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rginia Lee Burton (글, 그림) 서애경 (옮김)

버지니아 리 버튼은 다소 까다로운 상황에서 그림책 작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만화책에 미친 둘째 아들 마이클을 위해 그림책을 만들었던 것이죠. 처음에 그린 그림책은 마이클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지만, 증기 기관차의 모험담을 그린 두 번째 그림책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는 성공이었습니다. 이 작품 이후로 버지니아 리 버튼의 세계가 만들어지죠. 의인화된 구식 기계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나는 모험담들 말입니다. 독자인 어린 소년과 기혼자 여성 화가의 감수성이 중간 지점에서 딱 만난 것입니다.

[마이크 멀리건과 증기 삽차]에서 의인화된 존재는 메리 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증기 삽차입니다. 메리 앤은 주인인 마이크 멀리건과 함께 20세기 초반의 역동적인 미국 사회를 누비고 다녔지만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을 단 후배들에게 밀리고 맙니다. 메리 앤의 동료들은 오래 전에 폐차되었지만 마이크 멀리건은 차마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메리 앤을 너무나도 사랑하지요.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그들은 시골 소도시 포퍼빌에 시청을 새로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기초공사 자리를 따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의인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의인화의 강도는 [말괄량이 기관차 치치]처럼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텍스트만 읽는다면 메리 앤은 그냥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구식 삽차일 뿐이지요. 하지만 일단 그림을 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삽차의 모양을 그대로 그리고 삽에다가 눈코입을 그렸을 뿐인데, 메리 앤은 그 간단한 장치만으로 진짜 살아있는 생명체로 다시 태어납니다. 냉소적으로 읽는다면, 마이크 멀리건의 상상 속에서나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지만, 독자들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멀리건의 감정에 빠져듭니다.

작가와 멀리건이 메리 앤을 바라보는 관점은 한동안 인간들을 위해 봉사해왔지만 시대에 밀려 사라진 모든 것들에 대한 향수와 감사 그리고 미안함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그들이 마음 없는 기계나 도구에 대해 이런 감정을 품는 건 일종의 습관적 착각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메리 앤에 대한 마이크 멀리건의 사랑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죠. 사랑에 대해 말을 할 때 그 감정의 진실성은 대상이 무엇인가보다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전반부가 낡은 기계에 대한 한 남자의 일편단심 사랑에 대한 것이라면 후반부는 액션물입니다. 멀리건은 해가 질 때까지 시청의 기초공사를 끝내겠다는 내기를 걸고 메리 앤과 함께 작업에 돌입합니다. 결말이야 거의 뻔하지만 스릴과 서스펜스는 웬만한 최근 할리우드 영화들을 능가할 판입니다. 당시 만화책과 경쟁하려면 이 정도의 역동성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멀리건과 메리 앤의 액션은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졌는지요. 그림을 보고 있으면 증기 삽차에서 세어나오는 쉭쉭 거리는 소리가 들릴 정도입니다.

액션이 끝나면, 해결해야할 또다른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낡은 테크놀로지와 현대 사회의 만족스러운 타협이며 가슴 벅찬 해피엔딩이라는 것 정도는 말해도 될 것 같군요. 그 해결책을 위해 둘째 아들 마이클을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어린 소년을 등장시킨 건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근사한 트릭이지요. (08/10/16)

기타등등

증기 삽차 메리 앤은 마리온 증기 삽차입니다. 이름도 거기서 따온 것이죠. 여기로 가보세요. 복원된 마리온 증기 삽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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