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1933)

2010.02.06 19:07

DJUNA 조회 수:5271

감독: James Whale 출연: Claude Rains, Gloria Stuart, William Harrigan, Henry Travers, Una O'Connor, Forrester Harvey

[투명인간]은 제임스 웨일의 두번째 유니버설 호러 영화입니다. 물론 정확성을 따지시는 분들은 그보다 먼저 나온 그의 블랙 코미디 [더 올드 다크 하우스]를 지적하시겠지만, 그 작품은 우리가 머리 속에 박고 있는 유니버설 호러의 이미지와는 꽤 다른 편이죠. 과연 호러 영화인지도 확신할 수 없고요. 하지만 [투명인간]은 모범적인 유니버설 호러 영화이며, 성공한 유니버설 호러 영화들이 그렇듯 캐릭터 괴물의 명성과 끝도 없이 이어지는 속편들을 낳았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 작품의 원작은 허버트 조지 웰즈의 소설입니다. 영화는 전작 [프랑켄슈타인]과는 달리 원작에 꽤 충실한 편입니다. 스승의 딸과 주인공 그리핀이 펼치는 로맨스가 삽입되었고 소설에서는 끝까지 살아남는 켐프 박사가 중간에 살해당하며, 투명인간 그리핀의 테러 행위가 보다 거대해졌다는 등의 차이는 있지만 스토리 자체는 크게 변한 게 없어요.

그러나 원작의 주제는 축소되었습니다. 웰즈의 팬들은 실망했을 거예요. 원작에서 투명인간은 꽤 복잡한 존재였고 다양한 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투명인간은 인간 소외의 상징일 수도 있었고, 계급 차별의 희생자일 수도 있었으며, 기게스의 반지의 현대판 우화일 수도 있었습니다. 머리를 조금 더 굴린다면 다른 의미도 꺼낼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투명인간이 벌이는 후반부의 정신 나간 행동의 동기는 모두 '투명해진다'라는 사건에서 연역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모두 이걸 약의 부작용으로 설명해버리지요. 원작에는 있던 풍부한 상징과 우화가 단순한 미친 과학자 이야기로 줄어든 것입니다.

그러나 웨일의 [투명인간]은 여전히 중요한 호러 영화입니다. 물론 가장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특수 효과 분야입니다. 단순히 배우에게 분장만 시키면 되었던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영화는 특수 효과 분야에 새로운 문을 열었습니다. 특히 옷을 걸친 투명인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요. 사실 이 부분의 특수 효과는 지금도 특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에서 클로드 레인즈가 검은 벨벳으로 얼굴과 손을 가리고 연기했던 것처럼 케빈 베이컨이나 체비 체이스도 푸른 천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칠한 뒤 연기해야 했으니까요. 물론 아직 초창기여서 몇몇 흠은 보이지만 (배우의 목에 가려져 셔츠 뒤가 안보이는 장면 같은 것들 말이에요) 시리즈가 계속 발전하면서 이런 기술적 미흡함은 조금씩 보완되었습니다.

물론 웨일의 영화로서도 중요합니다.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살짝 맛만 보여주었던 그의 괴팍한 캠프 취향이 이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으니까요. 아, 물론 몇몇 분들은 [더 올드 다크 하우스]를 지적하시겠지요. 하지만 그 영화는 원래부터 괴팍한 코미디가 되려고 작정한 영화여서 오히려 차별성이 덜합니다. 그의 괴팍함이 본격적으로 유니버설 호러 영화에 이식된 건 [투명인간]이 처음이라고 해야겠지요.

하여간 [투명인간]은 정신없습니다. 어떤 때는 심각한 호러 영화인 척 하지만 곧이어 그 호러 영화는 시치미를 뚝 뗀 코미디로 자리를 확 바꾸어 버리니까요. 유나 오코너와 같은 배우들의 극도로 과장된 연기, 바지만 입고 할머니를 쫓아가며 노래를 불러대는 투명인간의 정신나간 행동과 같은 것들을 들여다보면 웨일이 어떤 미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는지 슬슬 감이 잡힙니다. 물론 이런 경향은 그의 최대 걸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에서 절정에 달하지만 [투명인간]의 과도기적 단계 역시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01/05/09)

★★★☆

기타등등

이 영화는 클로드 레인즈의 미국 영화 데뷔작입니다. 영화 대부분 목소리만 나오지만요. 참, 그리핀의 여자 친구로 나오는 글로리아 스튜어트가 [타이타닉]의 할머니 로즈라는 건 다들 아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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