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애더 Blackadder (1983-1999)

2010.03.17 09:28

DJUNA 조회 수:4122

출연: Rowan Atkinson, Tony Robinson, Tim McInnerny, Hugh Laurie, Stephen Fry, Miranda Richardson, Brian Blessed, Patsy Byrne, Miriam Margolyes

1.

"The Black Adder"

1983년, 코미디언 로완 앳킨슨과 작가 리처드 커티스는 BBC를 위해 [The Black Adder]라는 시트콤을 만들었습니다. 요크 왕가가 승리를 거둔 장미 전쟁 직후의 가상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는 처음에 그렇게까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작가 벤 엘튼이 가세하고 시대 배경을 엘리자베스 왕조로 옮긴 속편 시리즈 [Blackadder II]는 대성공을 거두었지요. 이후, 시대 배경을 바꾼 [Blackadder the Third], [Blackadder Goes Forth]와 같은 작품들이 이어졌습니다.

[블랙애더] 시리즈는 공식 시리즈 네 편 말고도 수많은 텔레비전, 라디오 방송이나, 무대 공연, CD-ROM과 같은 특별판들로 가득하지만, 여기서는 공식 시리즈 네 편과 특별판 세 편만을 다루기로 하겠습니다. 이게 제가 DVD로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의 전부거든요.

2.

"Blackadder II"

[The Black Adder (1983)]의 시대 배경은 장미 전쟁 직후입니다. 시리즈는 헨리 6세가 말도 안되는 거짓말쟁이였다는 가설에서 출발합니다. 리처드 3세가 사실은 조카들에게 자상한 삼촌이었고, 보스워드 전투에서 이긴 것도 사실은 요크 왕가였으며, 리처드 3세가 죽은 뒤로 장성한 조카가 리처드 4세가 되어 10여년을 통치했다는 것이죠.

'블랙 애더'는 리처드 4세의 덜떨어진 아들인 에드먼드의 별명입니다. 형편없는 소악당인 에드먼드는 형을 제치고 언젠가 영국의 왕이 될 풍운의 꿈을 꾸고 있지만 그러기엔 운과 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덜떨어진 시종 볼드릭이나 그보다 나을 것도 없는 친구 퍼시 퍼시경도 특별히 도움이 되지는 않죠. 왕좌를 향해 더듬더듬 접근하는 동안, 에드먼드는 마녀 사냥, 정략 결혼, 왕가와 교회의 충돌과 같은 중세식 사건에 말려듭니다.

[Blackadder II (1986)]의 시대 배경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입니다. 이 시리즈의 주인공 에드먼드 블랙애더는 첫번째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에드먼드 왕자의 먼 후손으로, 바보 선조와는 달리 꽤 영리하고 재기발랄한 인물입니다. 어떻게든 여왕의 환심을 사서 출세하려는 그의 계획을 가로막는 최대 라이벌은 여왕의 심복인 멜쳇 경입니다. 여왕의 변덕을 견뎌내는 동안, 그가 신세계 탐험이나 종교 재판과 같은 당시의 정세에 말려드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Blackadder the Third (1987)]의 시대 배경은 조지 3세 시대입니다. 미친 아빠를 대신해 웨일즈 공이 섭정 노릇을 하고 있고, 에드먼드 블랙애더는 그의 집사입니다. 신분이 신분이다보니 그의 비전도 조금은 현실적이 되었습니다. 냉정하고 야비한 사기꾼인 블랙애더는 멍청한 왕세자의 재산을 뒤에서 빼돌려 자기 배를 채우는 동안, 사무엘 존슨 박사나 소 피트와 같은 당대의 명사들과 대결하게 됩니다.

[Blackadder Goes Forth (1989)]의 시대배경은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에드먼드 블랙애더는 겁쟁이 영국군 장교로 그의 유일한 목표는 단 하나, 어떻게든 최전방에서 달아나 목숨을 부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정신병원과도 같은 전쟁터에서 전쟁의 피투성이 부조리함을 제대로 보고 있는 사람은 그 하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 네 편의 공식 시리즈 이외에도 블랙애더 소재를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나왔지만, 그 중 언급할 만한 작품은 다음 셋입니다.

[Blackadder: The Cavalier Years (1988)]의 블랙애더는 청교도 혁명 당시의 왕당파입니다. 그는 크롬웰에게 쫓기고 있는 찰스 1세를 어떻게든 보호하려고 하지만, 시대가 그를 도와주지 않고, 그 역시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충성스러운 인물은 아닙니다.

[Blackadder's Christmas Carol (1988)]는 [블랙애더] 버전 [크리스마스 캐롤]입니다. 하지만 방향은 완전히 반대죠. 빅토리아 시대의 선량한 상인인 에브네저 블랙애더는 크리스마스날 크리스마스의 유령을 만나 사악한 선조들과 후손들의 비전을 보는데, 그러는 동안 착하게 하는 게 아주 실속이 없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시리즈가 끝난지 10년 뒤에 나온 [Blackadder Back & Forth (1999)]는 전작들과는 달리 필름으로 찍은 텔레비전 영화입니다. 20세기의 마지막 날, 에드먼드 블랙애더 경은 친구들 앞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설계한 가짜 타임머신으로 사기쇼를 벌이려 하는데, 그게 정말로 작동해서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모험을 벌인다는 것이죠. 이 작품에서는 콜린 퍼스가 셰익스피어로, 케이트 모스가 마리안 아가씨로 게스트 출연을 하기도 합니다.

