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삶 Das Leben der Anderen (2006)

2010.01.31 23:03

DJUNA 조회 수:6639

감독: 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출연: Ulrich Mühe, Sebastian Koch, Martina Gedeck, Ulrich Tukur, Thomas Thieme 다른 제목: The Lives of Others

국가권력이 국민의 프라이버시에 지나치게 간섭하면 음란해집니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상이 순식간에 포르노의 재료가 되지요. 통독 이후 슈타지의 감시 대상이었던 사람들이 분노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일 겁니다. 도청자료들은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 소중한 기억들을 음란화시킵니다.

하지만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타인의 삶]에서는 도청이라는 행위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비밀경찰 비즐러는 반체제의 가능성이 있는 극작가 게오르크 드라이만과 그의 여자친구인 연극배우 크리스타-마리아 질란트를 도청하면서 아주 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단순한 포르노 기록자의 위치를 넘어서 예술가가 되고 그들 인생의 참여자가 된 것입니다.

몇십 년 동안 조국에 충성하는 것 이외엔 어떤 다른 기능도 보여주지 않았던 시스템의 부속품이었던 그가 왜 갑자기 그런 변신을 하게 되었을까요? 드라이먼과 질란트가 특별한 사람들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니면 그냥 임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그의 무표정한 얼굴 뒤에서 뭔가가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던 거겠죠.

하여간 비즐러는 이전과는 달리 조용한 기록자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가 도청하는 두 사람의 삶에 진지하게 빠져들 뿐만 아니라 간섭까지 하지요. 그는 전지전능한 신처럼 그들의 인생에 끼어들어 진로를 조정하고 그들이 위험한 짓을 저지르면 보호해주기까지 합니다. 물론 그 험악한 세상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지만요.

비즐러의 행위에서 재미있는 건, 그의 모든 행동이 예술의 필터를 통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그는 한 명의 관객으로서 그들의 삶을 바라보기만 합니다. 그러다 그는 연극의 연출자라도 되는 것처럼 그들의 삶을 조금씩 통제하다가 나중에는 직접 작가 겸 배우가 되어 아주 잠시나마 그들 세계에 뛰어들기도 하죠. 드라이먼과 질란트가 모두 연극인이기 때문에 비즐러의 행동은 여러 모로 연극이라는 매체와 겹쳐집니다.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가 이 소재에 관심을 가진 것도 바로 이 형식적 재미 때문이 아니었나 싶어요.

하지만 [타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피란델로식 게임으로 일관하는 지능적인 영화는 아닙니다. 오히려 거의 순진무구하게 보일 정도로 우직하고 직설적인 드라마지요. 그리고 영화의 진짜 힘도 바로 그 낡고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멜로드라마에서 나옵니다. 단순한 지적인 유희를 즐기기엔 주인공들이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그들이 나누는 희미한 교류가 그만큼이나 절실한 것이죠. 지나치게 길고 앞뒤가 너무 딱딱 맞아떨어지는 결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마지막 장면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건 그 절실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07/03/07)

★★★☆

기타등등

영화 보면서 자꾸 [스테이크아웃] 생각이 나더군요. 주제나 장르는 전혀 다르긴 하지만요. 하긴 도청자들의 이야기는 어딜 가나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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