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더스 Raiders of the Lost Ark (1981)

2010.02.13 17:05

DJUNA 조회 수:5478


[레이더스]는 12살 소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오락 영화입니다. 보다 엄밀하게 정의한다면 20세기 중엽 미국에서 살았던 12살 소년을 위한 최고의 오락거리지요. 아마 노먼 로크웰이 그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커버 어딘가에 스필버그가 타겟으로 잡았던 그 소년을 그려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레이더스]는 시작부터 복고풍의 오락이었습니다. 조지 루카스가 인디아나 존스(원래는 인디아나 스미스였죠)라는 인물의 모험담을 처음으로 떠올렸을 때, 그는 어린 시절 즐겨보았던 극장용 시리즈 영화의 현대판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극단적으로 만화적이고 통속적이지만 보는 동안 손에 땀을 쥐지 않을 수 없는 그 순수한 오락 말입니다. 그의 계획은 아마 영화사상 가장 뛰어난 12살 소년 감독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를 만나면서 이상적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1930년대 중반이라는 구체적인 시대 배경을 깔고 시작하는 영화지만 [레이더스]는 철저하게 판타지의 세계에서 시작하고 끝이 납니다. 인디아나 존스는 1930년대의 고고학자보다는 에번즈나 페트리와 같은 보다 야만적이고 무례한 19세기 고고학자처럼 보이고 (투탕카멘의 묘가 1922년에 발굴되었다는 걸 생각해보세요) 영화 속의 나찌들은 실제 나찌들보다는 당시 만화책에 나오는 나찌들을 3차원으로 되살려놓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정말로 초자연적인 신의 심판을 떨어뜨리는 성궤의 존재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제가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불편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나이로만 따진다면 전 당시 스필버그가 잡아놓은 이상관객의 연령과 일치했지만 그래도 당시 전 고고학에 대한 잡다한 지식을 꽤 가지고 있었던 터라 영화의 이 막나가는 고고학 묘사가 정말로 불만이었던 거죠. :-) 나이를 먹을대로 먹은 지금은 이 영화에 대해 훨씬 관대해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훨씬 쉽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되었으니까요. 오히려 지금은 이 '걸작 영화'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기대했던 어린 시절 때보다 훨씬 즐겁게 이 영화를 볼 수 있어요.


지금와서 보면 [레이더스]라는 영화가 얼마나 순수한 영화적 오락인지 알게 됩니다. 요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버스터 키튼이에요. 키튼의 걸작들이 그런 것처럼 [레이더스]도 무용과 같은 순수한 움직임들로 구성된 코미디 액션입니다. 스턴트가 보다 얌전히 숨어 있기는 하지만 종종 작품이 성룡 영화처럼 흘러가는 것도 같은 뿌리를 두었기 때문이겠지요. 영화는 옛날 싸구려 B급 시리즈 영화들이 그랬던 것처럼 거의 여유를 두지 않고 이런 액션들을 차례로 관객들에게 던져댔습니다. 많은 관객들은 거의 질식할 지경이었을 거예요. 80년대초만 해도 이런 식의 액션 폭격은 드물었으니까요.


그러나 [레이더스]는 단순히 B급 시리즈 영화를 80년대의 영화기법으로 업데이트시킨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영화가 이처럼 재미있지는 않았겠죠. 루카스와 스필버그는 그러는 대신 위에 제가 언급한 이상관객의 정서를 극대화시키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 목표를 위해 설정한 가장 노골적인 무기는 해리슨 포드가 연기한 인디아나 존스였습니다. 이 캐릭터의 설정은 완전히 만화였습니다. 아주 절실한 경우가 아니면 영화시작부터 끝까지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모자를 쓴 채 돌아다니는 액션 영웅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존스를 그냥 B급 영화의 단순한 영웅으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존스는 그들처럼 결백하고 용감한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네, 그는 용감무쌍하고 싸움질도 잘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만큼이나 비겁하고 야비하며 얌체같기도 합니다. 덩치 큰 상대와 싸울 때 그는 초등학생처럼 상대방의 팔을 물어뜯고 모래를 눈에 집어던집니다. 여자친구가 나찌에게 잡혀있는데도 구해주는 대신 "이 틈이다!"를 외치며 성궤를 찾으러 나서고요. 어떻게 보면 인디아나 존스는 B급 시리즈 영화에 열광하던 12살 소년에게 어른 옷을 집어주고 영화 속에 밀어넣은 것과 같았습니다.


영화는 그런 인디아나 존스의 캐릭터를 극단적으로 이용했습니다. 영화는 단순히 액션을 보여주는 대신 서서히 존스의 캐릭터와 채널링을 시작한 관객들로부터 극한의 감정을 끌어올렸습니다. 무시무시한 나찌 악당들과 신비스러운 성궤, 그리고 마지막에 닥치는 신의 심판은 그 단순무식하고 말도 안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악몽과도 같은 강렬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로저 이버트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스필버그가 품고 있는 나찌 콤플렉스를 가설로 내세웠는데, 성궤나 나찌 아이디어를 고안해낸 건 루카스와 필립 카우프먼이니 이 가설은 아주 설득력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스필버그가 이 장난과도 같은 영화를 만들면서 그가 12살 무렵에 느꼈을 어린시절의 꿈과 악몽에 아주 진지했다는 건 분명합니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레이더스]라는 영화가 그 증거지요.


[레이더스]는 기념비적인 영화입니다. [죠스]가 여름 블록버스터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레이더스]는 우리가 여름마다 보는 롤러코스터 대용 할리우드 액션 영화들의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물론 이런 영향을 부정적으로 보는 건 여러분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81년에 갑자기 괴물처럼 튀어나온 이 영화가 그 후 20년 동안 세계 영화 시장에 끼친 영향력을 그만큼 쉽게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결정적으로 공장에서 나온 인스턴트 라면과 같은 최근의 롤러코스터 영화들과 단순한 재료로 만들었지만 거장의 창의적인 손길이 묻어있는 액션 영화 사이엔 깊은 골이 놓여있답니다. (04/01/09)


★★★★


기타등등

도입부에 알프레드 몰리나가 나오더군요! 몰랐어요!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