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지를 끌고 Ox-Cart Man (1979)

2010.03.13 22:15

DJUNA 조회 수:3538

Donald Hall (글) Barbara Cooney (그림)

저는 바바라 쿠니의 작품들을 사랑합니다. 쿠니가 그린 수수하고 소박하지만 정갈하고 차분한 매력을 지닌 그림책들은 정말로 제 눈과 가슴을 맑게 합니다. 쿠니의 [에밀리]나 [미스 럼피우스]는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리스트의 상위에 수록되어 있지요.

1979년 칼데콧 상 수상작인 [달구지를 끌고] 역시 쿠니의 장기가 완벽하게 발휘된 작품입니다. 도널드 홀이 글을 쓴 이 그림책은 19세기 중엽의 뉴 잉글랜드를 사는 농부 가족의 조용한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10월에 농부는 가족들이 1년 동안 일해 얻은 양털, 감자, 양초와 같은 것들을 소달구지에 싣고 포츠머스의 시장으로 갑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다 판 농부는 몇가지 다른 물건들을 사가지고 집으로 오죠. 농부가 돌아오자 가족들은 린넨을 짜거나 박하사탕을 먹으며 겨울을 지내고 그림책이 끝날 무렵에는 5월이 다가옵니다.

바바라 쿠니의 다른 작품에 익숙한 분들이라면 책을 보기도 전에 어떤 작품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쿠니 풍이지요. 그 사람의 청교도적일 정도로 순수한 그림은 이 책의 진짜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노동 예찬에 완벽하게 들어맞습니다. 농부 가족이 자연의 흐름에 적응하며 의미있고 생산적인 삶을 살아가는 동안 쿠니와 홀은 차분하게 150여년전의 미국 농부 가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유익한 정보까지 덤으로 전해줍니다.

네, 아름다운 책입니다. 경건하고 품위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저한텐 맞지 않습니다. 칼데콧 심사위원들이 뭐라고 주장하건 저는 [에밀리]나 [미스 럼피우스]가 훨씬 좋습니다.

전 이 농부 가족 이야기가 좀 무섭습니다. 물론 전 이 사람들만큼이나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으니 이들의 가치에 대해 뭐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고립된 채 기계적인 노동만이 영원히 반복되는 이들의 삶은 아름답다기보다는 갑갑합니다. 이들의 삶이 너무 이상적이고 아름답게 그려져서 (쿠니의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한테서 속세의 흉물스러움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말입니다) 보고 있으면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투정에 불과하다는 점을 잊지 마시길. 제가 이렇게 투덜거린다고 이 작품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달구지를 끌고]는 아이들에게 노동의 소중함과 자연의 혜택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책입니다. 하지만 이 책의 진짜 기능은 도시 생활의 험난함 속에서 상상 속의 자연과 농촌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완벽한 도피를 제공해주는 것일 겁니다. (0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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