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와 앨리스 Hana to Alice (2004)

2010.03.06 11:51

DJUNA 조회 수:5215

감독: Shunji Iwai 출연: Anne Suzuki, Yû Aoi, Tomohiro Kaku, Shôko Aida, Sei Hiraizumi, Tae Kimura, Ryoko Hirosue, Takao Osawa 다른 제목: Hana and Alice

[하나와 앨리스]의 설정은 단순하고 어처구니 없으며 거의 무식합니다. 짝사랑하던 남학생 미야모토가 사고를 당해 잠시 기절하자, 1번 주인공 하나는 그 앞에 나타나 그가 기억상실증에 걸렸으며 자기가 그의 여자친구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 남학생은 하나의 거짓말을 거들어주기 위해 옛 여자 친구 행세를 하는 하나의 단짝친구 겸 2번 주인공인 앨리스에게 빠져 버립니다.

이 만화같은 이야기는 설정은 의도적입니다. 우선 이 작품은 원래 네슬레사의 초콜렛 과자 킷캣의 일본 판매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인터넷 단편영화 시리즈로 출발한 작품입니다. 당연히 원래부터 극장용 장편영화를 의도한 작품보다 편안하게 과장된 설정을 받아들일 수 있겠죠. 게다가 감독인 이와이 슈운지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이 영화를 작정하고 코미디로 만든 모양입니다. 이해가 가요. 아트하우스 영화들로 인기있는 감독들이 남몰래 코미디 감독의 재능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요. 심지어 우울한 아트하우스 영화의 거장인 잉마르 베리만도 그랬습니다.

베리만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이와이 슈운지도 성공했을까요? 글쎄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여기서 그가 '코미디'의 경계선을 어디에 잡고 있는지 모르겠거든요. 네, 영화는 꽤 웃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작정한 코미디 설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지도 않고 코미디와 무관한 장면들을 넣어 흐름을 깨는 데도 주저하지도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반쯤 뻔뻔스러운 코미디이고 반은 우리에게 친숙한 이와이 슈운지식 멜로드라마입니다. 둘 다 그렇게까지 새로울 건 없지만 두 개가 멋대로 결합하자 살짝 엉뚱한 느낌이 나는 건 사실입니다.

[하나와 앨리스]는 헐거운 영화입니다. 가짜 기억상실증과 관련된 삼각관계 설정이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지만 끝까지 분명한 결말은 나지 않고 클라이맥스 이후엔 아무도 그런 게 있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모두 잘라내도 영화는 상당히 많은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는 은근히 이 산만함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억상실증과 연결된 삼각관계 설정을 이야기의 공식에 따라 전개하는 게 아니라 젖살 통통한 16살짜리 소녀들의 삶을 정갈한 서정성과 시치미 뚝 뗀 음탕함이 섞인 이와이 슈운지 특유의 방식으로 보여주는 것이었겠죠.

설정이 조금 튀긴 하지만 [하나와 앨리스]는 특별히 신선하거나 새로운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는 여전히 귀엽고 예쁘며 별 생각없이 이 산만하고 나른한 호흡을 따라가는 건 꽤 즐거운 일입니다. (04/11/10)

기타등등

오는 길에 킷캣을 사먹었습니다. 간접 광고의 힘을 느끼고 있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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