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 (2009 - 2010)

2010.04.13 10:42

DJUNA 조회 수:6478

각본: 이영철, 이소정, 조성희, 이지현 연출: 김병욱, 김영기, 조찬주 출연: 신세경, 서신애, 이순재, 오현경, 정보석, 최다니엘, 윤시윤, 진지희, 김자옥, 황정음, 줄리엔, 유인나, 이광수, 이기광

한동안 김병욱 팬을 자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지붕 뚫고 하이킥]을 무척 힘겹게 시작했습니다. 그만큼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유증이 심각했지요. 생각해보면 [지붕 뚫고 하이킥]을 제가 비교적 편하게 보았던 것도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잔뜩 방어벽을 쌓고 시리즈를 시청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소란스러운 마지막회 때에도 전 그냥 무덤덤했어요. 그렇다고 그게 이상적인 결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요.

제가 어떻게 시리즈를 감상하고 반응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작품 자체의 질이죠. [지붕 뚫고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보다 몇 배는 나은 작품이었습니다. 중반 이후로 에너지를 잃고, 러브라인 때문에 발목을 잡힌 건 전작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그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아요.

바싹 말라붙은 것 같았던 김병욱 세계가 잠시나마 숨쉴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소재와 주제의 선택, 그리고 그를 다루는 태도에 있었습니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만들던 당시 그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장르 세계에 아무런 준비 없이 뛰어들었고 어설프게 팬들을 자극하는 러브라인을 시도했다가 자승자박의 함정에 빠졌죠. [지붕 뚫고 하이킥]은 (적어도 중반까지는) 이 함정을 의도적으로 피했습니다. 장르 대신 사실주의를 택했고 러브라인은 철저하게 주제에 종속시켰으며 팬들이 울고불고 난리를 쳐도 그에 거의 대응하지 않았죠. 그 때문에 [지붕 뚫고 하이킥]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난장판에서 그럭저럭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소재 선정은 거의 환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김병욱은 꾸준히 가족 내 계급 갈등에 집중해왔습니다. 그가 이 익숙한 구도를 식모자매와 고용주의 관계로 확장한 건 콜롬부스의 달걀처럼 당연하면서도 획기적이었습니다.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80년대를 무대로 했다면 진짜 기가 막혔겠지만 이것만으로도 대단했지요. 세경을 둘러싼 러브라인도 생산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짝짓기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계급간 권력 묘사를 위한 필수적인 단계였지요. 러브라인들은 평범한 캔디 주인공의 미니 시리즈와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를 그리는 태도는 전혀 달랐습니다.

세경이라는 캐릭터, 그리고 이 캐릭터와 함께 들어온 정극의 활용도 이 시리즈의 성공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세경은 시트콤의 세계에 들어왔지만 늘 정극 캐릭터의 진지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신세경의 올곧은 정극 연기는 이 시트콤에 날카로운 긴장감을 가져왔고 이 캐릭터를 통해 이 두 장르의 세계가 충돌하면서 종종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만들어졌습니다. 그것은 신애의 도박중독 에피소드처럼 코미디이기도 했고, 세경의 사랑니 에피소드가 그랬던 것처럼 전통적인 로맨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김병욱 코미디의 익숙한 재료들도 생생한 생명력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황정음 캐릭터는 전통적인 김병욱 코미디 캐릭터였지만 배우 황정음의 개성을 얻자 익숙한 만큼이나 새로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해리 캐릭터는 미달이의 뒤를 이은 김병욱 아역의 걸작이었습니다. 허를 찌르는 캐스팅의 활용도 이전과 같습니다. 정보석이 이렇게 확실한 코미디 배우로 전환할 수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애재라, 유감스럽게도 이 장점들 뒤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하나 숨어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자기도취였습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이 왜 후반부에 붕괴하기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전 그 의견 모두가 만든 사람들의 자기도취와 팬들에 대한 경멸로 수렴된다고 봅니다.

우선 소위 러브라인들을 봅시다. 전 아까 [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러브라인들의 기능성에 대해 호의적인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브라인들은 시리즈의 잠재성을 망쳐버린 원흉이었습니다.

실수는 초반에도 보였습니다. 저번 시리즈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작가들은 시리즈의 러브라인을 완벽하게 통제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 같습니다. 떡밥을 뿌리는 기간이 길어졌고 그 범위도 넓어졌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려는 굵은 이야기에 대해 이미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떡밥을 뿌리는 과정의 태도가 좋았던 것은 아닙니다.

전 김병욱이나 작가들의 마음을 독심술로 읽을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러브라인 지지자들에 대한 이들의 반응이 그들에 대한 경멸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른 작가들은 몰라도 적어도 김병욱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상황이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그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는 일입니다. 오리지널 창작자가 소란스러운 러브라인 지지자들을 경멸하는 건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러브라인 지지자들은 그들이 만든 창작물의 의미와 예술성을 축소시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전 시리즈가 진행되는 동안 디씨 갤러리나 공식 홈페이지에 그렇게 자주 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징후들을 이곳저곳에서 꽤 자주 봤습니다. 시리즈 내내 세경, 정음, 준혁, 지훈은 결코 로맨스에만 종속된 인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관련없는 욕망도 많았고 감정폭도 그 주제를 넘어서는 넓은 부위에 걸쳐져 있었지요. 그런데도 러브라인 지지자들은 그 이야기에서 오로지 러브라인의 조합과 가능성만을 봤습니다. 다른 걸 볼 능력을 처음부터 잃어버렸던 겁니다. 그 증거가 종영 일주일 전에 있었던 지훈의 대사 소동입니다. 정직해집시다. 러브라인 지지자들 중 그 때 지훈의 태도에서 짝짓기 조합 이상을 읽었던 사람들이 몇이나 됩니까?

