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표정들 Las Caras de la luna (2001)

2010.02.06 19:12

DJUNA 조회 수:5261

 

망명한 아르헨티나 영화 감독, 바이섹슈얼인 미국인 예술사가, 노년에야 영화 일에 뛰어든 멕시코인 페미니스트, 투파마로스 게릴라 출신인 우루과이 다큐멘터리 감독, 스페인인 영화 제작자... 국적도 배경도 다른 다섯 명의 영화인들이 멕시코시티에서 열리는 제3회 라틴 아메리카 여성 영화제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모입니다. 이들은 영화제가 열리는 6일 동안 영화를 보고 토론을 하고 싸우고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를 찾고 옛 애인을 만나고 새 애인을 찾고 그들 중 한 명의 장례식을 치릅니다.

 

기타 쉬프터의 [달의 표정들]이 감독의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건 감독 설명 없이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영화가 끝날 무렵 우리의 주인공들 중 한 명이 여성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고요. 아마 쉬프터는 영화의 줄거리만 들이밀고도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수많은 여성영화제에 초대되었을 겁니다. 역시 이상할 것 하나도 없는 일이죠. 여성 영화제에서 여성 영화제에 대한 영화를 상영하는 건 분명 흥미로운 행사일테니까요.

 

쉬프터는 할 이야기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고 [달의 표정들]도 수많은 주제와 소재들로 빽빽하게 차 있습니다. 다섯 주인공들은 모두 현대 여성 영화인들의 다양한 입장을 투영하기 위해 선택되었습니다. 이들이 영화 내내 떠들어대는 수다도 마찬가지고요. 그건 현대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환경에 대한 기술일 수도 있고 여성 예술가 일반이나 페미니즘에 대한 토론일 수도 있으며 연애의 파워 게임에 대한 분석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쉬프터가 다루는 소재가 생각보다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여성 영화제는 좋은 픽션을 만들기에 이상적인 소재가 아니죠.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캐릭터들의 입을 통해 직접 쏟아져 나오고 그들의 상당수는 드라마에 녹아들지 못합니다. 다양한 주장에 너무 신경 쓰다보니 캐릭터들이 스테레오타입화된 것도 문제고요. 각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영화가 슬그머니 [그랜드 호텔] 장르로 옮겨갔는데, 이건 정말로 제대로 만들기가 힘든 장르거든요.

 

영화제라는 소재가 충분한 극적 구심점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겁니다. 아무리봐도 안 그런 것 같단 말이에요. 내부인들만 알 수 있는 영화제의 세부 묘사가 많이 나오긴 하지만 주제와 직접 연결된 건 많지 않고 주인공들이 그렇게까지 행사나 영화들에 열의를 가지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아요. 덕택에 각각의 캐릭터들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쇼시의 연애담과 같은 개별 스토리들은 지루하기만 하고요. 차라리 영화제 이야기를 늘리고 그 토론을 통해 캐릭터와 그들의 인생을 간접적으로 묘사했다면 훨씬 효율적이었을 거예요. 더 수다스러운 영화가 되었겠지만 어차피 그거야 소재를 선택할 때부터 각오했어야 했던 것이니까요.

 

[달의 표정들]은 영화 자체의 질보다는 소재 자체가 주는 따뜻한 매력과 쟁쟁한 스페인어권 배우들을 긁어모은 캐스팅 덕을 더 많이 보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직설적인 어투와 스테레오타입화된 캐릭터들에 대해 투덜거렸지만 사실 그건 종종 여성 영화제의 긍정적인 특징들과 연결되기도 하죠. 전 아나 토렌트와 제랄딘 채플린의 재회를 보며 괜히 향수에 젖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역시 더 나아질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솔직하게 다큐멘터리로 만들면 어땠을까요? 수상식의 심사 과정은 제대로 기록하기 쉬운 소재가 아니지만 그랬다면 더 솔직하고 입체적인 영화가 되었을텐데? (03/04/16)

 

★★☆

 

기타등등

요새 채플린은 스페인어권 배우로 굳어진 것 같아요. 비중있는 역으로 나오는 작품들은 모두 스페인어 영화들이니까요.

 

감독: Guita Schyfter 배우: Carola Reyna, Geraldine Chaplin, Ana Torrent, Carmen Montejo, Diana Bracho, Haydeé de Lev, Nora Velázquez 다른 제목: The Faces of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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