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감 (2000)

2010.02.07 23:27

DJUNA 조회 수:5888

 

[동감]은 시간을 넘어선 의사소통을 다루고 있습니다. 여자 주인공 소은은 1979년을 사는 대학생인데 고장난 무전기를 가지고 2000년대의 대학생 지인과 대화를 나누게 되지요. 물론 이들은 각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서로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재정비하고 운명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만약 초자연적인 현상을 다룬 판타지라고 해서 그것만 가지고 이 작품을 '독창적'이라고 부른다면, 여러분은 판타지와 SF 장르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굉장히 흔하니까요. [제니의 초상],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채리티가 남긴 말]과 같은 작품들을 보세요. 이제 사람들은 이런 설정은 '진부'하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걸 보고 진부하다고 하는 건 서부 영화에 총싸움이 나오는 게 진부하다고 불평하는 것과 같죠.

 

다시 말해 이런 부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객이건 평론가건 모두 이런 트릭에 대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아이디어만 가지고 다룰 게 아닙니다. 차별화할 뭔가가 더 있어야지요.

 

[동감]은 시간을 넘어선 통신을 이용해 패러독스를 적극적으로 끌어내지 않습니다. 단순히 '예쁜' 러브 스토리에 운명론과 신비함을 부여하기 위해 통신을 끌어들일 뿐이죠.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팬시 상품처럼 보이고 실제로 팬시 상품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몇몇 비주얼은 상당히 인위적으로 보입니다. 소은이 살고 있는 79년은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79년과 상당히 다른 곳입니다. 79년보다는 복고 분위기로 장식한 2000년 같아요. 소은이네 집이 워낙 잘 산다고 하면 되겠지만, 발 큰 핑크 토끼와 같은 인형들이 79년에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니 분명한 고증 역시 위반한 셈이지요.

 

하지만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겐 별 문제가 없을 듯 하군요. [동감]은 적극적으로 예쁜 영화니까요. 화면 꽃발을 살리는 게 제1목적이라면 큰 발 토끼를 미래에서 수입해오는 게 범죄는 아니지요.

 

문제는 영화가 너무 예쁘기만 하다 보니 힘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고 그놈의 '감성'만 죽어라고 발산합니다. 설정 역시 정형화되어서 주인공들의 감정 역시 굉장히 인스턴트 느낌이 강하죠. 영화는 그 예쁜 포장 속에 갇혀서 반쯤 죽은 상태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소은과 지인이 대화하는 걸 들어보면 라디오 쇼의 디제이가 청취자 엽서를 읽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들은 연기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김하늘과 유지태는 그들이 원래하던 대로 적당히 포즈만 취하고 감상적인 대사만 읊으면 되었습니다. 이들이 아직 연기력이 완전히 꽃 핀 배우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행일지도 모르지요.

 

제가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면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전 김하늘이 연기한 소은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이 영화가 판타지라면, 그건 영화가 이미 구닥다리가 된 '시간을 넘어선 대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소은이라는 무시무시한 외계인을 등장시키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 캐릭터는 자신의 '예쁜' 캐릭터를 처음부터 끝까지 노골적으로 고수하는데(자기 방에 혼자 있을 때도 그러니 결코 '내숭'은 아닙니다!) 정말 황당하다 못해 두려워질 지경입니다. 소은의 '예쁨'은 거의 초현실적이어서 보는 사람의 얼을 빼갈 정도거든요. 하지만 욕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이런 괴상함도 없었다면 [동감]은 저에게 정말로 밋밋한 영화가 되었을테니 말입니다. (00/09/13)

 

★★☆

 

기타등등

곧 개봉되는 [프리퀀시]가 무선 통신을 [동감]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시월애]의 아이디어도 비슷하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가봐야 알겠지요. 

 
감독: 김정권 출연: 김하늘, 유지태, 박용우, 하지원, 김민주, 신철진, 유태균, 이인옥 다른 제목: Dit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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