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A fost sau n-a fost? (2006)

2010.01.29 00:11

DJUNA 조회 수:3972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초반 30분 동안, 영화는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세 사람의 일상을 따라가요. 그들은 동네 텔레비전 방송사의 사장이고 생방송 토크쇼 호스트인 즈데레스쿠, 무책임한 술주정뱅이인 역사교사 마네스쿠, 은퇴한 연금수령자 피스코치입니다.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고 돈을 꾸고, 친구에게 사과를 하고, 쇼의 대본을 위해 사전을 뒤지고, 크리스마스를 위해 산타 클로스 옷을 사고, 애들이 터트리고 다니는 폭죽에 기겁합니다. 다소 나른한 이 일상 묘사는 이 세 사람들이 제레스쿠의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모이면서 일단 종결됩니다.


여기까지가 다소 나른하고 우울한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 같다면, 이후는 갑자기 장르가 바뀝니다. 거의 크리스토퍼 게스트 풍의 가짜 다큐멘터리가 되는 거죠. 여기서부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시점은 텔레비전 방송국 카메라 뿐이고 여기서부터는 에필로그까지 실시간으로 진행됩니다. 16년 전에 일어났던 혁명을 예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척 봐도 덜 떨어진 티가 나고, 게다가 이들을 찍는 카메라는 사장에게 화가 잔뜩 난 서툰 아마추어인 카메라맨에 의해 통제됩니다. 당연히 여기서부터는 코미디가 될 수 밖에 없어요. 도입부에서 캐릭터 설정을 위해 심각하게 깔아놓은 장치들도 쇼가 시작하자마자 코미디의 재료가 되어 다시 불려옵니다.


제레스쿠가 토크쇼를 위해 택한 주제는 조금은 한심합니다. 그건 바로 "우리 동네에도 혁명이 있었나?"입니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차우세스쿠 독재체제를 무너뜨린 혁명은 1989년 12월 22일 12시 8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약에 이 동네 사람들이 그 시각 이전에 자발적으로 광장에 나와 차우세스쿠 타도를 외쳤다면 이 동네도 혁명에 참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사람들이 같은 행동을 했다면 뒷북을 친 거죠. 쫀쫀한가요? 하지만 텔레비전 생방송을 통해 중계된 현대사를 직접 체험했던 부카레스트의 시민들과는 달리, 이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 한 역사의 일부가 될 수 없습니다. 소도시 사람들의 자존심 문제인 거죠.


이런 식의 이야기에서 이벤트의 중요성은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혁명은 혁명 그 자체의 의미 대신 동네 사람들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존재하는 걸요. 그리고 이 얼빵한 트리오는 그것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마네스쿠는 자기랑 (편리하게도 모두 죽거나 캐나다로 이민 간) 몇몇 동료들이 12시 8분 이전에 광장에 나왔다고 주장하지만, 돌아오는 건 야유와 반박뿐입니다. 정말 그가 그날 광장에 나왔을까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만 정말 그렇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몇초 일찍 광장에 나왔다고 해서 그의 행동에 여벌의 무게가 얹혀지는 건 아니죠.


재미있는 건 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소동이 생중계되는 동안 영화가 이중의 현실성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선 혁명의 현실성입니다. 피튀기는 유혈사태가 일어났고 혁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소시민들에겐 그건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들에게 혁명은 피스코치 노인의 막판 회상에 오히려 더 가까웠을 겁니다. 둘째는 이 소동이 1989년 부카레스트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보다 2005년 부카레스트 동쪽 어딘가에 있는 작은 마을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을 더 잘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습니다. 거대한 역사적 이벤트가 일어나고 그 때문에 세상이 바뀌어도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 변화는 곧 일상의 무게 속에 묻혀버리죠. 혁명으로 아무 것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무의미한 냉소입니다. 하지만 혁명이 현실이 아닌 어떤 것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더 심각한 착각이죠.


설정만 보면 촌티나는 막장 코미디가 될 수 있었던 작품이지만,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는 예상 외로 울림이 크고 감정 폭이 넓은 영화입니다. 그건 생방송을 위장한 가짜 다큐멘터리라는 형식 자체보다는 그를 통해 영화가 담아내는 자잘한 삶의 진실과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는 시적 감흥 때문이겠죠. (08/02/06)


★★★☆


기타등등

과연 제가 루마니아의 현대사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는지 의심이 듭니다. 그건 다른 관객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우리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이 정말로 충분한 적은 거의 없죠. 루마니아 사람들에게 이 코미디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감독: Corneliu Porumboiu 출연: Mircea Andreescu, Teodor Corban, Ion Sapdaru 다른 제목: 12:08 East of Bucha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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