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의 행성 La Planète sauvage (1973)

2010.02.06 23:49

DJUNA 조회 수:4132


[미개의 행성]은 프랑스 환상 소설가 스테판 울의 소설 [OMS en série]가 원작입니다. SF의 형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그렇게까지 과학적 바탕이 단단한 내용은 아니지요.


이 영화의 무대는 드라그라는 푸른 피부의 거인들이 사는 행성입니다. 이 행성엔 이젠 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인간들도 사는데, 드라그들에게 옴은 귀찮은 쥐와 같은 존재입니다. 몇몇을 잡아 애완동물로 키우기도 하지만 야생 옴들은 주로 기간을 정해 박멸하죠.


주인공 테르는 아이들의 장난으로 엄마를 잃은 옴입니다. 친절한 드라그 소녀 티바에게 입양되어 애완동물이 된 테르는 티바네 집에서 드라그족의 지식을 습득하고, 마침내 학습 기계를 들고 탈출한 뒤 야생 옴들에게 문명을 전수합니다. 교육받고 봉기한 옴들은 드라그족과 한판 대결을 벌이고요.


[미개의 행성]을 특별한 영화로 만드는 것은 그 스타일입니다. 이 영화는 셀 애니메이션이 아닙니다. 종이에 그림 한장 한장을 그려 애니메이션을 시킨 작품이지요. 돌아다니던 비디오로 이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이런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작품이 매우 희귀했기 때문에 거의 영상 충격으로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그 정도까지 강한 인상은 들지 않아요. 그 동안 저도 꽤 많이 봤으니까요.


그래도 [미개의 행성]의 비주얼은 여전히 강합니다. 르네 랄루와 롤랑 토포르는 무대가 되는 이감 행성을 묘사하기 위해 온갖 시각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이슬처럼 나무에 맺히는 수정이나 귀를 날개 삼아 날아다니는 육식 동물까지, 그들은 애니메이션으로나 묘사할 수 있는 전적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냈습니다. 굉장히 6,70년대 풍의 이미지이죠. 전체적으로 조금 약먹은 사람들이 그린 것 같거든요. 특히 명상에 도취된 드라그 인들의 묘사가 그래요.


이 영화에는 문명 비판도 있고 약간의 철학적 고찰도 있습니다. 인간이 외계인들에게 하찮은 쥐 취급 받는 세계를 통해 우린 인간 문명과 우리의 위치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죠.


그러나 르네 랄루의 다른 영화들이 그렇듯... 이야기가 별 재미 없습니다. 시각적 이미지는 강렬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캐릭터의 몰입이 힘들어요. 종이 애니메이션의 한계 때문에 풍부한 표정도 끌어내기 어렵고요. 영화는 이야기에 아무런 열정도 애정도 주지 않고 그냥 건조하게 흘러가기만 합니다. 사실 이야기 따위엔 큰 관심도 없는 것 같아요. 이 영화에 그나마 애정이 보이는 부분은 이감 행성의 생태 묘사니까요.


그래도 이런 냉랭함이 어떤 스타일을 형성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미지가 워낙 강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객들은 (비록 그들이 영화 중간중간에 하품을 하면서 봤다고 하더라도) 그 밋밋함을 용서하는 모양입니다. 영화를 본 뒤 시간이 흐르면 더 그렇겠지요. 지루함은 한순간이지만 이미지에 대한 기억은 훨씬 오래 가니까요. (01/08/13)


★★★


기타등등

아트 큐브에서는 1.66:1의 화면 비율을 살리지 못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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