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리머 Dreamer: Inspired by a True Story (2005)

2010.02.10 19:39

DJUNA 조회 수:7307

 

영화 [드리머]라는 제목 뒤에는 'Inspired by a True Story'라는 딱지가 붙어 있습니다. 이건 이 영화가 실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냥 비슷한 사건이 있어서 그걸 모델 삼아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거죠. 영화는 엔드 크레딧 끝에 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모두 허구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 수입업자들은 이게 몽땅 사실이라고 선언하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영화 끝에 달아 분위기를 망치고 있지요.

 

네, 그런 말이 있긴 했습니다. 머라이어즈 스톰이라는 말이 이 영화의 소냐도르처럼 다리를 다쳤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다시 경마장으로 돌아간 적 있어요. 이 말 이름은 영화에서도 언급됩니다. 이렇게 영화로까지 만들어졌으니 분명 그 동네에서는 희귀한 일이었겠지요.

 

그러나 [드리머]의 이야기는 결코 희귀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는 전형적인 소녀와 말 이야기이고 그만큼이나 전형적인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도전기예요. 사전 정보가 없는 관객들도 아무런 어려움 없이 스크린 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게 나쁜 일일까요? 아뇨. 이런 영화들은 언제나 필요합니다. 이미 수백 번 이상 만들어졌으면서도 여전히 여러 사람들에 의해 반복되는 이야기나 소재가 있는데, [드리머]의 이야기도 바로 그런 것들 중 하나입니다. 새로울 필요는 없어요. 그냥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완성도 높게 만들면 됩니다.

 

그 익숙한 이야기는... 벌써 여러분은 짐작하고 있습니다. 부상당한 말 이야기지요. 경주 중간에 다리가 부러진 암말 소냐도르는 안락사될 위기에 처하는데, 마주인 파머의 냉정함에 질린 조련사 벤 크레인이 그 자리를 관두면서 말을 사들입니다. 그건 아마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예쁜 딸 케일이 커다란 눈을 똥글똥글 뜨고 아빠와 말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이들은 일단 말을 회복시켜 교배용으로 쓰려하지만 소냐도르는 불임입니다. 가뜩이나 돈에 쪼들리는 가족이 말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말을 다시 경마장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암만 봐도 새로운 구석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다행히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걸 알고 있어요. [드리머]의 가장 큰 장점은 이들 모두가 이 지극히 뻔한 소재와 한계와 가능성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는 딱 좋은 중도의 길을 갑니다. 괜히 클리셰를 의식해서 농담 삼지도 않고 불필요하게 과장된 감정을 터뜨려 멜로드라마를 망치지도 않지요. 영화는 정통적인 멜로드라마의 공식을 따라가면서도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단순해 보이지 않습니다.

 

캐스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코타 패닝이 반짝거리는 어린아이다운 매력을 발산하는 동안 커트 러셀이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과 같은 성인 배우들이 묵직하게 분위기를 잡아주는 앙상블은 상식적이지만 이상적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케일은 패닝이 연기한 캐릭터들 중 가장 감정이입이 쉬운 정상적인 캐릭터인데, 여러분이 패닝의 어떤 점을 좋아하느냐에 따라 캐릭터에 대한 선호도가 결정될 겁니다. 선호도야 어쨌건, 좋은 연기인 건 변함없지만요.

 

[드리머]는 좋은 회사에서 잘 만든 기성품 가전도구와 같은 영화입니다. 엄청나게 특별한 새 기능은 없지만 과일을 갈거나 밥을 짓는 것 같은 자기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는 작은 기계 말이에요. 벌써 미국에서는 DVD로 나왔으니, 지금도 지구 어느 구석에선 험하고 불쾌하게 돌아가는 세상을 잊거나 그냥 우울해진 기분을 풀기 위해 이 영화의 디스크를 DVD 플레이어 안에 넣고 편안한 1시간 40분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겠죠. 저 역시 그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것 같군요. (06/04/13)

 

★★★ 

 

기타등등

원래 각본에서는 주인공 케일이 남자아이였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다코타 패닝의 캐스팅 없이는 영화의 제작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여자아이로 바뀌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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