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서 본 기차 Ostre sledované vlaky (1966)

2010.01.30 20:17

DJUNA 조회 수:12286

 

아마 대한민국의 험악한 직장환경 속에서 피말리는 생존경쟁을 벌이는 사람들은 [가까이서 본 기차]를 보면서 질투심으로 얼굴이 시뻘개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철도원들은 정말 복이 터졌어요. 시골 역이라서 일은 없지, 시간은 남아돌지, 상사인 역장은 물러 터져서 게으름 피운다고 구박받을 일도 없지. 그러면서 정부가 주는 봉급은 꼬박꼬박 다 받아챙겨요.

 

시대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 나른한 직장 분위기는 더욱 부럽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거든요.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는 인류의 운명을 건 전투가 벌어지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총칼에 희생되고 있는데, 막 철도원이 된 우리의 주인공 밀로시의 최대걱정거리는 "과연 내가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남자 구실을 할 수 있을까?"입니다. 밀로시만 그러는 것도 아니에요. 동료인 후비츠카도 여자 이외엔 다른 생각이 거의 없는 것 같죠. 이들은 영화 내내 이 모양 요꼴이에요. 막판에 나찌에 대항하는 레지스탕스들이 접근하기 전까지는 말이죠.

 

이 나른함은 어떻게 보면 이해가 될만합니다. 당시 체코(또는 체코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이미 점령지에 사는 것에 적응이 되어 있었죠. 나찌들이 조국을 점령했지만 전과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다고요. 그냥 적당히 굴종하는 척하며 게으름이나 피우고 히히덕거리면 되는 겁니다. 물론 여러분이 프란츠 카프카처럼 예민한 천재라면 미치고 팔짝 뛸 일이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이런 느슨한 관료주의는 나태한 천국을 제공합니다.

 

영화를 보면 이 철도원들의 농땡이질은 오히려 좋게 보입니다. 적어도 궁극적인 목적이 뭔지도 모르면서 총통이 시키니까 무조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나찌들에 비하면 말이죠. 이 영화가 만들어진 건 '프라하의 봄' 직전인 1966년이니, 비교적 만만한 악역인 나찌가 다른 무엇의 상징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여간 그 대상이 무엇이건, 밀로시와 친구들의 음탕한 게으름질은 세상을 바꾸려는 엄청난 파괴에 비하면 훨씬 자연에 가깝고 좋은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운 좋은 게으름쟁이들의 농땡이는 그 자체로 의미있는 저항인 것이죠.

 

이런 교훈은 그 반대에서도 먹힙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중에 이 철도원들은 체코 레지스탕스 요원들과 만나게 되지요. 이들이 무슨 일을 벌이고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말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교훈이 바뀌지 않는다는 건 말해두고 싶군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세상을 바꾸려는 어마어마한 일은 건강에 별로 좋지 않아요. (07/04/24)

 

★★★★

 

기타등등

밀로시에게 경험많은 여자를 만나라고 처방하는 의사는 감독인 이리 멘젤 자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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