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2003년 한국 호러영화들에 대한 잡담

2010.03.05 10:04

DJUNA 조회 수:14862

(각 영화들의 스포일러가 조금씩 있습니다.)

듀나 슬슬 DVD라는 매체는 영화 수출의 또다른 통로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최근 국내에서 DVD로 출시된 영화들에 대한 반응과 리뷰가 인터넷에 뜨는 걸 보면 정말 빠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죠. 특히 호러영화처럼 밑바닥 팬들의 열성이 강한 장르는요.

해외에서 요새 가장 화제가 되는 한국 영화들 중 하나는 [장화, 홍련]입니다. 몇몇 호러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이 곧장 DVD 구매로 이어졌고 그게 또 다시 입소문으로 돌고 있는 거죠.

파프리카 김지운 감독은 기분이 좀 나아졌겠지요? [장화, 홍련]이 국내에서 처음 개봉되었을 때, 평론가들의 반응은 그냥 그랬습니다. 아니, 일부는 상당히 공격적이었지요. 그게 맘에 걸렸는지 나중에 DVD 서플먼트에 '[장화, 홍련]을 둘러싼 몇 가지 오해들'이라는 섹션을 추가해 비평가들에게 정면 대응을 할 정도였잖아요.

이 어정쩡한 평단의 반응을 뒤집은 게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이었지요? 이 때문에 당황한 평론가들이 나중에 이 '이상한 현상'에 대한 분석을 첨가해야 할 정도였어요. 해외 흥행 성적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고요.

듀나 이 영화에 대한 해외의 평가도 지금까지는 국내 비평보다는 훨씬 호의적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해석할 수 있죠. 아무리 인터넷을 통해 DVD를 구입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통로는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당연히 이 좁은 통로는 일종의 스노비즘을 형성하게 되지요. 이런 경우 평은 비교적 호의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모든 걸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그러기엔 노출이 너무 많이 된 영화거든요. 그렇다고 [필름 2.0]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화 본 경험없는 무지한 십대 팬들의 열광'이라는 논리로 밀어붙일 수도 없습니다. 이런 종류의 호러영화 비평가들이나 팬들은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영화 평론가들보다 장르에 대한 경험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니까요.

파프리카 ...그러면서 이야기는 슬슬 스노비즘으로 넘어가겠지요?

듀나 물론이죠! 제 단골 무기인 걸요. 하지만 이 경우엔 정말 맞습니다. 비평가들의 스노비즘이 가장 잘 드러날 때가 이 때잖아요. 늘 똑같아요. 비평가들의 맘에 별로 안드는 작품이 엄청난 인기를 끕니다. 그럼 비평가들은 이런 식으로 대응하죠. "너네들이 무식해서 그래. 이전에도 이런 식의 내용을 다룬 작품들은 많았단 말이야. 너네들이 보기엔 신선해보이지만 원래 이런 내용은 여기서도 다루었고 저기서도 다루었으며..."

파프리카 자기도 [매트릭스] 삼부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랬으면서!

듀나 물론이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저를 예외로 놓은 적 있었나요? 그리고 전에 말했잖아요. 스노비즘은 내용의 가치와는 큰 상관이 없어요. 그건 순전히 태도의 문제이죠. 문제는 그것이 제대로 된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느냐인데... [매트릭스] 열풍에 대한 제 지적은 나름대로 기반이 서 있었다고 생각해요. [매트릭스] 열풍은 80년대 사이버펑크 시대 선배들을 부당하게 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장화, 홍련]의 경우는 좀 다르죠. 이 영화에게 영향을 준 영화들이나 같은 부류에 속한 영화들은 열성팬들이 아닌 일반 관객들도 충분히 봤거든요. 많은 관객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링]과 같은 최근 히트작들을 떠올렸을 겁니다. 조금 더 경험이 있는 호러영화 팬들은 [오디션]의 몇 장면들을 찾아냈겠지요. 김지운 감독은 [천상의 피조물]이나 [행잉록에서의 소풍]과 같은 작품들한테서 영향을 받았다고 했는데, 이들 역시 그렇게까지 스노비즘의 터치를 받을 정도로 구하기 힘든 영화들은 아닙니다.

