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 에어 Con Air (1997)

2010.02.18 21:29

DJUNA 조회 수:3971

감독: Simon West 출연: Nicolas Cage, John Cusack, John Malkovich, Steve Buscemi, Ving Rhames

1. 케이지, 또 라스베가스에 오다.

라스베가스에 눈이 달렸다면, 고장난 비행기를 타고 내려 앉으려는 카메론 포우의 모습을 보고 지겹다는 듯 외쳤을 겁니다. "아니, 또 저 친구야?" 그럴 수밖에요. [콘 에어]는 [허니문 인 베가스], [리빙 라스베가스]에 이은 케이지의 세번째 베가스 영화니까요.

2. [콘 에어]

그렇다면 이번 영화는 뭐냐?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카메론 포우는 잘나가는 특전대원이었지만 제대한 바로 그날 특전대 폼을 잡다가 그만 사람 하나를 죽이고 맙니다. 광고에서는 '아내와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위해서였다' 어쩌구 허풍을 떨지만 사실 카메론이 얌전히 자리만 피했어도 그런 일은 없었지요. 재수없게도 헐리웃 영화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변호사에 걸려든 카메론은, 과실치사임이 분명한 사건인데도 일급 살인죄로 감옥에 들어갑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한 번 법정기록을 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여간 감옥 생활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모범적으로 버텨낸 그가 마침내 가석방되는데, 하필이면 탈옥 계획을 세워놓은 악명높은 악당들이 가득찬 죄수 수송기에 타고 맙니다. 당연히 비행기 안은 묵사발이 되고 카메론은 간수들과 친구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비행기 안에서 열심히 뛰어야 합니다...

3. 제리 브룩하이머

[더 록]의 성공 이후 브룩하이머는 하나의 장르를 세우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콘 에어]에는 [더 록]에서 볼 수 있었던 여러 특징들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적당히 조종할 수 있는 신인 감독, 굵은 줄거리, 좋은 (남자) 배우들, 끈적거리는 감상주의, 죽어라고 잡아대는 똥폼,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러나 브룩하이머의 이러한 시도가 어찌되었건 그의 영화들이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다이 하드]와 같이 강한 흐름은 만들지 못할 겁니다. 이 영화들은 아무래도 뭔가 부족합니다.

4. 똥폼

[콘 에어]의 가장 부족한 점은 액션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뭐, 이 정도도 모자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을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정말 모자라요. 카메론 포우는 비행기에서 악당들을 죽이고 시체에 낙서를 해서 떨어뜨리고 녹음기를 넘기고 간수를 강간하려는 악당을 때려잡고 비행기를 묶는 등등 할 짓은 다합니다. 카메론이 게을렀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도 미흡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한마디로 카메론의 똥폼이 액션을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카메론이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도대체 뭘 하는지 한 번 보세요. 카메라가 슬로우 모션으로 돌아가면 그는 장발을 휘날리며 우거지상으로 카메라 앞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뭐라고 거창한 말을 한마디 하고 두번째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요. 두번째 카메라에 가까워지면 갑자기 또 슬로우 모션이 되면서 장발이 휘날리기 시작하고 다시 거창한 대사를 말하기 시작하죠. 그 다음에 열나게 또 세번째 카메라 앞으로 뛰어가서는...

남자 주인공들이 똥폼 잡는 모습을 보며 침을 질질 흘려대는 저 수많은 관객들이 저희 눈에도 보이니 차마 똥폼 금지 조항을 내리라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똥폼을 어느 정도 생산적으로 넣는 방법도 있습니다. 똥폼에도 종류가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주윤발이 성냥개비를 슬로우 모션으로 거창하게 씹어대는 것은 비생산적인 똥폼입니다. 한두번 성격묘사를 위해 쓸 수는 있어도 결코 남발해서는 안되는 거죠. 하지만 주윤발과 이수현이 우거지상을 쓰며 슬로우 모션으로 성당 안에서 총질을 하는 것은 생산적인 똥폼입니다. 적어도 그들은 똥폼을 잡는 동안에도 악당들을 몇 명이라도 더 쏴 죽이니까요.

