디의 삽입은 자연스러워요. 오유경의 캐릭터도 그렇고 계주와 공실장의 이야기도 그렇고.

듀나 이 시리즈에서 가장 덕을 본 건 한예슬인데, 재발견이라고 떠드는 건 좀 그렇죠. 한예슬의 연기 스타일이나 연기하는 캐릭터는 [논스톱 4] 때와 크게 다를 게 없어요. [논스톱 4]의 예슬이나 [환상의 커플]의 안나 조/나상실은 모두 자존심과 싸가지가 하늘을 찌르고 조금은 외롭고 인기 없지만 은근히 속정이 깊은 부잣집 공주님이지요. 안나 조가 더 싸늘하고 무섭지만, 그건 한 사람의 캐릭터가 둘로 갈라졌기 때문이고요. 배우로서 한예슬의 테크닉도 크게 늘지는 않았어요. 특히 발성 문제는 여전하지요.

그러나 시리즈를 보다보면 거기에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는 않게 돼요. 한예슬의 배우로서의 단점도 고스란히 캐릭터의 개성으로 전환되는 거죠. 그냥 안나 조/나상실이 저렇게 행동하고 말하는 거려니... 하고 생각하게 돼요. 게다가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점점 테크닉도 늘더군요. 특히 15부에서는 전형적인 멜로드라마 캐릭터를 연기해도 굉장히 자연스럽더라고요.

배우의 기술적 단점이 캐릭터의 개성에 묻힌다면, 장점은 반대로 부풀어요. 이 사람의 이국적인 고양이와 같은 예쁜 얼굴, 은근히 능한 슬랩스틱과 액션 연기, [논스톱 4] 때 갈고 닦은 싸가지 연기의 기술은 캐릭터에 생생한 에너지를 넣어주죠. 계획대로 엄정화가 했다면 이렇게 반짝거리는 느낌은 안 났을 거예요. 지금처럼 사랑받기엔 너무 현실적인 캐릭터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죠.

파프리카 오지호는 그냥 어울리는 역할을 잘 맡은 것 같아요. 장철수 역할엔 엄청난 연기력은 필요없어요. 그냥 한예슬의 연기에 정직하게 반응만 해주면 돼요. 오지호도 그렇게 유들유들한 배우는 아니지만 그 딱딱한 느낌이 캐릭터와 맞더라고요. 사랑의 감정이 낯설고 구애에 어색한 보통 남자요.

따분한 캐릭터에 갇힌 박한별을 제외하면 조연들 역시 확실하게 본전을 뽑고 있어요. 특히 빌리를 연기한 김성민은 정말 그럴싸해요. 아마 '재발견'이라는 표현은 이 사람에게 해당될 거예요. [인어 아가씨]의 느끼 왕자님에게 이런 역이 이처럼 잘 어울릴지 누가 알았겠나이까. 하긴, 이런 역이 더 정확하고 진실을 찌르긴 하지요. 고전적인 멜로드라마 여자 주인공들보다 오유경 캐릭터가 현실적인 것처럼. 강자 역의 정수영, 공실장 역의 김광규, 계주 역의 이미영도 역을 여유있게 즐기면서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꽃순이나 프린세스를 연기한 동물배우들도 그럴싸했고 애들도 귀여웠어요.

듀나 전 각본과 연결된 몇몇 관습적인 연기들이 거슬리더군요. 예를 들어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독백들을 많이 하는 걸까요? 현실 세계에서 그런다면 다들 미쳤다고 하겠죠. 하긴 처음부터 사실성은 포기한 시리즈이긴 하지만.

더 거슬리는 건 음악이었어요. 특히 연애 장면이 나올 때마다 무드잡으며 등장나오는, '워워'거리는 노래들에는 적응이 안 되더군요. 이 노래들은 처음에 오유경이 나오는 장면들에 집중적으로 쓰여서, 한동안 전 이들을 그냥 미니 시리즈 관습에 대한 야유로 받아들였어요. 물론 나상실과 관련된 장면에도 쓰이기 시작할 때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야유섞인 각본과 연출에 어울리지 않게 이 시리즈의 음악은 너무 순진하고 직설적이에요.

결말 역시 그렇게 만족스럽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순수한 멜로드라마로 꽉 찬 15부는 오히려 괜찮았어요. 하지만 16부는 그냥 적당히 타협한 듯 하더군요. 하긴 마지막 방영일 이틀 전에 최종 원고가 나왔고 당일까지 촬영한 작품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이럴 때는 소위 '감독판'을 기대해야 할 텐데, 그런 게 나올지는 모르겠군요. 저 같으면 미련이 남아서 방영이 끝난 뒤에도 며칠 동안 재촬영과 재편집을 할 텐데 말이죠.

파프리카 전 상실이와 철수가 연애하는 모습보다는 둘이 현실적인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했는지 보고 싶었어요. 둘은 그렇게 쉽게 결합할 수 없지 않나요? 나상실은 자신의 재산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럴 이유도 없고요. 그렇다면 언제나 자신의 힘으로 재산을 쌓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던 장철수의 자존심과 위치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나상실의 새 라이프 스타일은 어느 선으로 조절되었을까요? 로맨스도 좋지만 전 그 타협의 지점이 어디인지 궁금했어요. 그걸 보여주었다면 좋았을 거예요.

듀나 그래도 해변의 분위기는 괜찮더라고요. 농담의 힘은 좀 떨어졌지만.

정리하자면, [환상의 커플]은 저에게 일종의 짧은 연애와 같은 경험으로 남을 것 같아요. 재미있는 농담도 많았고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한예슬이 연기한 나상실 캐릭터의 엉뚱한 매력에 의지하고 있었으니까요. 8주 동안 [환상의 커플]을 즐겼다는 건 그 기간 동안 나상실을 사랑하다 떠나보낸 것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말이에요. 해피 엔딩이라 아쉬울 건 없지만 장철수가 그 사람을 앞으로 독점할 걸 생각하니 좀 얄밉네요. (06/12/04)

기타등등

이 시리즈의 영어판 제목은 좀 잡다하죠. 오프닝 크레딧에서는 [Couple or Trouble]을 공식 영어 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Fantasy Couple] 또는 [Couple of Fantasy]라는 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환상의 커플]을 직역하면 [Fantastic Couple]이 더 적절할 것 같지만... 뭐, 이미 늦은 것 같아요. 이런 혼란을 대비해 처음부터 영어 제목을 분명히 하고 홍보했다면 좋았죠. 방영 하루 만에 전세계에 파일이 떠도는 시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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