파프리카 아하, 알겠어요. 그러니까 한 겹에 더 쌓이는 거지요? 여기서부터는 "나는 너보다 더 많이 알아!"로 받아치는 것 자체가 얄팍한 반응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화는 애당초부터 그런 영화들에 대해 관객들도 알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음이 분명하니까요. 그렇다면 중요한 건 그 익숙한 것들이 아니라 감독이 그 익숙한 것들을 이용해 무엇을 그리려했느냐입니다.

듀나 그렇죠, 뭐. 하여간 이 경우는 팬들의 의견이 더 정확하고 깊이있을 수 있습니다. 전 최근에 이 영화를 DVD로 다시 봤는데, 확실히 반복 감상할 때가 더 나았어요. 노골적인 공포 효과는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만 "내가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했지"라는 은주의 대사는 그 의미를 알고 들을 때 훨씬 의미심장하게 들리거든요.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겉으로 드러난 반전과 인용이 아니라 그것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느냐이고, 어느 정도 영화와 장르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평론가들보다 이런 것들을 더 잘 찾아내는 건 당연하지요.

전에 한 번 클리셰 사전에서 다루긴 했지만, 그래도 반전의 의외성에 집착한 비평이 얼마나 무익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언급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장르에서 사용하는 모든 반전들은 기성품들입니다.' 다들 선례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이야기를 짜는 수법은 제한되어 있으니까요. 당연히 가치있는 작품들은 반전 자체에 영화 전체를 매다는 짓은 하지 않을 거고 제대로 된 비평가들 역시 반전의 존재나 신선함 따위에만 집중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런 짓들은 그들이 얼마나 자동인형처럼 사고하는지 보여주는 증거일 뿐입니다.

파프리카 이야기를 시작한지 한참 된 것 같은데, 아직도 [장화, 홍련]에 머물러 있네요.

듀나 그러고보니 그렇군요.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예요. 첫째로 전 이 영화에 어느 정도 호의적입니다. 여전히 결점들은 눈에 잔뜩 들어오지만 적어도 올해 나온 한국 호러영화들 중에서는 가장 맘에 들었거든요. 둘째로, [장화, 홍련]을 둘러싼 국내외의 반응이나 평론가들과 팬들의 대립은 엉겁결에 오늘의 주제가 되어버린 어떤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류 평론가들이 장르영화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말이죠.

파프리카 [씨네21]의 대담 기사가 떠오르네요. 김송호씨의 말을 무단인용해볼까요? "대중과 마니아의 갭을 심화시키는 데에는 매체에 실린 평론가들의 글이 어느 정도 작용했다. 장르 자체의 문법에 따라 영화를 즐기고 논하는 평자들이 별로 없다. 아트영화건 공포영화건 똑같은 기준으로 재단한다. 독자와 관객으로부터 외면받는 비평의 위기 또한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듀나 사실 호러와 같은 비주류 장르의 팬들은 대부분 늘 주류 평론가들에게 이런 식의 불만을 품고 있습니다. 일부는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들이 정말로 싸구려 저질이기 때문이고 일부는 주류 평론가들이 그 장르에 속해있는 작품들의 독특한 미학을 정말로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어느 쪽이건 호러 영화 장르에서 이 대립은 꽤 오래되었습니다. 요샌 양쪽 모두 자포자기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로저 이버트가 [텍사스 전기톱 대학살] 리메이크 버전을 악평하자 그 영화의 감독이 오히려 그걸 칭찬으로 받아들였던 게 기억나는군요. 물론 이버트도 그걸 예상했다고 말했고요.

그러나 올해에 정말로 재미있었던 건 장르 영화들에 대한 부정적인 평들이 아니라 긍정적인 평들이었습니다. [4인용 식탁]과 [거울속으로]가 그 작품들인데요, 모두 상당히 영향력있는 주류 영화 잡지들이 편을 갈라 이 두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밀었지요. [씨네21]에서는 [4인용 식탁]에 대해 '한국 공포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필름 2.0]은 [거울속으로]에 대해 '매혹의 공포영화'라는 제목으로 각각 특집기사를 실었습니다. 얼마 전에 [딴지일보]에서 주최하는 한국판 라즈베리상인 토룡영화제에서는 이 두 기사들을 혹세무민상의 후보작들로 올렸지요. 이렇게 말했던가요? "조금만 세련된 작품이 등장하면 목놓아 만쉐이 삼창을 외치는 전형적인 혹세무민 똥꼬애무 보도되겠다." 뭐, 저도 이런 지적엔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없긴 합니다만... :-)

파프리카 두 영화들 모두 관객 흡인력이 높은 편은 아니었지요. 결점도 많았고요. 하지만 그 기사들이 그렇게까지 근거없는 글들은 아니지 않았나요?

