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 (2008)

2010.02.22 22:24

DJUNA 조회 수:3557

감독: 전수일 출연: 최민식, Tsering Kipale Gurung, Tenjing Sherpa 다른 제목: Himalaya, Where The Wind Dwells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 최는 커다란 종이상자에 물건들을 담아들고 회사건물을 떠나고 있습니다. 정리해고 당한 걸까요? 아니면 스스로 회사를 떠난 걸까요? 저도 모르죠. 하여간 그가 그리 마음이 편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영화를 조금 더 보면 그가 아내와 아이를 해외로 보낸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을 잃었다면 문제가 크죠.

하지만 영화는 최의 고민을 깊게 파지 않습니다. 그는 그냥 고민이 있는 한국 중년남자예요. 그런 그가 친구의 공장을 찾아갔다가 잠시 얼굴을 본 적 있는 도르지라는 네팔 노동자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됩니다. 그리고 휙! 그는 히말라야에 와 있습니다. 양복 차림에 코트 하나 걸치고 단화를 신은 채로요. 그리고 그는 그 상태로 4000미터 산길을 오릅니다.

고산증으로 구토와 기절을 반복하던 그는 어느 새 도르지의 집에 와 있습니다. 그 집엔 도르지의 아내와 아들 그리고 할아버지 한 명이 살고 있군요. 이들 중 어설프게나마 영어가 되는 사람은 아들뿐입니다. 예의가 있는 친구라면 당장 가지고 온 도르지의 유골을 건내주고 자리를 떠야 합니다. 하지만 최는 그런 상식적인 예의를 차리기엔 마음이 너무 약합니다. 결국 그는 거짓말을 하고 말죠. 도르지는 잘 있다고요. 그러면서 그는 며칠 동안 그 집에 더 머뭅니다. 민폐도 이런 민폐가...

영화는 대사가 거의 없습니다. 하긴 있을 구석도 없어요. 최는 네팔어를 전혀 못하고 영어도 그리 잘 하는 편이 아니니까요. 그는 남은 시간 동안 관광객이 되어 마을 주변을 돌아다닙니다. 노인네들과 한잔 하기도 하고 가축 도살하는 걸 구경하기도 하고 도르지의 아들이 피리로 부르는 곡조를 따라하기도 하고 길에서 만난 백마를 따라가기도 합니다. 종종 그는 서 있거나 앉은 채로 정지해 있는데, 아마 그가 속해있는 화면의 완벽한 구도를 깨트리기 싫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도르지의 가족과 소통하려는 최(와 영화)의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지 못합니다. 언어의 갭이 일차적인 문제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태도입니다. 이들의 관계는 공평하지 않아요. 최와 네팔 사람들의 관계는 때묻지 않은 자연을 찾아 오지로 들어온 서구인과 그를 맞아준 원주민의 구도와 그냥 일치합니다. 하긴 다른 관점이 나오기도 어려울 겁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최는 기능적으로 서구인입니다. 최가 아무리 마음을 열고 노력해도 네팔 사람들은 '원주민'으로 남습니다.

보기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에 비친 히말라야의 황량한 모습은 압도적입니다. 최민식의 조용한 연기 역시 이 영화의 큰 장점입니다. 단지 전 이 작품이 소위 아트 하우스 영화의 자의식을 버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마음을 열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09/05/30)

★★★

기타등등

코트 차림의 최민식은 멀리서 볼 때 종종 박찬욱 감독처럼 보이더군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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