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드렁크 러브 Punch-Drunk Love (2002)

2010.02.05 23:56

DJUNA 조회 수:5237

감독: Paul Thomas Anderson 출연: Adam Sandler, Emily Watson, Philip Seymour Hoffman, Luis Guzmán, Mary Lynn Rajskub

[펀치 드렁크 러브]는 놀라울 정도로 전형적인 애덤 샌들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해왔던 애덤 샌들러 캐릭터를 그대로 연기합니다. 선량하고 소심하기까지 한 순정파지만 종종 간헐적으로 괴팍한 유머 감각과 폭력성이 터져나오는 사람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샌들러 캐릭터의 이름은 배리 이건입니다. 그는 일곱 누이들과 함께 자라온 소극적인 비즈니스맨으로 가족과 친척들의 끊임없는 참견 속에서 부글거리는 감정을 묻어두고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의 육체와 두뇌는 폭발 임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진동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작정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를 두들겨팹니다. 갑작스럽게 그의 사무실 앞에 떨어진 풍금, 역시 그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등장한 운명의 여인 리나, 궁금해서 한 번 폰 섹스 서비스에 걸어본 한 통의 전화를 미끼삼아 덤벼드는 협박범들... [펀치 드렁크 러브]는 상당히 정확한 제목입니다. 배리 이건이 이 재난 속에서 느끼는 도취된 감정은 연타로 넋이 나간 그의 불균형한 두뇌 상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는 역시 매우 애덤 샌들러식입니다. 단순하고 평범한 남자가 괴팍하고 극단적인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는 것이지요. 그는 사방에 우스꽝스러운 폭력을 날려대고 도를 넘어선 선언을 해대며 지금까지 억압된 상태에서는 꿈도 꾸어보지 못한 불가능한 모험을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평범한 애덤 샌들러 영화가 아닙니다. 그건 이 영화의 각본/감독을 담당한 폴 토머스 앤더슨이 샌들러의 개성에 눌릴만한 평범한 애덤 샌들러 영화 감독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는 마치 트뤼포나 샤브롤이 히치콕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애정을 담아 애덤 샌들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애덤 샌들러를 위해서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기만의 노선과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펀치 드렁크 러브]에서 가장 분명한 장점은 폴 토머스 앤더슨이 이 영화를 일반 상업용 장르 코미디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애덤 샌들러 영화에 늘 삽입되었던 그 안전한 귀여움은 사라졌습니다. 이전 영화에서 애덤 샌들러는 늘 귀여운 척하며 자신의 괴상한 행동을 커버하려 했습니다. 앤더슨은 그 위장을 지워버렸습니다. 그 결과 배리 이건은 정말로 위험하고 자극적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흥미로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샌들러 역시 여기서는 진짜 배우처럼 보입니다. 여전히 같은 매너리즘과 같은 스타일로 연기하고 있지만 그 간단한 커버가 떨어져나가자 영문도 모르는 채 혼란스러운 세상의 공격에 서툴게 맞서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남자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샌들러에 비해 훨씬 아트 하우스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에밀리 왓슨과의 콤비 플레이 역시 도움이 되었겠지만요.

[펀치 드렁크 러브]가 또하나의 애덤 샌들러 영화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러기엔 감독의 그림자가 너무 강하죠. 배리 이건을 공격하는 재난은 모두 폴 토머스 앤더슨 식의 과장되고 번뜩거리는 스타일을 통해 벌어집니다. 덕택에 등장도 하지 않는 감독이 마치 이 영화의 진짜 악역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다행히도 그는 늘 악역처럼 굴지는 않습니다. 배리와 리나가 하와이 호텔에서 재회하는 장면처럼 화사하게 행복한 장면들도 많으니까요. 물론 그 장면들도 무덤덤하고 분주한 엑스트라들에 의해 방해받지만요.

[펀치 드렁크 러브]는 진지하고 매서운 코미디지만 그만큼이나 젊은이의 치기와 허세, 이죽거림이 가득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네, 폴 토머스 앤더슨은 늘 자기가 애덤 샌들러 영화 팬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비평가들에 의해 무시되는 코미디 히트작의 주인공을 일부러 끌어내어 자기의 테크닉을 뽐내는 예술 영화의 주연으로 만드는 일이 과연 단순한 애정만 가지고 되는 일일까요? 물론 전 결과가 좋으면 다 좋으며, 그런 이죽거림도 재미의 일부라고 하겠지만요. (03/05/16)

★★★☆

기타등등

치과의사 월터로 나오는 배우는 SNL의 작가 로버트 스마이글입니다. 이 사람은 아버지가 치과의사라는데, 우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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