듀나 물론 그렇죠.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내용이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런 특정한 태도와 열광이 어떻게해서 나왔느냐는 거죠. 제 대답은 이렇답니다. 그 두 영화들은 주류 비평가들의 게임에 훨씬 적합한 작품들이었어요. [거울속으로]는 드라마와 스토리가 빈약하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지만 잠재적 가능성이 정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멋진 아이디어는 영화라는 실체없이도 평론가들의 자판 끝에서 구체화될 수 있는 것이었지요. [4인용 식탁]은 보다 전통적이었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장르영화'답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건 자연스럽게 플러스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영화의 내용을 한국 근대사의 흐름과 현대 사회의 절망감, 가족의 붕괴 같은 것들과 연결시킬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영화 비평을 쓰기엔 무척 편한 주제들이지요.

이들은 모두 가치있는 것들입니다. [4인용 식탁]은 의미있는 주제를 진지하게 다룬 좋은 영화입니다. [거울속으로]의 도전정신과 신선한 소재는 칭찬해주어야 마땅하고요. 하지만 이 영화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한 잡지들은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전달되었느냐는 것이죠. 많은 주류 비평가들은 여기에 뜻밖에도 둔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들을 미리 머리로 이해했기 때문이죠! 특히 [4인용 식탁]은 거의 감독과 비평가들 사이에 전용선이 깔려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4인용 식탁]은 관객들에게 불친절한 것만큼이나 주류 비평가들에게 친절했습니다.

파프리카 주류 비평가들과 관객들의 차이점을 그렇게 구별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선 주류 비평가라는 사람들을 그렇게 하나로 쉽게 뭉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리고 주류 비평가들이 모든 관객들을 대변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이들이 특정 관객들을 대변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많은 일반 관객들이 쉽게 집어내지 못하는 것들을 지적하는 것도 사실인 걸요. [4인용 식탁]에 비평가들을 위한 전용선이 깔려있다고 했는데, 그건 트로마 영화들 안에 싸구려 영화팬들을 위한 전용선이 깔려있는 것과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아요.

듀나 그렇긴 하죠. 하지만 여기엔 차이점이 하나 있습니다. 트로마 영화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영화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세계를 설명해줄 수 있는 비평가들도 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 모든 것들이 비교적 일원화되어있는 상태지요. 자신의 입장이 어떻건 대부분 '주류'의 분위기 속에 섞여 있는 거예요. 심지어 그들이 적극적으로 트로마 영화들을 옹호한다고 해도 말이죠. 인터넷을 통해 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긴 하지만 이 두 세계 사이엔 여전히 큰 갭이 존재합니다.

파프리카 여기서부터 슬슬 장르영화 옹호론을 펼칠 순서가 된 것 같은데요? 얼마 전에 이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일반 주류 비평가들이 장르영화를 폄하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장르의 생산성과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나온다고요. 보통, 비평가들은 장르를 일종의 게임 규칙처럼 이해하지만 사실 폭이 훨씬 넓은 거라고요. 그리고 추리물과 SF, 호러는 전적으로 전혀 다른 장르들이고 같은 형식의 규칙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고요.

듀나 아, 언제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겠네요. 네, 제가 말하려고 했던 건 이런 이야기였어요. 장르의 성격과 경계선은 전적으로 자연발생적인 것이고 유동적이라는 것이죠. 발생 초기에 분명한 규칙이 있다고 해도 언젠가 그 규칙은 깨어지게 되어 있어요. 어떤 때는 경계선 자체가 도전 대상이 되니까요. 30년대까지만 해도 추리소설은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퍼즐과 같은 장르였어요. 하지만 요새 어떤 추리작가들이 녹스 주교와 반 다인의 규칙을 신성시하고 따르나요? 그 이후 추리소설의 역사는 그런 규칙의 파괴, 그와 함께 발생한 서브 장르들의 창시로 이어졌어요. 마찬가지로 현대 SF작가들은 더이상 휴고 건즈백이 정의한 SF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죠.

