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씨 451 Fahrenheit 451 (1966)

2010.03.25 22:09

DJUNA 조회 수:4231

감독: François Truffaut 출연: Oskar Werner, Julie Christie, Cyril Cusack, Anton Diffring, Jeremy Spenser, Bee Duffell, Alex Scott

화씨 451도는 종이가 타기 시작하는 온도입니다. 이 영화가 무대로 삼고 있는 세계에서는 책이 금지되어 있죠. 이 세계에서 'fireman'은 불끄는 사람이 아니라 금지된 책을 찾아내 불지르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주인공 몬태그도 그런 'fireman' 중 하나입니다(국내 번역본에서는 방화수라고 새 이름을 붙여주고 있죠.) 물론 그가 청렴결백하고 자기 할 일만 충실한 사람이라면 이야기가 되지 않겠죠? 모노레일에서 클라리스라는 교사를 만난 뒤부터 그의 삶에는 서서히 변화가 찾아옵니다. 그 변화의 결과란 부부관계가 박살나고 그는 도망자가 된다는 것이지만요.

트뤼포의 이 우울한 영화는 레이 브래드베리가 쓴 동명의 SF 소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많은 디스토피아 소설이 그렇듯, 브래드베리의 소설 역시 경고였습니다. 단지 그가 경고했던 것은 스탈린주의나 자본주의와 같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두려워하고 경고하려고 했던 것은 매스컴에 의해 전파되는 싸구려 문화가 진지한 문학을 먹어버리는 행태였지요. 이 세계에서 책이 금지된 이유는 책이 불온한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기분을 우울하게 하며 그들이 사는 우민 사회의 평등성을 깨뜨린다는 이유로 금지하는 것이죠.

이런 작품이 '영화화'되었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컬합니다. 그렇죠? 브래드베리는 영화 혐오증 환자가 아니었지만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는 영상 매체와 잘 맞지 않는 구석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활자로만 남거나 오디오북으로 나와야 해요 (어떻게 생각하면 오디오북은 종이책보다 이야기의 분위기와 더 잘 맞을 겁니다.) 영상 매체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와 트뤼포는 나름대로 이 이야기를 자기 식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책'은 원작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문학 작품만 불타지 않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화집이나 [카이에 뒤 시네마] 같은 영화 잡지도 불타지요 (하필 그 잡지의 표지엔 [네 멋대로 해라]의 스틸이 실려 있답니다!) 영화를 보다 보면 트뤼포가 그가 엉뚱한 방식으로 그가 사랑하는 예술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네, 그는 이 영화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책들을 조심스럽게 골라서 불지릅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만들어진 영어 영화치고는 이상할 정도로 불어책들이 많죠.

영화 역시 브래드베리의 원작보다는 조금 더 보편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브래드베리가 경고했던 것은 대중 매체에 의한 우민화였지만, 트뤼포의 영화가 비판하는 것은 전체주의의 사상 탄압입니다. 방화수의 복장과 같은 걸 보면, 영화는 당시 건재했던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를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장발족 탄압과 같은 것들은 당시 그의 세대가 겪었던 세대간의 갈등을 '과장해서' 반영하는 것이겠고요 (정말 옛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 이들 중 일부는 브래드베리의 원작과 충돌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런다고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트뤼포는 미래 세계를 비교적 신중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작비의 한계가 있었으니 [블레이드 런너]식 묘사는 애당초부터 불가능했겠죠. 이 영화에서 '미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모노레일과 나중에 동료 'fireman'들이 몬태그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일인승 비행도구 정도밖에 없습니다. 중요한 도구인 와이드 스크린 텔레비전은 원작보다 훨씬 소심하게 묘사되어 있고요. 영화는 미래적이라기보다는 복고적이며 전체적으로 영국 소도시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깁니다.

책을 불태우는 세계를 묘사하는 작품답게 영화 속에서는 문자가 아주 신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에는 도입부에 타이틀도 나오지 않는답니다. 대신 나레이터가 제목과 스탭, 캐스트를 읽어줍니다. 오손 웰즈도 [심판]에서 비슷한 짓을 한 적 있으니 최초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화와 잘 어울리죠.

트뤼포가 이 영화를 만들면서 과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영어가 엉망이었던 그가 만든 유일한 영어 영화였으니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통제력 결여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겁니다. 적어도 전 별로 눈치를 못채겠던 걸요.

그렇다고 이 영화를 [쥘과 짐]이나 [두 영국 여인과 대륙]과 같은 영화들 수준에 놓을 수는 없습니다. 헐렁헐렁하게 넘어가는 트뤼포의 스타일과 브래드베리의 심각한 이야기가 종종 충돌하거든요. 영화는 여러 모로 미완성이라는 분위기를 풍깁니다. 특히 정서적인 측면에서요. 이 영화가 꾸려내는 정서적인 효과는 트뤼포의 연출이 아닌 버나드 허먼의 음악에서 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인상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특히 허먼의 음악을 배경 삼아 '북 피플'의 마을에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아마 영화가 한 가장 훌륭한 문학 예찬 중 하나일 거예요. (00/06/01)

★★★

기타등등

불타는 책들 중에는 한국어 책도 하나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책이 그 영화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리고 '북 피플' 중 한 명은 브래드베리의 또다른 장편인 [화성 연대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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