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Bram Stoker's Dracula (1992)

2010.02.06 20:33

DJUNA 조회 수:7105

 

제임스 V. 하트가 쓴 [드라큘라]의 각본은 원래 마이클 앱티드가 감독할 예정이었던 텔레비전 영화용이었습니다. 그 각본이 맘에 든 위노나 라이더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에게 가져가서 극장용 영화가 된 것이었죠. 당시 라이더는 [대부 3]의 도중 하차로 코폴라에게 심적으로 빚진 게 있었는데, [드라큘라]로 그 빚을 단단히 갚은 셈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상업적 성공으로 코폴라와 조트로프 스튜디오는 몇 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빚을 완전히 청산할 수 있었거든요.

 

그러나 하트의 각본이 그렇게까지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경험있는 작가이기도 한 코폴라가 이 각본의 노골적인 결함을 왜 그냥 지나쳤는지 종종 이상하게 생각될 정도죠.

 

하트는 이 각본에서 두 가지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브램 스토커의 원작을 가장 충실하게 살린 각색물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드라큘라의 원래 모델인 블라드 드라쿨의 실제 삶과 로맨틱한 픽션을 섞어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는 러브 스토리를 만드는 거죠.

 

문제는 이게 쉽게 결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둘은 전혀 다른 이야기거든요. 특히 첫번째 목표가 충실한 각색이기 때문에 두번째 목표에 어울리는 유연함을 갖추기 어려워요.

 

하트가 이런 소재를 다룰만한 능력이 있는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는 뻣뻣했습니다. 그는 그냥 자기가 만든 로맨스와 브램 스토커의 원작을 토막내서 끼워맞추었어요. 덕택에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종종 같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덜컹거립니다. 특히 개작이 많은 캐릭터인 드라큘라와 미나가 그래요.

 

캐스팅 역시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영화로 국제적인 스타가 된 게리 올드먼은 좋았습니다. 그는 굉장히 명암이 강한 오버 액션으로 일관했는데, 드라큘라의 이런 캐릭터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인상적인 연기임은 분명했거든요. 상대역인 안소니 홉킨즈도 만만치 않았고요. 하지만 이 영화 제작의 일등 공신이었던 위노나 라이더는 아무래도 약했습니다. 라이더의 '자그마한' 연기가, 이 영화가 의도했던 그랜드 로맨스를 감당할 수가 없었던 거죠. 열심히 영국인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는 키아누 리브즈의 엉성한 연기는 모두의 실소감이었고요.

 

하지만 이런 심각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드라큘라]는 여전히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스토리는 엉성했고 의도했던 로맨스도 충분히 달성하지 못했지만, 굉장히 보기는 좋았던 영화였던 거죠.

 

코폴라의 영화는 첨단과 복고의 괴상한 결합이었습니다. 늘 기술적 도전에 신경썼던 감독의 작품답게, 이 영화는 기술적인 면에서 시류를 앞선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전체를 디지털로 편집한 최초의 장편 영화들 중 하나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가 이 영화에 사용했던 특수 효과나 표현 방식은 엄청나게 구식이었습니다. 디지털 특수 효과가 전면으로 부상하고 있던 1992년도 작품이었지만, 그는 영화 전체를 19세기 마술사들도 썼을 법한 구식 효과들로 일관했습니다. 모르겠어요. 드라큘라의 이가 자라는 장면은 컴퓨터 그래픽이었을까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들은 모두 공들인 수공업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코폴라는 그 효과들을 토머스 샌더스의 세트와 에이코 이시오카의 미치광이 의상들과 결합해서 독일 표현주의자들이나 당연히 생각했을 과장된 비전에 투입했습니다. 결과는 오페라와 라스 베가스 마술쇼, 밀라노 패션쇼를 뒤섞은 듯한 스펙타클이었습니다.

[드라큘라]는 요란한 잡탕입니다. 자신의 기예를 뽐내고 싶어하는 늙은 장인이 만든 거대한 장난감처럼 보이기도 하고 영화 페티시스트의 몽정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여전히 결점은 눈에 들어오지만 이와 비슷한 성격의 영화들이 앞으로 쉽게 나올 것 같지는 않군요. (03/01/02)

 

★★★

 

기타등등

이 영화가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라는 제목을 단 건 순전히 판권 문제 때문에 [드라큘라]라는 제목을 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 이후로 문학 각색물에 원작자의 이름을 앞에 붙이는 게 잠시 유행처럼 번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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