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라 Laura (1999)

2010.03.14 22:06

DJUNA 조회 수:5102

Binette Schroeder (글/그림) Rosemary Lanning (옮김)

비네테 슈뢰더의 그림책 [라우라]는 한밤중에 숲속에 들어갔다가 험프티 덤프티와 친구가 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험프티 덤프티는 밤마다 그를 찾아와 괴롭히는 천둥새를 두려워 하고, 그런 그를 위로하던 라우라는 같이 새를 쫓아내기로 결심합니다.

[라우라]는 그림 형제 풍으로 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험프티 덤프티가 사는 환상 세계와 용감한 여자 아이는 루이스 캐롤 풍이지만 비네테 슈뢰더가 그들을 밀어넣는 숲 속 세계는 그림 형제 동화의 배경처럼 어둡고 위험한 공간입니다. 독일풍이라고 할 수 있겠죠.

[라우라]의 스토리는 비전문작가가 쓴 것 치고는 상당히 잘 짜여져 있지만 역시 비네테 슈뢰더의 전문은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그 때문인지 슈뢰더는 텍스트를 아주 제한적으로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라우라가 험프티 덤프티를 처음 만나는 장면이나 그들이 천둥새와 싸우는 장면처럼 결정적인 부분들은 텍스트 없이 그림으로만 처리하고 있어요. 텍스트는 종종 그래픽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라우라와 험프티 덤프티의 대사들은 종종 숨결처럼 굽이치며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그들이 튤립 잎 위에서 미끄럼을 탈 때는 텍스트도 각운에 맞추며 같이 옆으로 흘러내립니다.

전체적으로 환한 명징성을 유지하고 있는 루이스 캐롤의 동화와는 달리, [라우라]는 일부러 꿈과 같은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살아 움직이는 라우라의 곰인형 보보, 웬만한 나무보다 큰 튤립, 나무 위에 매달린 라우라의 집과 같은 몽환적인 존재들은 파스텔로 그린 침울한 달빛 속에 잠겨 있습니다.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의 풍요로운 시각적 상상력이 끌어올린 이 괴물들은 종종 괴기스러울 정도로 차디찬 아름다움을 발산합니다.

[라우라]는 아름다운 책이지만 아주 어린 독자들은 좀 무섭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독서에서 꼭 안전한 감정만 느끼라는 법은 없겠죠. 오히려 자극적인 느낌 없이 이 책을 읽는 성인 독자들이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인지도 몰라요. (0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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