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븐리 바디 The Heavenly Body (1943)

2010.01.27 11:38

DJUNA 조회 수:5815

감독: Alexander Hall 출연: William Powell, Hedy Lamarr, James Craig, Fay Bainter, Henry O'Neill, Spring Byington, Robert Sully

천문학자 윌리엄 S. 위틀리 교수는 세계적인 명성을 코앞에 앞두고 있습니다. 그가 발견해 자기 이름까지 붙인 혜성이 달과 충돌할 예정이거든요. 하지만 그에겐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혜성의 궤도에 신경쓸 여유가 없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의 젊은 아내 비키가 갑자기 점성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동네 점성술사 마가렛 시빌의 예언에 목을 매는 비키는 드디어 만난 적도 없는 남자와 자기가 운명의 사랑에 빠질 예정이라고 믿게 됩니다. 거의 정신이 나간 위틀리 교수는 필사적으로 운명을 바꾸려 시도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헤븐리 바디]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에 나온 코미디입니다. 덕택에 우린 영화를 통해 전쟁 당시 미국 중산층 사람들의 풍속을 살짝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아무도 전쟁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등화관제나 쿠폰제는 벌써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거든요.

그러나 이 영화는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멀어지는 아내를 필사적으로 되찾으려 하는 중년남자에 대한 코미디지요. 위틀리 박사는 일 때문에 아내를 거의 방치하다시피하다가 점성술 소동 덕택에 자신이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재확인하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아내인 비키 역시 확신할 수 없었던 남편의 감정을 알게 되고요.

영화는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천문학과 점성술의 대결을 이용합니다. 천문학은 위틀리 교수가 대표하는 이성과 과학을 상징하고 점성술은 비키가 대표하는 감성과 미신적인 사고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죠.

이런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위틀리 교수는 점성술에 끌려다니는 편입니다. 영화의 설정을 보면 비키와 그녀의 '새로운 남자'인 로이드 헌터는 천상에서 맺어준 사이 같습니다. 위틀리 교수가 발견한 혜성이 달과 충돌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비키와 로이드의 길은 위틀리 교수의 꾸준한 음모에도 불구하고 계속 만납니다. 이 영화의 코미디도 지극히 이성적인 과학자가 점성술이라는 미신에 말려들어 휘청거린다는 것이고요.

[헤븐리 바디]는 그렇게까지 튀는 영화는 아닙니다. 일단 설정이 그렇게까지 천재적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위틀리 교수의 수난을 구경하는 건 재미있지만 일단 펼쳐놓은 이야기를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하는 건 치명적인 흠이고요.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후반부의 보드카 소동은 순전히 시간 때우기 용으로 삽입된 것 같아요.

그러나 윌리엄 파웰의 징글징글한 매력은 여전하고 그의 코미디는 노련합니다. 헤디 라마는 언제나처럼 아름답고 맹한 연기는 귀여워요. 이 맹충한 이미지가 이 사람의 '천재성'이 불꽃처럼 번뜩였던 시기에 나왔다는 게 좀 아이러니컬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하여간 이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헤븐리 바디]는 충분히 즐거운 영화입니다. (03/05/09)

★★☆

기타등등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 40년대 중반이니, 정말로 위틀리 혜성이 달과 충돌했다면 슈메이커-레비 혜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굉장한 센세이션을 일으켰을 겁니다. 수많은 천문학적/고생물학적 논쟁들이 몇 십년 일찍 종지부를 찍었을테니 말이에요. 달지도도 새로 그려야 했을 거고 새 크레이터엔 위틀리 교수의 이름이 붙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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