캣우먼 Catwoman (2004)

2010.03.05 10:26

DJUNA 조회 수:4585

감독: Pitof 출연: Halle Berry, Benjamin Bratt, Sharon Stone, Lambert Wilson, Frances Conroy, Alex Borstein

미셸 파이퍼는 완벽한 캣우먼이었습니다. 줄리 뉴마나 어사 키트가 60년대 [배트맨] 시리즈에서 구축한 캠피한 매력은 없었지만, 그런 거야 없어도 상관없었고 팀 버튼의 영화에 어울리지도 않았죠. 파이퍼에겐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인간성과 야수성, 정상과 광기, 선과 악, 삶과 죽음 사이에서 진동하고 분열하는 기가 막힌 캐릭터 묘사가요. 그 때 머리 속에 박힌 인상 때문에 제가 지금까지 [캣우먼] 영화를 기다렸던 모양입니다.

슬프게도 미셸 파이퍼 주연/ 팀 버튼 감독의 [캣우먼]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파이퍼는 영화 촬영 당시 입었던 불편한 고양이 옷에 진저리를 쳤고 버튼도 다른 영화들로 바빴지요. 잠시 주춤하던 계획은 애슐리 저드가 이 역에 관심을 보이면서 한동안 다시 활력을 얻었지만 만족스러운 각본이 완성되지 못하는 통에 계속 뒤로 미루어졌지요. 그러다 나온 게 [비도끄]의 피토프가 감독하고 할리 베리가 주연한 이 영화였습니다. 결과는 어땠냐고요? 참담했습니다. 평론가들에겐 최악의 악평만 골라 받았고 흥행면에서도 참패였지요.

내용은 뻔합니다. 주인공인 광고 디자이너 페이션스 필립스는 회사의 신제품인 주름살 제거 화장품의 비밀을 알게 되어 살해당하지만 고양이들의 도움으로 다시 부활한 뒤 자기를 죽인 악당들에게 복수를 한다는 거죠. 여기까진 문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만화 원작 영화들의 내용은 뻔하니까요.

얼핏 보면 영화는 해야 할 일들은 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할리 베리는 가죽옷을 입고 예쁘게 돌아다니며 악당들을 때려잡고 그러는 동안 자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능력을 관객들과 함께 즐기죠.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문제야 많죠. 각본이 약하니까요. 아무 능력도 없이 건들거리기만 하는 시시한 악당과 끝까지 불꽃을 튀기지 못하는 어색하고 김빠진 로맨스와 같은 예들은 끝도 없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지나치게 건전하다는 것입니다. 영화가 페미니즘 이슈를 들고나온 건 좋은데, 캣우먼의 이미지를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정직하게 해석하는 바람에 이 캐릭터의 어두운 매력이 완전히 날아가버렸어요. 할리 베리의 페이션스 필립스에겐 미셸 파이퍼의 셀리나 카일이 가지고 있던 어두운 매력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냥 예쁘고 몸매 좋고 잘 날아다니는 젊은 여성에 불과해요.

시리즈의 첫 편이어야 할 영화가 이처럼 망해버렸으니 한 동안 다른 [캣우먼] 영화는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조금 더 나을 수도 있었을 애슐리 저드 버전도 마찬가지로 날아가버렸고요. 왜들 조금씩 기다리지 못했던 걸까요? 최소한 이보다 나은 각본은 얻을 수 있었을텐데. (04/10/07)

★☆

기타등등

미셸 파이퍼의 캣우먼 사진이 중간에 자료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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