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지 않아 (2006)

2010.01.31 22:36

DJUNA 조회 수:5842

감독: 이송희일 출연: 이영훈, 이한, 김동욱, 김정화 다른 제목: No Regret 

[후회하지 않아]는 통속극입니다. 그리고 통속극이란 관객들이 익숙해져 있는 진부한 공식을 반복하기 마련이죠. 이 영화도 예외는 아니에요. 재벌2세가 자기가 다니는 회사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첫눈에 보고 사랑에 빠진다는 건 너무나도 전형적인 텔레비전 연속극 설정입니다. 그 노동자가 영화 초반에 공장을 나와 게이호스트바의 '선수'로 일하게 되고 재벌2세가 그 호스트바의 손님이 된 뒤부터는 7,80년대에 유행했던 호스티스물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게 되고요. 5분에 한 번꼴로 연속극식 '명대사들'이 등장하는 각본도 만만치 않아요. 이 정도면 벌써 커밍아웃인 겁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통속 멜로다!"

이 진부함이 동성애를 다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극복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지난 몇 년 동안 영화계에서는 수많은 동성애 멜로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미 퀴어 멜로드라마도 안정된 장르죠. [후회하지 않아]도 여기에서 그렇게 많이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이 관점에서 봐도 이 영화의 내용은 특별히 새로울 게 없습니다. 관점 역시 익숙하고요.

그러나 이 둘이 결합한 결과는 여전히 신선합니다. 아무리 퀴어 멜로드라마가 익숙한 장르가 되었다고 해도 한국식 재벌2세 물이나 호스티스물과 만나면 새로운 충돌이 있기 마련이거든요. [후회하지 않아]의 이야기는 진부하지만 그 질감과 관점은 은근히 새롭습니다.

예를 들어 재벌2세와 호스트의 관계부터 그래요. 설정만 보면 남녀의 역할이 짐작가죠? 하지만 영화를 보면 정반대입니다. 재벌2세 재민은 수줍고 소극적이고 무능력하며 거의 여성적입니다. 하지만 수민은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기 일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고 그럴 능력과 자신감도 있는 고아원 출신 노동자 계급 청년이죠. 당연한 일이지만 이 관계에서 키를 쥐고 있고 상위에 서 있는 것도 수민 쪽입니다. 수민은 언제든 선택을 할 수 있지만 가족의 명예와 돈에 얽혀 있는 재민은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어요. 수민과 연애도 정말 엄청나게 용기를 내서 시작한 거고요. 이런 역학 관계는 재미있지만 국내 이성애 연애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유감이지만.

전체적으로 [후회하지 않아]는 기존의 재벌2세+호스티스물에 비하면 덜 느끼하고 덜 재수없습니다. 그건 수민이 남자이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섹스 서비스업에 종사한다고 해도 수민은 대한민국 땅에서 '남자'라는 이득을 보고 있습니다. 기존 호스티스물의 여자 주인공들에 비해 훨씬 탈출구가 많고 자존심 역시 잘 세우고 있죠. 영화 보는 동안은 보기 편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요. 이를 통해 기존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제거한 보다 순수한 계급간의 로맨스를 그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솔직히 보고 나면 좀 억울하기도 합니다. 왜 퀴어 멜로드라마라는 게 이 고정관념의 유일한 극복 이유가 되어야 하냐고요.

영화는 날 것의 느낌이 아주 강합니다. 시각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연기나 대사도 그렇고요.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공식적이고 도식적인 스타일을 따르고 있지만 거친 디지털 화면과 검열되지 않은 대사들은 예상 외로 살아 있습니다. 섹스의 쾌락은 감추어지지 않고 야오이식으로 얄팍하게 미화되지도 않죠. 전 그냥 보기 좋았습니다. 자부심도 느껴졌어요. "난 진짜 퀴어 로맨스를 만들 능력이 있어"라는.

결말 이야기를 해야겠군요. 제작사에서는 스포일러라고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클라이막스의 국면 전환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고 저 역시 밝힐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점은 말해도 될 것 같군요. 결말이 너무 많아요. [후회하지 않아]의 후반부에서는 통속적인 퀴어 멜로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결말들이 하나씩 나열되고 있습니다. 영화가 택한 최종적인 결말은 이 클리셰들을 의식적으로 깨기 위해 선택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결말이 90년대 이후 퀴어 멜로드라마의 맥락에서 보면 새롭거나 신선하다고 할 수는 없죠. 솔직히 전 보면서 좀 지쳤답니다. (06/10/25)

★★★

기타등등

수민이 가지고 다니는 강아지 너무 귀여워요. 시키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알아서 연기도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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