3.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Blackadder the Third"

[블랙애더]는 서서히 성장한 시리즈였습니다. 시리즈 1과 시리즈 2 사이에 3년의 갭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지요. 시리즈 1은 블랙애더와 볼드릭이라는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 인물들을 역사적 사건 속에 밀어넣는 기본 컨셉을 만들어내기는 했지만, 정작 블랙애더라는 캐릭터와 이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이 완성된 건 시리즈 2부터였습니다. 중세를 무대로 한 거칠고 무식한 코미디가 르네상스 이후를 무대로 한 위트 넘치고 냉소적인 코미디로 탈바꿈한 것도 시리즈 2부터였지요.

시리즈 1의 블랙애더는 비교적 단순한 인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헤어스타일과 막나가는 표정을 과시하는 덜떨어진 소악당이었지요. 하지만 블랙애더의 후손들은 그보다 조금은 더 영리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출세와 생존에 매달리는 소악당들이었지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던 시대의 흐름이 얼마나 바보스럽고 추악한 것인지 눈치챌만큼의 지력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리즈 1이 구시대를 배경으로 한 바보 악당의 수난기였다면, 시리즈 2부터는 평범하지만 분명한 상식의 소유자인 한 남자가 바보들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소용돌이에 끌려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블랙애더]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영국 역사의 심각한 기념비들을 무자비하게 때려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시리즈는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나 [맥베스]와 같은 고전들을 이죽거리고 희롱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이런 우상파괴의 작업은 버릇없는 12살 소녀처럼 구는 엘리자베스 1세나 덜떨어진 바보인 웨일즈 공 (미래의 조지 4세), 아직도 학교 선생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째째한 소년인 소 피트, 허풍선이 스노브인 새무얼 존슨 박사, 다혈질의 결투광인 웰링턴 장군으로 이어집니다.

역사 자체도 이 시리즈에서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닙니다. '리처드 4세 치하'라는 가상의 역사부터가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의 진지성을 깨부수는 것이었으니까요. 시리즈의 이야기가 다 맞다면, 엘리자베스 1세는 변장의 명수인 독일인 사기꾼이고, 조지 4세는 미치광이 아버지가 아들로 착각한 에드먼드 블랙애더이며, 새무얼 존슨 박사의 사전은 볼드릭이 불쏘시개로 이용해 태워버렸겠지요.

이런 우상 파괴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영국 계급 사회에 대한 냉정한 자조로 이어졌습니다. 수백년을 걸쳐 끈질기게 이어지는 블랙애더와 그의 시종 볼드릭의 관계는 그들이 다루고 있는 세계의 작은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블랙애더 가문이 조금씩 몰락해가면서 에드먼드 블랙애더가 세상을 움직이는 '위대한 인물들'을 바라보는 방식이 조금씩 더 냉소적으로 변하기도 했고요. 그러나 이 시리즈엔 특별한 편들기가 없었습니다. 어리석음의 총량은 불변하다는 [블랙애더] 우주의 기본 법칙은 어느 시대를 가도 영구적이었습니다.

대신 [블랙애더]는 시리즈 4에서 보다 효과적인 결말을 내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지금까지 티격태격하던 우리의 주인공들이 수백 마일 저쪽에서 멍청한 수염을 기른 바보 장군들이 내린 명령에 따라 죽음의 전장으로 내몰리는 시리즈의 마지막 에피소드는 [블랙애더] 특유의 냉소에도 불구하고 장엄하며 감동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블랙애더]의 성공의 비밀은 역사의 비극적인 면을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었습니다. [블랙애더]는 역사를 지배하는 어리석음과 추악함과 폭력에 대한 코미디였습니다. 코미디이면서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시리즈가 거의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겠지요. 많은 훌륭한 코미디가 그렇듯, [블랙애더]의 웃음 뒤에는 강한 비극적 정서가 깔려 있었습니다.

4.

"Blackadder Goes Forth"

[블랙애더]의 가장 큰 성과는 로완 앳킨슨이라는 코미디언의 발굴이었습니다. 앳킨슨은 이후 [미스터 빈]으로 엄청난 국제적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가 십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닦아낸 캐릭터, 에드먼드 블랙애더의 중요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블랙애더]는 로완 앳킨슨 말고도, 수많은 영국인 배우들에게 중요한 시작점이었습니다. 일단 이 시리즈의 엘리자베스 1세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란다 리처드슨의 캐릭터를 고정한 첫번째 역할이었습니다. [지브스] 시리즈로 전설적인 콤비가 된 휴 로리와 스티븐 프라이가 처음 만난 작품도 [블랙애더]였고요. 미리엄 마골리스나 짐 브로드벤트와 같은 배우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준 것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작가인 리처드 커티스에게도 [블랙애더]는 첫번째 성공작이었습니다. 이후로 그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노팅 힐]과 같은 할리우드 히트작과 [미스터 빈], [디블리의 교구 목사]와 같은 성공적인 영국 시트콤을 써냈습니다. (02/12/03)

기타등등

그런데 어떻게 블랙애더 가문이 수백년 동안 이어질 수 있을까요? 네 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블랙애더 이름을 단 직계 후손들을 낳을 운명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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