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잉 다운 투 리오 Flying Down to Rio (1933)

2010.02.01 06:51

DJUNA 조회 수:2633

감독: Thornton Freeland 출연: Dolores del Rio, Gene Raymond, Raul Roulien, Ginger Rogers, Fred Astaire 

[플라잉 다운 투 리오]에서 진 레이몬드가 연기하는 바람둥이 밴드 리더/아마추어 비행사 로저 본드는 돌로레스 델 리오가 연기한 브라질 미녀 벨리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비행기로 벨리나를 브라질로 데려가던 중 사고를 당해 불시착한 그들은 외딴 해변에서 로맨틱한 밤을 보내지만 벨리나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었고... 어찌어찌해서 로저는 밴드와 함께 리우 데 자네이로의 한 호텔에 고용되는데, 알고 봤더니 벨리나는 그 호텔 사장의 딸이었고 벨리나의 약혼자는 그의 친한 친구인 줄리오였는데...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정보들입니다. 이유야 많죠. 우선 이 뻔하디 뻔한 30년대 로맨틱 코미디의 플롯은 듣기도 전에 지겹습니다. 지겨운 플롯이라도 재미있게 짜놓으면 괜찮지만 이 영화의 각본엔 그만한 성의가 안 보여요. 돌로레스 델 리오는 그나마 자기가 무성 영화 시절부터 닦아놨던 스타 파워를 과시하기라도 하지만 진 레이몬드는 그것도 없는데다가 델 리오와 궁합도 잘 안 맞습니다. 영화도 포기했는지, 남자 주인공 치고 그는 이상할 정도로 비중이 적어요. 몇 십 분 동안 안 나오는데 관객들이 신경도 안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하긴 호감 갖고 봐줄만한 캐릭터도 아닙니다. 그냥 좀 재수가 없어요.

그럼 이 영화가 아직도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이냐.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때문이지요. 이 영화에서 그들의 역할을 비교적 작습니다. 둘 다 로저 본드의 밴드 멤버죠. 아스테어의 캐릭터 프레드 에이어스는 로저의 친구이며 파트너고요. 하지만 처음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까? [플라잉 다운 투 리오]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처음으로 함께 춤을 춘 영화이며 그것만으로도 잊혀서는 안 되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춤을 보려면 조금 기다려야 합니다. 89분짜리 영화인데 43분에야 간신히 나오니까요. 두 사람이 이마를 맞대고 추는 카리오카라는 춤으로, 이 영화에서는 브라질 유행으로 소개되고 있지만 사실은 프레드 아스테어의 발명품입니다. 여담이지만 이 춤을 유행시키려는 아스테어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죠. 춤추는 사람들에게 다소 불편한 자세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해 봅니다. 아스테어와 로저스도 ‘정통 카리오카’ 대신 그것을 미국식으로 변주시킨 변형춤을 추지요. 네, 원본도 만들고 변형도 시키고, 북 치고 장구 치고 혼자 다 했어요.

카리오카 시퀀스는 10분이 넘어가는 호사스러운 스펙터클이지만 아직 아스테어/로저스 콤비의 진가를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많습니다. 일단 카메라가 너무 인색해요. 대부분 아스테어/로저스 영화에서 카메라는 이들의 춤을 거의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가지 않습니까? 이 영화에서 그들은 거대한 시퀀스의 일부이고 본격적인 아스테어/로저스 영화의 대접을 받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무대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갑자기 주인공이 바뀐 느낌이 드니, 타고난 카리스마는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밖에요.

영화의 또 다른 스펙터클은 후반부에 나오는 비행쇼입니다. 날아다니는 복엽기 날개 위에 댄서들이 매달려 춤을 춘다는 무시무시한 설정이죠. 제작총지휘자인 메리언 C. 쿠퍼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아닐까요? 척 봐도 딱 그 사람이 생각했을 법한 설정이란 말이에요. 특수효과로 만들어진 장면이라는 걸 알면서도 (영화 속) 댄서들의 안전이 걱정되어 도대체 집중을 할 수가 없더군요. (09/02/02)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프레드 아스테어는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첫 등장을 하지요. RKO 마지막 영화인 [버논과 아이린 캐슬의 이야기]에서 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퇴장합니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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