그런데 카메론이 잡는 똥폼들은 대부분 첫번째 똥폼입니다. 이러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카메론은 완벽할 뿐만 아니라 지독하게 거창한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관객들의 기대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그 아까운 순간들을 똥폼잡느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겁니다!

5. 액션

카메론이 똥폼잡는 시간을 빼고 계산하더라도 액션은 부족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비행기가 두번째 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액션다운 액션이 얼마나 일어납니까? 카메론은 토끼 한 마리를 구하고 악당 하나를 때려잡았습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럼 두번째 공항 이후에는? 스토리와 별 관계없는 악당 몇을 해치웠고 비행기를 묶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액션'들은 사이러스의 계획에 전혀 방해가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카메론의 잔꾀가 아닌 물리적 행동이 실제로 계획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가 비행기를 장악했을 때부터입니다. 그런데 영화는 이미 종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라스베가스 장면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시착 장면은 분명 볼거리입니다. 비행기랑 건물들이 많이 부서지니까요.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그 잘나신 카메론 양반은 뭘하지요? 아무 것도 안합니다! 그 거창한 불시착은 액션의 일부가 아닌 그냥 불시착일 뿐입니다! 그 뒤 벌이는 시가지 추적전에서야 그는 간신히 액션의 주역이 되지만 이미 시각적으로 가장 거창한 장면이 끝난 뒤이니 다들 맥이 풀릴 수 밖에 없지요.

[콘 에어] 액션의 가장 취약한 점은 인간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은 '캐릭터'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총을 쏘고 사람을 죽이고 주먹질을 하는 액션의 주인공이 없다는 말입니다. 반담 영화들이 형편없다지만 최소한 그 영화 안에서 반담은 열심히 발차기라도 할 겁니다. 하지만 [콘 에어]에 있는 것은 필요없는 폭발과 파괴 뿐입니다.

6. 악당

[콘 에어]가 부족한 건 액션뿐만이 아닙니다. 악당들도 부족해요. 물론 머리 수만 따지면 악당들은 넘칠 정도입니다. 존 말코비치, 빙 레임즈 , 스티브 부세미 등등, 악역을 연기하는 배우만 해도 거창하기 짝이 없지요. 하지만 그 친구들은 도대체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뭘하는 겁니까? 좋아요. 탈옥을 그럴 듯하게 성공시켰고 총격전도 한 번 벌였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문제점이 있습니다. 영화가 종점에 도달할 때까지 주인공과 대결이 없습니다. 비행기가 두번째로 이륙할 때까지 그들은 카메론의 음모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허수아비와 싸운 겁니다. 악당들과 주인공의 화학적 반응이 없다면 아무리 카리스마가 넘치는 배우들을 써도 그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7. 스코트 로젠버그

이 영화의 각본가 스코트 로젠버그는 지금까지 [당신이 죽을 때 덴버에서 해야 할 일], [뷰티풀 걸]과 같은 거의 말장난처럼 보일 정도로 섬세한 대사들과 비틀린 캐릭터들을 등장시킨 각본들을 써왔습니다. 타란티노의 모방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고 두 영화 모두 아주 성공적인 작품은 아니었지만 로젠버그라는 작가의 이름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기엔 충분했지요.

[콘 에어]에서 그는 보다 돈이 잘 벌리는 액션 영화쪽으로 방향전환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창피할 정도입니다. 그가 장기로 하고 있던 대사들은 다 날아가 버리고 그렇다고 플롯이나 액션 묘사에 어떤 발전이 있는 것 같지도 않으니까요. 이런 거 만들 시간이 있었다면 자기 땅이나 얌전히 팔 일이지.

8. 부수고 때려 부수고...

신나게 때려 부수는 영화가 보고 싶은 계절입니다. 저희는 영화 보는 동안 아드레날린을 충분히 분비할 수 있게 도와만 준다면 아무리 생각없이 무식하게 부수어도 용서해 줄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콘 에어]는 그런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액션은 미적지근하고 영화가 끝나도 뭔가 개운치가 않습니다. 피서용으로는 차라리 [잃어버린 세계] 쪽이 더 나을 거 같아요. (97/06/29)

★★

기타등등

'콘 에어'의 죄수 탈출 소재는 [도망자 2]에서도 반복됩니다. 솔직히 말해 그 영화가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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