문제는 이런 지지자들에 대한 경멸이 스토리 전개의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초반 러브라인 떡밥이 풀릴 때를 기억해보세요. 당시 떡밥의 종류는 철저하게 수학적 가능성에 따라 분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토리 전개상 정음과 준혁이 맺어질 가능성은 전무했고 아마 처음부터 그런 계획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일단 그 가능성을 기계적으로 넣었고 보다 현실적인 러브라인과 동등하게 취급했습니다. 그건 순전히 그 기계적인 조합에 넘어가는 순진한 러브라인 지지자들을 통제하기 위한 게임이었죠.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겁니다.

그 동안 본궤도에 오른 러브라인이 비정상적으로 부풀기 시작한 이유도 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들은 자신이 만든 러브라인의 의미에 대한 확신이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그와 별개로 그를 통해 자극되는 러브라인 지지자들을 가지고 노는 것에 버릇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이야기를 할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던 겁니다. 그 다른 이야기들에는 그만큼의 중요성이나 쾌락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는 치명적이었습니다. 김병욱 코미디는 여전히 다양한 캐릭터들의 앙상블에 의지해 존재하는 세계였는데, 러브라인들이 그 세계를 잡아먹기 시작한 것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낭비되었습니다. 오현경, 김자옥, 정음을 제외한 하숙집 사람들, 심지어 가장 중요한 커플이어야 할 신애와 해리까지. 이들은 모두 그들이 속해 있는 세계를 보다 효율적으로 지탱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가뭄에 콩나듯 나오는 인나와 광수, 신애와 해리 에피소드들은 시리즈가 끝날 때까지 질적 하락을 겪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작가들은 그들을 외면하고 죽어라 러브라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만 써댔지요. 심지어 [거침없이 하이킥] 때에도 이런 낭비는 없었습니다.

소문도 요란했던 결말은 이런 사태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 세경과 지훈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 결말에 그렇게 충격을 먹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소란 속에서 벌어진 토론도 의미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결말을 덮고 있는 붕괴의 징후를 무시하고 넘어갈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드러나는 문제점은 김병욱의 오퇴르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다소 불건전한 방식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시리즈의 '새드 엔딩'은 작가 선언이기도 하지만 엉뚱하게도 이미 공식화되어 있는 김병욱 월드의 규칙에 맞춘 것이기도 합니다.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말이 아니라 보다 극단적인 설정을 넣어 남들이 세워놓은 기계적인 기대치를 넘으려다 만들어진 것이죠.

둘째는, 그러는 동안 그가 삶을 보는 관점의 융통성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작품의 의미가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김병욱 월드는 진짜 세계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환경의 제약 속에서도 각자의 주인공들에는 자유의지를 행사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들의 활동에 의해 그 세계는 더욱 풍요로워졌습니다. 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김병욱은 냉정하고 편협한 신으로 군림했습니다. 여기서 주인공들은, 탈출은 커녕 자기 스스로 행동할 기회도 얼마 없었죠. 결말을 만드는 사건들이 어떻게 조립되었는지 보세요. 기회나 사고 모두가 주인공의 의지와 전혀 상관 없는 우연의 조합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신의 뜻입니다.

이러는 동안 시리즈의 현실인식도 수상쩍은 방향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물론 대한민국 사회의 계급 장벽은 뚫기 어렵습니다. 누가 그걸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김병욱은 결말에서 그 주장을 신화화시켜버립니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자연법칙에 의해 불가능하고 텔레비전에서 이런 판타지를 보며 핵핵거리는 시청자들은 멍청한 중독자 집단입니다. 고로 이걸 꿰뚫어보는 김병욱은 그들보다 몇 만 배 나은 존재입니다. 하하하...

많은 시청자들이 이런 선언에 불만을 품고 있었던 건, 김병욱이 만든 캐릭터들이 이런 선언에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세경만 해도 계급장벽을 뚫을 수 없는 딱한 무산계급 주인공이라는 위치에 그렇게 잘 맞지 않습니다. 이 사람은 식모 일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계급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산속에서 고립된 삶을 살았고 그 이전에는 남 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집안의 딸이었죠. 중졸이라고는 하지만 공부 머리도 있고 의지도 있으며 외모도 됩니다. '식모'라는 위치가 이 사람에게 절대로 뗄 수 없는 계급 딱지를 붙여주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것은 얼마든지 떼어버릴 수 있는 것이죠. 심지어 세경은 과장된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르지 않아도 주인집 남자들과 맺어질 수도 있습니다. 누가 막겠습니까. 순재네 집 사람들은 정략결혼이 필요한 재벌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리즈의 결말은 지당한 우주법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탈출 가능한 주인공의 행보를 억지를 써가며 심술궂게 막아버리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주 간단히 요약해 볼까요. [지붕 뚫고 하이킥]의 결말은 김병욱의 자의식이 극도로 부푼 결과물처럼 보이지만, 철저하게 팬들과의 (부정적인)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결과는 [거침없이 하이킥] 때만큼 형편없지 않았지만 위험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거침없이 하이킥] 때에는 "아, 내가 바보짓을 했구나!"라고 외치며 뒷걸음을 칠 정도의 자기반성의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기회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10/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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