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록 The Rock (1996)

2010.02.18 21:14

DJUNA 조회 수:7681

 

1.

[더 록]의 가장 큰 단점은 영화가 너무 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런 [다이 하드]류 영화의 상영시간은 일반 액션 영화들보다 길기 마련입니다. 잘 만든 [다이 하드] 영화라면 액션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에 긴 상영시간 동안 충분히 관객들을 집중시킬 수 있습니다. 길다는 것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죠.

 

그렇다면 [더 록]의 상영 시간이 왜 문제가 될까? 글쎄요. 마이클 베이가 그 상영시간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겠지요. 저희들에겐 이 영화의 각본이 상당히 방만하게 느껴집니다.

 

아마 요새 액션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럴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충분히 압축될 수 있는 각본입니다. 일단 메이슨과 굿스피드가 소개되는 부분이 길어도 너무 깁니다. 영화의 거의 절반이 낭비되고 있으니까요. 그동안 착하디 착한 허멜 장군은 다음 등장시간까지 불평없이 기다려주기까지 하죠.

 

물론 그걸 보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엉망으로 망가뜨리는 카 체이스 신이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해 그런 걸 넣느니 알카트라즈 안의 액션을 보완하는 게 낫습니다. 게다가 그 한 시간 동안 그들의 캐릭터가 확실하게 소개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한마디로 낭비되었다고 할 수밖에요. 게다가 메이슨의 과거가 중복소개되고 허멜 장군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쓸데없는 장면들을 추가하는 것도 눈에 거슬립니다.

 

2.

[더 록]의 두 번째 문제점은 알카트라즈라는 무대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알카트라즈는 마땅히 그래야 할 비중을 차지하지 못합니다. 이 각본은 다른 우중충한 옛날 건물 어디에나 끼워맞출 수 있습니다. 존 메이슨을 끌어들이기 위한 동기 이상이 보이지 않아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건물들 중 하나를 제목으로 삼는 영화라면 그 건물이 보다 전면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단순히 이제는 관광지가 된 감옥이다, 감방이 있어서 인질들을 가둘 수 있다 정도 수준으로 설정을 끝내는 건 안이한 태도입니다.

 

3.

세 번째 문제점도 이야기해볼까요? 솔직히 말해 저희들은 이 이야기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허멜 장군이라는 캐릭터가 확실하게 구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된 사람입니까? 그는 영화 전체를 통해 고결하고 군인다운 영웅으로 묘사됩니다. 그런 그가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을 유독가스로 날려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이유는? 겨우 군인 유가족들에 대한 대우가 빈약하기 때문이랍니다!

약간의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도 안되는 저울질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토머스 제퍼슨이나 워싱턴에 비교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당연히 알 수 있겠지요. 만약 한 고결한 남자가 한 도시를 날려버릴 계획을 짰다는 이야기를 믿을 만하게 전개하려면 보다 강한 동기를 설정하거나 충분한 광기를 대입시켜야 합니다. 아니면 둘 다 하거나요.

 

4.

허멜 장군에 대한 모호한 입장 때문에 영화의 갈등구조는 엉성해져 버립니다. 관객들은 허멜을 동정할 수는 있겠지만 위협적인 존재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가 시민들을 날릴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린 사람은 메이슨 뿐만이 아닐 겁니다. 결국 허멜은 영화 종반에서 얌전히 퇴장해 버리고 주변의 이류 악당들이 관객들을 위해 남은 임무를 수행하죠. 하지만 우린 그 친구들의 이름은 물론 얼굴도 모릅니다. 그네들이 위협적인 건 순전히 그들이 총을 든 악당이기 때문이죠. 그들이 죽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관객은 많지 않을 겁니다. 긴박감도 떨어져요. 어차피 시시한 악당들이니까.

 

게다가 그들이 죽은 다음 또 갈등구조가 변형됩니다. 이번에는 알카트라즈를 날려버리려는 공군과 굿스피드 일행의 갈등입니다. 다행히 이건 곧 끝나버리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3번이나 이리저리 꼭지점을 옮겨대는 각본이니 엉성하다는 느낌이 안 들 수가 없지요. 그것도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말이에요! 도대체 이 영화의 정점은 어디입니까?

 

5.

이 영화는 좋은 배우들의 덕을 보았다고도 말할 수 있고 그들을 낭비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배우들의 질이 각본과 연출의 질을 넘어섭니다. 니콜라스 케이지, 에드 해리스, 숀 코너리 셋 다 모두 자기 역을 잘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끔하고 인상적으로 연기하는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얇습니다. 충분히 깊이 있게 다룰 수 있었던 굿스피드와 메이슨과의 대립도 스토리의 축을 형성하지 못하고 허멜 장군의 성격은 모순투성이지요. 각본을 생각해보면 이들이 정말 좋은 배우라는 생각이 다시 드는군요!

 

6.

이건 개인적인 취향 때문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쓸데없이 장려한 냄새를 풍기려고 할 때마다 저희들은 괜히 웃음이 나왔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웃기는 장면은 허멜 장군과 앤더슨 중령이 해병대의 명예 어쩌구하면서 떠들어대는 장면입니다. 저희들이 만들었으면 그렇게 나발거리는 대신 총이라도 몇 방 더 쏘게 하겠습니다. 애당초부터 당위성이 결여된 상황 속의 엄숙한 연설은 우습게 느껴질 수 밖에 없죠. 아무래도 저희는 이런 똥폼을 맨몸으로 버티기엔 위가 너무 약한 모양이에요.

 

7.

개개의 액션 장면들은 어떨까? 괜찮습니다. 보고 즐길 만 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독창성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내의 카 체이스 장면이 인상적이라면 그건 주차시킨 차들을 포함한 여러 기물들을 잔뜩 파손했기 때문입니다. 알카트라즈의 액션 신들은 '숨어있다가 들켰다가 쐈다가 달아났다가...'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딘가 남이 하는 전자오락을 보는 기분입니다.

 

8.

시도는 좋았습니다. 마이클 베이와 각본가들은 이 영화를 인간적인 액션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들에 대한 지나친 관대함과 계산 부족 때문에 [더 록]은 어딘가 모자라는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여기서 만족하는 관객들도 있겠지만 더 잘 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 똑똑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지요.

 

레너드 말틴은 이 영화에 별을 둘 주었지요. 대충 맞는 점수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넘어서는 기술적인 완성도와 배우들의 호연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별 두 개 반이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96/07/24)

 

★★☆

 

기타등등

1. [더 록]은 브룩하이머식 여름 블록버스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콘 에어][아마게돈]같은, 요란한 기계적 액션에 똥폼을 처바른 영화들이 뒤를 이었지요. 솔직히 말해 이런 건 이제 그만 보고 싶습니다.

 

2. 단역 시절의 클레어 폴라니가 메이슨의 딸로 잠시 나옵니다. 확인하셔도 좋을 듯 하네요. 

 

감독: Michael Bay 출연: Sean Connery, Nicolas Cage, Ed Harris, Michael Biehn, David Morse, William Forsy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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