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프리카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로이스 덩컨이 쓴 청소년 용 추리소설이 원작입니다. 덩컨은 그 시장에서는 꽤 알아주는 작가이고 [나는 네가...]도 잘 팔린 소설이지만, 정작 영화의 오프닝 크레디트에는 로이스 덩컨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각본: 케빈 윌리엄슨'이라는 자막만 거창하게 나올 뿐이지요. 오프닝만 본 관객들은 케빈 윌리엄슨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쓴 줄 알 겁니다. [스크림] 이후 이 친구가 얼마나 컸는지 입증하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지요.


듀나 이 영화의 마케팅 전략도 어떻게든 영화를 [스크림]과 닮게 만든다는 것이었지요. 네브 캠벨에 이어, [파티 오브 화이브]의 제니퍼 러브 휴이트를 여자 주인공으로 끌어들인 것부터 그런 음모를 드러내는 것이고요. 물론 케빈 윌리엄슨이 [파티 오브 화이브]의 팬이라면 또 다른 이야기지만요.


파프리카 하여간 '각본: 케빈 윌리엄슨'이라는 자막은 몇가지 오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를 순수한 케빈 윌리엄슨의 영화로 보고 플롯 분석을 해대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고 '윌리엄슨 답지 않은(?)' 진지한 접근법 때문에 그 친구를 '타락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겠고요.


듀나 솔직히 말해, 윌리엄슨은, 그를 예찬하고 연구하는 평론가들과는 달리 관습적인 장르 전통에 훨씬 강한 매력을 느끼고 있는 작가 같습니다. [스크림] 자체도 이 장르에 대한 강한 애정의 산물이 아니었나요? 이런 친구들은 언제까지나 [스크림]같은 '메타 호러'만 만들어대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본격적인 정통 장르 영화를 시도하고 말죠. [할로윈 7]의 각본을 쓴다는 그 사람의 다음 계획만 해도 그런 사실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나는 네가...]의 각색만 해도 그런 전통적인 요소에 대한 매력을 거부하는 요소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실 그랬다면 또 어색했겠지요. [나는 네가...]의 이야기를 [스크림]처럼 비튼다고 해서 영화가 나아질 것 같나요? 어림없는 소리지. [나는 네가...]가 의도하는 것은 장르 영화의 요란하고 값싼 매력을 와이드 스크린에 쫙 까는 것이지 그 이상은 아닙니다. 물론 진부함도 이런 영화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파프리카 진부함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습니다. 물론 장르 클리셰가 이런 영화의 큰 재미 중 하나라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그리고 많은 장르 애호가들은 그런 것들을 일부러 즐기지요. 추리소설 독자라면 에르큘 프와로의 거만한 살인 강의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며 쥘 베른느의 독자들은 그의 갑작스러운 생물학 강의를 오히려 귀엽다고 느끼겠지요. 50년대 B급 영화 팬들에게 그런 영화들의 싸구려 특수 효과는 매력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단점'이라는 점은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네가...]의 장르 클리셰가 소위 '캠피'한 매력을 풍긴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그것이 이 영화의 질이나 재미를 높인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군요. 결국 그런 클리셰들은 장르의 매력일 뿐 작품의 장점은 아니에요.


듀나 어떻게 장르와 작품을 그렇게 간단하게 갈라놓을 수 있어요?


파프리카 묻지 말아요. 난 그냥 할 수 있으니까.


듀나 추리 영화로서 [나는 네가...]는 어떨까요?


파프리카 물론 청소년 추리 소설이 가진 그 익숙한 느낌을 제가 즐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어요. 하지만 스토리에 문제가 많다는 것도 역시 부인할 수 없네요. 많은 부분들이 이상해요. 첫번째 희생자가 맥스인 것도 이해하기 힘들며 맥스의 시체를 줄리의 차에서 사라지게 한 것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재주입니다(그 많은 게들을 다 어떻게 없앨 수 있었을까요?)


듀나 호러 영화로 따진다면, 이 영화는 도시 전설을 다룬 좋은 예라고 해야겠지요. 이 영화에서 이용한 것은 그 유명한 '손잡이에 달린 갈고리 손' 전설인데, 직접 그 이야기를 발전시키는 대신 이미지를 꽤 영리하게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노스 캐롤라이나의 어촌을 무대로 해서 갈고리의 당위성을 부여하는 방법이나, 나중에 그 손을 잘라내어 전설과 일치시키는 효과를 낸 결말같은 것은 꽤 좋다고 생각해요.


