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hony Browne (글/그림) 고정아 (옮김)

앤서니 브라운의 [킹콩]. 제목만 들어도 이치가 딱 맞지 않습니까? [고릴라]로 명성을 얻은 그림책 작가가 거대한 고릴라의 이야기인[킹콩]을 그림책으로 각색하고 싶어하는 건 너무 당연하잖아요. 실제로 브라운은 열렬한 [킹콩] 팬이고, 그의 대표작인 [고릴라] 역시 [킹콩]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1994년에 나온 작품이니, 당연히 이 그림책의 원작은 1933년 오리지널입니다. 내용도 거의 같고요. 칼 덴햄이 앤 대로우를 발굴해 해골섬에 영화 찍으러 가고, 앤은 선원인 잭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지고, 해골섬에서 킹콩이 앤을 납치해가고... 마지막에 킹콩은 앤과 함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죠.

자잘한 디테일의 차이는 있습니다. 스테고 사우르스는 트리케라톱스로, 티라노 사우르스는 알로 사우르스로 대체되었죠. 중국인 요리사 찰리는 럼피라는 이름의 남자로 대체되었는데, 아마 피터 잭슨은 이 그림책에서 요리사 이름을 따온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여자 주인공의 선정에 있습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이 그림책의 앤은 마릴린 먼로로 그렸습니다. 칼 덴햄에게 발굴될 때는 갈색 머리의 노마 진이고 선실에서 깨어난 뒤에는 금발의 마릴린 먼로인 거죠. 좋아하는 배우를 자기 그림책에 쓰는 걸 뭐랄 수는 없지만, 전 이게 그렇게 좋은 선택 같지는 않습니다. 페이 레이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요.

앤서니 브라운은 영화의 이야기를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지만, [킹콩]을 보고 재해석한 후대의 예술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킹콩에 보다 감정이입하고 있고 이 고릴라의 야만성을 조금 줄여놓고 있습니다. 그림책이라는 매체가 이런 설정에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움직임이 사라지고 정지된 이미지만 남자 이 고릴라의 얼굴과 표정이 더 집중하게 되는 겁니다. 킹콩의 잔인한 행동을 어느 정도 줄인 것도 도움이 되었겠죠. 전체적으로 브라운의 버전은 원작 영화보다 더 고상하고 우아하며 살짝 더 로맨틱합니다.

브라운의 그림은 여러분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털달린 동물들을 묘사하는 그의 장점이 그대로 살아나지요. 부드러운 갈색조의 질감이 30년대라는 시대 배경의 노스탤지어를 근사하게 살려주기도 합니다. (0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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