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공에 산다 (1968)

2010.01.31 11:33

DJUNA 조회 수:2205

감독: 이만희 출연: 신성일, 장동휘, 남정임, 황정순, 구봉서 다른 제목: Living in the Blue Sky

어제 이만희의 [창공에 산다]를 봤습니다. 걸작이라고는 죽어도 말 못하겠더군요. 그건 만든 사람들도 분명히 알고 있었을 거예요.

영화의 내용은 이만희 판 [탑 건]이더군요. 이런 표현은 사실 맞지 않죠. [탑 건]이 훨씬 나중에 나온 영화니까. 그래도 두 영화의 기본 줄거리는 비슷합니다. 젊은 파일럿들이 나오고, 주인공이 연애를 하고, 동료 한 명이 죽고, 주인공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그러다가 비행기 타고 나가 뭔가 깨부술 일이 하나 생기고...

이 두 영화의 유사점은 어쩔 수 없는 설정의 한계에서 기인합니다. 두 작품 다 평화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요. 전쟁의 긴장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으니 이야기를 만들려면 뭔가 다른 걸 찾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부인의 관점에서 아주 공들여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발전할 가능성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둘을 비교한다면, [창공에 산다] 쪽이 더 불리합니다. 미군이야 아무 데나 날아가 가공의 적군을 때려 잡을 수 있지만, 우린 그럴 수 없잖아요. 결국 지나가는 간첩선을 때려잡는 것으로 클라이맥스가 만들어지는데, 결코 박진감 넘치는 해결책은 아니죠.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결국 신성일과 남정임의 연애담이 될 수밖에 없는데, 이게 굉장히 나쁩니다.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어요. 남정임이 장동휘의 애인인 줄 알고 신성일이 고민 좀 했는데 알고 봤더니 오빠였더라... 운운의 로맨틱 코미디 플롯은 설득력도 떨어질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으며 영화의 분위기와도 잘 맞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플롯과 연결된 주인공들이 엄청나게 매력이 없어요. 특히 신성일이 연기한 하소위는요. 당시 관객들이 이렇게 쩨쩨한 인간들에게 관대했다는 건 그 무렵 남자들의 자기도취가 얼마나 심각했는지에 대한 직접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야기 만들기 힘들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왜 이만희는 한국전이 아닌 동시대를 배경으로 선택했을까요? 공군이라는 설정과 관련 있겠죠. 영화 중반에 보면 전몰자의 묘지 앞에서 남정임 아빠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팬텀을 타는 건데!"라고 한탄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만희는 이 분야의 첨단지향적인 면이 끌렸던 모양이에요. 이걸 당시 젊은이들의 삶을 그리는 도구로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죠. 그 신선함이 느껴지냐고요? 별로요. 이 영화의 젊은이들에겐 공군 홍보용 모델 이상의 진취성은 없어요. 에너지와 목적의식은 분명하지만 그 뿐이군요. 그 정도만 건져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술적인 면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일단 이 영화는 공군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제작되었어요. 비행기들도 진짜고 비행장면도 다 진짜죠. 그 때문에 직접 전투기 안에서 찍은 장면들은 상당히 현실적이에요. 하지만 아무리 공군이 뒤에서 팍팍 밀어준다고 해도 진짜 비행기를 폭파시키거나 할 수는 없죠. 결국 비행기를 부수지 않고 특수효과도 쓰지 않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밖에 없는데... 그게 좀 갑갑하긴 하네요. (06/06/12)

★★

기타등등

방영 시기가 조금 묘하네요. 이 영화의 사고 장면을 최근 일어난 사건들과 연결시키지 않고 보기는 어려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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