그 다음에 한 이야기는 이런 의미였어요. 장르는 전혀 다른 성격에 의해 정의돼요. 고전 추리소설이나 서부극은 소재와 형식에 의해서도 정의됩니다. 하지만 역사소설이나 SF소설을 제한하는 건 소재 뿐이지요. 심지어 같은 장르라도 장르 발전 단계에 따라 성격이 다를 때가 많죠. 아까 고전 추리소설은 형식에 의해 정의된다고 했어요. 영어권 추리소설의 황금기 때만 해도 대부분의 추리소설들은 범죄가 일어나고 나중에 명탐정에 의해 사건이 해결되는 공식을 반복했지요. 하지만 요샌 범죄와 관련된 거의 대부분의 소설들이 추리물의 장르안에 귀속됩니다.

호러 장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단 하나에요. 공포라는 감정이죠. 공포물이라는 장르의 팬들과 작가들, 감독들은 모두 이 하나의 감정을 위해 뭉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게 바로 이 장르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입니다.

그러고보니 제가 그 때 이 이야기를 왜 했는지 이제야 생각이 나는군요... 많은 평론가들이, 올해 나온 호러영화들이 모두 따로 노는 작품들이라는 걸 눈치챘어요. 이 다섯 편의 영화들은 모두 하나의 규칙으로 쉽게 묶을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지요. 따로따로 규칙과 장르를 챙긴다면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 여우 계단]은 말 그대로 레즈비언 삼각 관계 연애담일 거고, [4인용 식탁]은 현대 가족 붕괴를 바라보는 우화일지도 모르고, [거울속으로]는 보르헤스적인 환상물과 원한 맺힌 귀신 복수담의 결합일지도 모르죠.

이 전혀 다른 영화들을 하나로 묶어야 할까요? 그거야 보는 사람 맘이죠. 여러분은 장르를 무시하고 이 영화들을 분석하고 연구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안 막고 그게 잘못된 방법인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르는 이 다섯 영화들을 감싸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렇게 대단한 이상 현상인 것도 아니에요. 원래 호러라는 장르가 규칙과 구체적인 주제에 의해 규정되는 장르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호러영화라는 장르를 인식하며 만들어졌고, 호러영화의 틀 안에서 해석되었고, 호러영화들로 묶여서 붐을 조성했고, 호러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호러영화 팬들에 의해 소유되었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읽혀졌습니다. 단순하게 몇몇 규칙으로 규정할 수는 없어도 장르는 여전히 유령처럼 이 다섯 작품들을 감싸며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걸 무시한다면 여전히 우린 많은 걸 놓치게 되죠.

파프리카 주류 평론가들이 가지고 있는 장르의 폭이 너무 좁고 그 때문에 오히려 평이 편협해지는 경우는 분명히 있어요. 많은 평론가들이 [장화, 홍련]의 내러티브가 혼란스럽고 모호하다는 사실을 비난했어요.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봐도 그 영화가 처음부터 혼란스러움을 의도했다는 건 너무나도 자명했지요. 이들이 거의 전면에 노출되어 있을 정도로 뻔한 사실을 잡아내지 못한 이유는 뭘까요? 그건 이들이 이 영화를 자신이 생각하는 장르의 틀 안에 맞추었기 때문이었어요. 반전이 두 개쯤 있는 영화이니 당연히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플롯을 가지고 있고 그걸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어야 한다고요. 하지만 이 사람들도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의 애매모호함은 칭찬했을 거예요. 이 두 모호한 수법들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건 [장화, 홍련]이 공공연한 장르영화라는 것뿐이에요.

듀나 반대로 감독들이나 작가들이 좁은 장르의 개념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경우도 적지 않죠. [여우계단]이 바로 그런 영화였어요. 사실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썩 좋았어요. 갈등구조도 괜찮고 무대도 새로웠고요. 하지만 영화는 장르밖으로 조금이라도 벗어날만한 순간마다 몸서리를 치며 가장 뻔한 장르 공식들을 붙잡고 매달렸지요. 그 결과 영화는 아주 부자연스러운 작품이 되고 말았어요.

