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만의 이야기 Des contes d'Hoffmann (1993)

2010.03.20 23:16

DJUNA 조회 수:2974

연출: Louis Erlo 출연: Daniel Galvez-Vallejo, Natalie Dessay, Isabelle Vernet, Jacques Verzier, Helene Jossud, Jose van Dam, Barbara Hendricks, Gabriel Bacquier, Brigitte Balleys, Lisette Malidor

제목을 주의하세요. [Les Contes d'Hoffmann]가 아닌 [Des contes d'Hoffmann]입니다. 영어 제목은 [Some Tales of Hoffmann]이고요. 오타가 아니랍니다. 적어도 이게 이 공연에서 상영된 작품의 제목이에요.

일단 이 버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호프만의 이야기]라는 오페라에 대해 조금 알아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자크 오펜바흐의 유일한 그랜드 오페라이고 그의 미완성 유작이죠. 오펜바흐는 이 오페라가 초연되기 몇 개월 전에 죽었습니다. 피아노 스코어는 완전히 끝내놨지만 오케스트레이션이 완성된 건 프롤로그와 1막뿐이었지요. 그 뒤로 이 작품은 세월이 흐르는 조금씩 변형되어 수많은 버전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종종 2막과 3막의 순서가 바뀌기도 하고 베네치아 매춘부인 줄리에타가 나오는 3막(또는 2막)은 아예 삭제되기도 했어요. 원래 있던 아리아가 빠지기도 하고 다른 오페라에서 아리아를 들여오기도 하죠. 레치타티보가 그냥 대사로 교체되기도 하고요.

그러다 몇 년전 미국의 음악학자인 마이클 케이라는 양반이 새로운 버전을 내놓았습니다. 케이 말에 따르면 이 작품이 오펜바흐의 의도와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하는데, 전 모르죠. 케이의 버전은 오펜바흐의 작곡하지 않은 부분들은 들어내고 그가 작곡했지만 지금까지 방치되었거나 새로 발견된 부분들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줄리에타가 나오는 막은 안토니아가 나오는 막 다음에 나오고 에필로그에서는 스텔라도 노래를 부르죠. 가장 큰 차이점은 줄리에타가 나오는 부분이 훨씬 길어지고 새 내용이 추가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게 제가 이 버전에 대해 알고 있는 피상적인 지식이에요.

오늘 제가 이야기할 작품은 1993년 리옹 오페라에서 공연한 마이클 케이 버전 [호프만의 이야기]의 녹화실황입니다. 켄트 나가노가 리옹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고 루이 에를로가 연출했지요. 나중에 나가노는 거의 비슷한 캐스팅을 모아서 1996년에 같은 버전의 앨범을 냈습니다. DVD 버전은 대사 버전이지만 CD는 레치타티보 버전이에요. 케이는 두 버전 모두를 내놓았지요.

음악만 보았을 때, 이 DVD의 공연을 탓하기는 어렵습니다. 켄트 나가노는 날렵하고 명료한 음악을 들려주고 나탈리 드세, 호세 판 담, 가브리엘 바퀴에, 바바라 헨드릭스와 같은 성악가들로 무장한 캐스팅도 빛을 발합니다. 주연인 다니엘 갈베스-바예호의 인상이 조금 약하긴 해도 그가 나쁜 성악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이 DVD가 악명높은 건 켄트 나가노보다는 연출자인 루이 에를로 때문입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낯선 버전을 더 낯설게 만들어버렸어요.

일단 그는 막 구분을 없앴습니다. 중간 휴식 없이 2시간 동안 한 무대에서 논스톱으로 몰아붙이는 작품을 만들었죠. 이제 뉘른베르크의 술집도 안 나오고 각 막마다 다른 도시로 넘어가지도 않습니다. 공연 내내 무대에 서 있는 건 철도망을 박은 흉물스러운 벽이고 그마저도 3막부터는 사라져 버리죠. 호프만이 있는 곳은 지옥과 정신병원과 감옥을 조금씩 섞은 듯한 곳으로, 주변에는 몽유병에 걸린 듯한 엑스트라들이 휘청거리면서 돌아다닙니다. 그들은 정말로 정신병원의 환자들일 수도 있고 호프만의 미친 두뇌 속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기억의 잔재들일 수도 있지요.

이런 아이디어는 분명 인상적입니다. 한번쯤 시도해볼만도 하고요. 예를 들어 나탈리 드세가 연기한 올랭피아에게 다른 버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강렬한 느낌이 있습니다. 이 버전에서 드세는 전통적인 자동인형 대신 막 팔다리에서 일리자로프를 떼어낸 가녀리고 약간 맛이 간 정신병자를 연기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참 괴상하지만 그만큼 신선하기도 하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적응하기도,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에를로가 전통 버전으로 이런 아이디어를 시도했다면 관객들은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곡가의 원래 의도에 가장 가깝다고 해도 낯설 수밖에 없는 이 새 버전을 가지고 이렇게 완전히 내용을 멋대로 뜯어고친 실험을 했으니 관객들이 방황할 수밖에 없죠. 도대체 뭔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겁니다. 내용을 알고 봐도 헛갈리고 모르고 보면 더 헛갈려요.

더 큰 문제는 러닝타임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겨우 2시간짜리입니다. 엄청 짧은 거죠. 심지어 파웰-프레스버거 버전의 [호프만의 이야기]보다 짧아요. 그런데 마이클 케이 버전은 전통적인 [호프만]보다 더 길어야 한단 말이에요. 아까 제가 위에서 언급한 켄트 나가노의 앨범도 CD 세 장 짜리인 걸요. 다시 말해 리옹 오페라에서는 가장 '완결판'에 가깝다는 버전을 공연하면서 연출자의 비전에 맞추기 위해 거의 30분 정도를 잘라냈던 겁니다. 케이가 자랑스러워하는 줄리에타 부분도 난도질 당했고 스텔라도 노랠 안 불러요! 그럼 도대체 케이 버전을 선택한 이유가 뭐랍니까?

에를로 버전에 대해 아주 박하게 굴고 싶지는 않아요. 결정판 [호프만의 이야기]라는 건 원래부터 없으니까요. 우리가 영상물의 결정판으로 생각하는 파웰-프레스버거 영화판도 음악애호가들에겐 절대로 결정판은 아니죠. 하지만 암만 봐도 이건 기회를 잘못 이용한 것 같군요. 실험을 해야 할 때가 있고 안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에를로는 안 해야 될 때를 선택했어요. 그게 문제였죠. (07/04/13)

 
스텔라.

 
올랭피아.

 
안토니아.

 
무서운 벽!

 
줄리에타.


기타등등

리옹 오페라에서는 조수미가 줄리에타를 부르기도 했었죠. 이 DVD에는 나오지 않지만 96년 녹음에는 참여했어요. 그걸 들어봐야 하나. 막막하군요. 

[Les oiseaux dans la charmille]를 부르는 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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