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 피플 Cat People (1942)

2010.02.13 17:23

DJUNA 조회 수:4432

감독: Jacques Tourneur 출연: Simone Simon, Kent Smith, Jane Randolph, Tom Conway, Elizabeth Russell

1.

올리버 리드는 동물원에서 만난 신비로운 세르비아 여인 이레나 두브로브나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합니다. 그러나 그의 결혼 생활은 결코 기대와 같지 않았으니, 그건 이레나가, 자기가 성적으로 흥분하기라도 하면 전설의 고양이 인간이 되어 그를 해칠 지도 모른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레나는 정신분석을 받기 시작하고 올리버는 직장 동료인 앨리스에게서 새로운 사랑을 발견합니다. 말하나 마나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이레나는...

2.

RKO 라디오 사에게 1942년은 위태로운 해였습니다. 큰 돈을 쏟아부은 오슨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 때문이었죠. 다른 웰즈의 걸작들처럼 지금이야 이 영화도 고전 취급을 받지만 당시에는 재정적 재난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그 때 백마 탄 기사처럼 RKO 라디오 사를 위기에서 구한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풋내기 제작자 발 루튼이 역시 풋내기 감독 자크 투르뇌를 고용해 만든 B급 호러 영화 [캣 피플]이었습니다. 참 잽싸고 간소한 영화였죠. 대단한 배우도 없었고 제작비도 겨우 13만 달러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 큰 돈을 들여 만든 [위대한 앰버슨 가]의 세트까지 그대로 재활용 해주었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지요. 그리고 그 작은 영화가 벌어들인 수백만 달러의 돈은 RKO 라디오 사를 한숨 돌리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그것으로 끝이었을까요? 그건 아니었습니다. [캣 피플]은 단순히 싸게 만든 흥행 히트작이 아니었어요. 이 영화에는 발 루튼과 자크 투르뇌라는 재능있는 인물들의 실력을 보여준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 내고 있었습니다.

열렬한 투르뇌 예찬자인 마틴 스콜세지는 이 영화의 영화사적 무게가 [시민 케인]과 맞먹는다고 주장합니다. B급 영화에 치우친 그의 취향을 고려해야만 이해가 되는 주장이지만, 그래도 그 주장에는 꽤 강한 당위성이 서 있습니다. 적어도 [캣 피플] 이전에 그림자와 부재의 공포스러움을 그렇게 강하게 보여준 영화는 없었으니까요.

3.

발 루튼은 교양이 철철 넘치는 남자였습니다. 공포 영화를 만들기엔 지나치게 교양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죠. 그가 제작한 매혹적인 공포영화들에는, 그 조촐한 제작비와 센세이셔널리즘에도 불구하고 늘 어떤 격조가 느껴지는데, 그건 그의 세련된 취미가 영화를 싼 취향으로 몰고가는 것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캣 피플]만 해도 그래요. 이 영화의 줄거리는 그렇게 독창적인 것도, 고상한 것도 아닙니다. 흑표범으로 변하는 여자 이야기야 늑대인간 이야기의 흔해빠진 변종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루튼은 이 주제를 아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우선 그는 이 주제를 정신분석과 연결시켰는데, 당시로는 상당히 새로운 선택이었습니다. 새로울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도 했죠. 영화는 이 간단한 터치로 인해 어떤 깊이를 부여받았고 프로이트의 엉덩이 밑에 깔려 있었던 당시 지식인 관객들에게 색다른 방식으로 어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새보면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거야 정신분석이란 게 맛이 간 학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 발 루튼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가 싸구려 특수효과와 노골적인 괴물들을 싫어했다는 것도 장점이 되었습니다. 제한된 예산도 그런 그의 취향을 정당화시키는 요인이었겠지만요. 하여간 자크 투르뇌의 은밀한 스타일이 발 루튼의 우산 속에서 피어났다는 것은 거의 자명하다고 해야겠지요.

[캣 피플]의 시각적인 이미지들은 지금와서도 거의 낡아보이지 않는데, 그건 세월이 흐르면 쉽게 촌스러워져 버리는 특수효과들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레나가 흑표범으로 변하는 장면은 아이라이트의 변화만으로 표현되고 살육 장면도 그림자로만 그려질 뿐입니다. 그나마 가장 노골적인 효과는 이레나의 꿈 장면에 삽입된 애니메이션인 듯 한데, 그것도 화면이 흑백인데다 꽤 얌전하게 쓰였기 때문에 [현기증]의 애니메이션 장면보다 덜 낡아보입니다.

물론 자크 투르뇌가 진짜 솜씨를 발휘하기 시작할 때부터 영화는 본 궤도에 오릅니다. [캣 피플]은 주옥같은 장면들이 넘쳐흐르는 영화지요. 유명한 수영장 장면은 모두가 아실 겁니다(폴 슈레이더 감독, 나스타샤 킨스키 주연의 리메이크 버전에서도 이 장면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변신한 이레나가 앨리스의 뒤를 쫓는 장면이나 절망한 이레나가 소파를 손으로 쓸어내리자 커버가 찢겨나가는 장면들도 모두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으시시합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꾸미는 요소들은 흑표범으로 변한 이레나가 아니라 정체모를 어떤 것의 그림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저 멀리서 들리는 가르릉거리는 울음소리입니다. 아마 투르뇌는 이런 장면들을 찍으면서 루튼의 충고를 곱씹고 있었겠지요. "안 보이는 게 더 무섭다구, 이 친구야."

발 루튼의 충고는 옳았습니다. [캣 피플]에서도 그 사실을 입증하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표범이 진짜로 등장하는 장면이 두 장면인가 있는데, 모두 그림자와 분위기로만 일관하는 자크 투르뇌 식 처리보다 훨씬 약합니다. 사실, 투르뇌는 철저하게 분위기와 영화적 트릭만으로 처리하려고 했었지만, 너무 미묘한 영화가 될까봐 겁이 난 스튜디오가 억지로 그 장면들을 넣으라고 강요했다는군요.

4.

[캣 피플]은 발 루튼과 자크 투르뇌의 첫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때까지 헐리웃에 와서 스캔들이나 까먹고 있던 프랑스 배우 시몬느 시몽을 스타의 위치로 끌어올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리메이크에서 고양이와 같은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나스타샤 킨스키와 비교해보면, 시몬느 시몽은 그렇게까지 '고양이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몽의 순박해보이는 외모와 커다란 눈, 어린아이와도 같은 결백한 표정은 이레나 두브로브나를 아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로 만듭니다. 그리고 반 세기가 넘게 쌓아올린 그 친숙함 또한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것이랍니다.

5.

2년 뒤, 발 루튼은 시몬느 시몽을 포함한 [캣피플]의 배우들을 다시 기용해서 [캣피플]의 속편인 [캣 피플의 저주]를 만듭니다. 그러나 그 속편은 제작사나 관객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습니다! :-) (99/01/15)

★★★☆

기타등등

1. 이레나 두브로브나가 새장 속의 카나리아를 만지는 장면은 나중에 [배트맨 2]에서 맵시있게 인용된답니다. 참고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2. [엑스 파일]의 한 에피소드에도 [캣 피플]의 인용이 숨어 있습니다. 3시즌의 7번째 에피소드인 [The Walk]가 바로 그 에피소드입니다. 기억하시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중간에 나오는 수영장 살인 장면은 바로 [캣 피플]의 수영장 장면을 그대로 베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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