전편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여고괴담]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기 위해 장르 규칙을 편리하게 활용한 영화였지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는 미스터리의 분위기가 가미된 비극적인 로맨스 영화가 의무적인 호러 장르 공식과 투쟁하는 작품이었고요. 하지만 [여우계단]은 처음부터 장르영화가 되기 위해 자발적으로 장르 공식에 자신을 가둔 영화였어요. 그 결과 제대로 활용했다면 끝없이 헤엄칠 수 있는 거대한 바다일 수도 있었던 장르가 어항이 되어버렸지요.

파프리카 [아카시아]도 그런 영화였지요? 다들 [장화, 홍련]이 쓸데없이 반전에 치중하는 영화라고 하지만 진짜로 반전이 영화의 가능성을 망쳐놓은 작품은 [아카시아]라고요. [장화, 홍련]은 두 차례의 반전을 통해 할 말은 다했어요. 주인공 수미는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었잖아요. 영화를 다 보면 우린 그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아카시아]는 반전을 위해 드라마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포기해버렸어요. 관객들은 반전을 노린 플롯 때문에 캐릭터들에 충분히 몰입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영화가 끝난 뒤엔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영화관을 떠날 수밖에 없었지요.

듀나 그러고 보면 [거울속으로]도 그런 예였을지도 몰라요. 아이디어를 풀기 위해 꼭 진부한 장르 데이터베이스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었을텐데요. 이 영화는 정말 아까워요. 전 아직도 이 영화가 기가 막힌 25분짜리 단편 걸작을 품고 있는 2시간짜리 어정쩡한 장편 영화처럼 보인단 말이에요. 지금 DVD로 나와 있는 재료들만 다시 재편집해도 그 걸작을 꺼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어느 쪽이건 교훈은 같아요. 장르의 규칙은 자발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지 그 안에 얽매여서는 안된다는 거죠. 다행히도 한국 호러영화 장르는 서서히 그 방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가위][찍히면 죽는다][해변으로 가다]와 같은 슬래셔 영화들이 호러장르를 독점했던 2000년에 비하면 엄청난 발전이지요. 아직 한국 호러영화 장르는 자기만의 목소리나 스타일을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이 정도의 속도면 기대 못할 것도 없죠.

중요한 건 우리나라의 주류 평론계에게 이 장르의 가능성을 읽어내고 현상을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인데... 아직은 충분치 못하다고 해야겠죠. [장화, 홍련]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예측해내지 못한 건 의견의 차이를 떠나 단순한 능력 부족이었어요. [4인용 식탁]과 [거울속으로]에 대한 평론들 역시 영화에 대한 의견이나 평가의 질을 떠나 장르의 흐름과 대중의 반응을 제대로 분석해내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보였죠. 결국 그렇다면 주류평론가들은 장르관객들을 위한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못한 셈이 되고, 이런 것들이 반복된다면 결국 팬들 사이에서 이들의 설득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이들을 통하지 않는 네티즌 팬들의 직접적인 반응이 그 대안이 될까요? 아뇨, 아직은 아닌 것 같아요. 많은 장르 팬들이 주류 평론가들보다 더 풍부한 장르 지식을 갖추고 있고 보는 눈도 더 뛰어난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평론가로서의 자질이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고 팬들이 그런 자질을 갖춘 사람들의 글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예요. 오히려 아무나 들락거릴 수 있는 인터넷의 성격 때문에 이런 구분이 더 힘들기도 하죠.

파프리카 요약해서 말하면 한국 호러영화 장르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듬더듬 성장하고 있지만 관객과 평론가들은 아직 그 시행착오에 충분한 피드백을 제공할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듀나 아마도요. 모르겠어요. 이 모든 게 그냥 자연스러운 혼돈인 것인지요. 그 혼돈 속에서 뭔가 나올 것인지 아니면 가능성만 살짝 보여준 뒤 다시 혼돈 속으로 주저앉을 것인지는 기다려봐야겠지요. (0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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