숨겨진 범죄의 폭로라는 윌리엄 캐슬식 아이디어를 역전시킨 것도 나름대로 재치...


파프리카 윌리엄 캐슬요? 어떤 영화요?


듀나 [나는 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봤다] 말이에요. 물론 두 영화는 반대죠. 캐슬의 영화에서는 전화를 거는 쪽이 주인공이고 들킨 쪽이 살인마니까요. 하지만 아이디어의 등뼈는 같죠.


추리물과 호러가 만나는 부분은 좀 더 다듬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둘이 만나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둘을 만나게 해서 얻을 수 있는 많은 장점들을 놓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충분히 캐릭터들을 깊숙이 파헤칠 수도 있는 소재였지만, 대부분 수박 겉핥기로 지나치지 않았던가요?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진짜 호러는...


파프리카 ...캐릭터의 뱃속까지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요?


듀나 뭐 그렇다는 거죠. 하여간 이게 케빈 윌리엄슨 탓인지 로이스 덩컨 탓인지는 모르겠네요. 언젠가 원작을 읽어봐야겠어요. 덩컨의 책은 그래도 꽤 쉽게 구할 수 있는 축에 드니까요.


파프리카 이 영화는 짐 길레스피의 극장용 영화 데뷰작인데,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어요. 특히 종종 삽입되는 깜짝 쇼는 지나치게 작위적이어서 내공을 좀 더 쌓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 영화를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것은 스타 플레이어들의 적절한 활용과 케빈 윌리엄슨의 명성이지 감독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듀나 제니퍼 러브 휴이트나 사라 미셸 겔러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적절하게 해주었던 것 같긴 해요.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배우를 뽑으라면 역시 미시 역의 앤 헤이시가 아니었나 싶어요.


제니퍼 러브 휴이트에 대해 한마디 더 하자면, 솔직히 말해 기분이 좀 이상했답니다. 아니, 그 애가 어느 새 그렇게 컸단 말이예요?


파프리카 그 정도면 이쁘게 큰 거죠, 뭐. 그런데 [파티 오브 화이브]를 안 보나 보죠?


듀나 잘 안 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게 그렇더군요. 텔레비전 시리즈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그 캐릭터의 연속성 때문에 그게 눈에 잘 안 뜨이지만 독립된 영화는 사정이 다르더라고요. 하여간 어린애처럼 보던 애가 갑자기 말만한 처녀가 되어서 나오니까 늙은 기분이 들어요.


브리지트 윌슨이나 사라 미셸 겔러와 같은 '여전사' 배우들이 그렇게 죽어나가는 걸 보는 기분도 그렇게 좋지는 않더군요. 배우들에게는 이미지 전환이 되겠지만 관객으로서 보는 기분은 별로예요.


파프리카 속편인 [나는 아직도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촬영중이죠. 이 영화는 올해 가을 시즌에 개봉될 것 같은데 감독과 작가가 모두 다릅니다. 내용을 잠시 보니 전편의 쇼킹한 엔딩에서 이어지는 것 같지는 않고 갈고리 살인마는 마이크 마이어즈나 프레디 크루거처럼 시리즈 살인마의 계보를 이어갈 것 같습니다. 80년대 호러 영화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일까요?


듀나 알 게 뭐에요. 결론지어 말할까요? [나는 네가...]는 걸작도 아니고 [스크림]처럼 장르에 대한 재치있는 분석을 내리지도 않는 그냥 보통 수준의 진부한 장르 영화입니다. 그러나 이런 싸구려 캠프 영화의 맛을 오래 동안 즐기지 못한 저에게는 꽤 그럴싸하게 즐거운 2시간이었어요.


파프리카 음주 운전을 해서는 안된다는 건전한 교훈도 잊지 말아야하겠죠? 케빈 윌리엄슨도 이 점을 당부했다고 하더군요!


듀나 웃기지도 않네요. 술을 마신 건 레이가 아니었잖아요! (98/06/08)


★★☆


기타등등

1. 이 영화에 나오는 '도슨즈 비치'라는 지명은 케빈 윌리엄슨의 텔레비전 시리즈 [도슨즈 크릭]과 살짝 연결됩니다.


2. [도슨즈 크릭]의 첫 시즌 할로윈 에피소드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스크림]을 적당히 믹스한 패러디였습니다. 조이가 도슨에게 [나는 네가...]가 형편없는 싸구려 영화라고 욕하는 장면도 들어 있었고요. 저희는 이 에피소드가 [나는 네가...]보다 더 재미있었습니다. :-)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