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X 부인의 이혼 The Divorce of Lady X (1938)

2010.02.07 12:55

DJUNA 조회 수:12991

 

1.

짙은 안개 때문에 자선 무도회가 열리던 호텔에서 꼼짝할 수 없게 된 레즐리 스틸은 이혼 전문 변호사 에버래드 로건의 방에서 밤을 보내게 됩니다. 다음날 미어 경의 이혼 소송 의뢰를 받은 로건은 레즐리가 바로 사건 당사자인 미어 경부인이라고 착각해버리죠. 레즐리는 그런 로건의 착각을 이용해 신나게 그를 가지고 놀고, 그럴수록 로건은 레즐리에게 점점 깊이 빠져듭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장난만 치고 있을 수는 없었던 레즐리는...

 

2.

[X 부인의 이혼]의 원작은 길버트 웨이크필드의 연극 [Counsel's Opinion]입니다. 이미 앨런 드완이 동명의 영화로 만든 적이 있으니 [X 부인의 이혼]은 두 번째 영화입니다.

 

웨이크필드의 연극은 그렇게 대단한 작품은 아닙니다. 도입부를 장식하는 레즐리와 로건의 밀고 당기기는 재미있고, 로건의 오해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아이디어도 나쁘지는 않지만, 간단한 아이디어를 지나치게 연장하는 경향이 있고, 또 펼쳐놓은 사건들을 정리하는 결말도 안이한 편이거든요. 연출도 평이해서 이 영국식 스크루볼 코미디에서 하워드 혹스나 프랭크 카프라의 완벽한 터치를 기대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나 이 바보같은 각본의 바람에 날릴 듯한 가벼운 터치를 즐기는 기분 또한 나쁘지 않고, 주연 배우 멀 오베론과 로렌스 올리비에 모두 예쁘고 매력적이어서 보는 동안은 참 즐겁습니다. 특히 올리비에의 모습은 거의 당황스럽기까지 해요. 그가 이처럼 바보같고 순진한 역을 하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영화 버전 [뜻대로 하세요] 정도일텐데, 이 영화에서 훨씬 더 '귀엽답니다.' 조연인 랠프 리처드슨 역시 유쾌한 코미디를 선사하고요.

 

3.

이 영화가 흥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여성 운동의 결과 서서히 변하기 시작한 당시의 남녀간 역학관계를 살짝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결코 깊이 있는 것은 아니며 주로 남자들의 불평으로 시작해서 구식 로맨스로 끝나버리니 진지한 내용 따위는 바랄 수 없죠. 하지만 로건의 캐릭터가 법정에서 늘어놓는 한탄에는 아직 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남자들의 하소연이 담겨 있습니다. 20세기 상황에 대해 이상할 정도로 19세기 수식어들을 남발하는 그의 변론에는 묘한 시대착오적인 느낌이 있어서 재미있어요. (00/02/13)

 

★★★

 

기타등등

멀 오베론이 로잘린드를 연기하는 [뜻대로 하세요]를 봐도 재미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전에 오베론이 조르쥬 상드를 연기하는 걸 본 적 있는데 남자 옷이 썩 잘 어울리더라고요. 게다가 이 영화에서 로렌스 올리비에를 가지고 노는 방식도 무척 로잘린드답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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