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역습 The Empire Strikes Back (1980)

2010.02.13 20:39

DJUNA 조회 수:6686

감독: Irvin Kershner 출연: Mark Hamill, Harrison Ford, Carrie Fisher, Alec Guinness, Anthony Daniels, Kenny Baker, Peter Mayhew, David Prowse, Billy Dee Williams, Frank Oz, Jeremy Bulloch 다른 제목: Star Wars: Episode V - The Empire Strikes Back

듀나 [제국의 역습]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관객들이 '속편'이라는 영화한테 일반적으로 바라는 모든 것들을 철저하게 위반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에는 관객들의 예상과 맞는게 하나도 없습니다. 관객들은 끝에 엄청난 공중전이 있는 단순소박한 SF 영화를 원했겠지만 영화는 공중전 장면들을 덤으로 까는 복잡한 드라마입니다. 관객들은 루크와 레이아 공주의 관계가 더 깊어질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레이아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은 엉뚱하게 한 솔로입니다. 관객들은 루크가 다스 베이더와의 한판에서 근사하게 이기기를 바랐겠지만 엉뚱하게도 손만 잘리고 맙니다. 관객들은 다스 베이더가 증오의 대상으로 남기를 바라겠지만 알고 봤더니 그는 루크의 아버지입니다. 관객들은 화끈한 결말을 기대했겠지만 영화는 결말을 완전히 맺지 않고 중도에서 끝납니다. 그 결과 이 이상한 속편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계속 모을 수 있습니다.

파프리카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앞의 [스타 워즈]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결국 [제국의 역습]은 독립적인 영화로 볼 수 없습니다. 물론 독립적이 아니라고 해서 그 영화를 낮게 평가할 수는 없겠지요. 그건 [안티고네]를 [외디푸스 왕]없이 평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듀나 이 영화의 각본가들 중에는 SF 독자들에겐 아주 친근한 작가가 한 명 있습니다. 바로 SF 전성기를 장식했던 거의 유일한 여성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리 브라켓입니다. 공식적인 크레딧에는 브라켓과 로렌스 카스단만이 작가로 올라와 있습니다.

물론 리 브라켓은 SF 작가로보다는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했을 겁니다. 원래 시나리오로 출발한 사람이고 특히 고전 할리우드 액션물의 윤색에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던 사람이니까요. 하긴 SF와 판타지에 능통하면서도 시나리오의 각색에도 경험이 많은 작가를 고르라고 한다면 브라켓은 당연한 선택이었을 겁니다. 이 작가의 영향이 어느 정도나 되었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하여간 [제국의 역습]의 각본은 흥미진진합니다. 일단 [스타 워즈]처럼 늘어지는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영화는 루크의 통과 제의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동시에 한 솔로와 레이아 공주의 모험담을 끼워넣어 속도가 떨어지거나 볼거리가 없어지지 않게 합니다.

파프리카 하지만 그 때문에 시간의 혼란이 오기도 합니다. 루크의 수련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일어났을 것 같지만 한 솔로와 레이아의 모험은 단시간에 걸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루크의 수련에 시간 흐름의 특별한 명시가 없기 때문에 관객들은 레이아와 한 솔로의 모험에 시간을 맞춥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루크의 수련은 기껏해야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셈이 되는데,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어색하고 내용면에도 맞지 않습니다.

듀나 그러고 보니 그런 것도 같네요. 아마 데고바에서는 시간 흐름이 좀 이상한가보죠?

파프리카 차라리 그랬다면 관객들이 보다 더 납득할 수 있었을텐데요. 하지만 요다의 제다이 수업이 정말로 속성이었다는 쪽이 더 맞는 거 같아요.

듀나 그러나 너무 물고 늘어질 일도 아닌 것 같군요.

각본에는 또 다른 발전도 있습니다. 등장인물들도 단순히 착한 쪽/나쁜 쪽이었던 1편과는 달리 훨씬 깊이있게 묘사되었지요. 무식단순한 한 솔로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루크와 레이아는 전편보다는 분명히 성숙해졌습니다. 다스 베이더의 캐릭터도 강렬해졌으며 무엇보다 새로 등장한 요다가 있습니다.

파프리카 다스 베이더의 비중이 커진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유능할 뿐만 아니라 위엄있고 매력적인 악당입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의 일부는 좀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행동에 복선을 깔아주는 편이 더 나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루크에게 다스 베이더가 고백하기 전에는 그가 아버지라는 어떤 힌트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때문에 마지막 충격이 훨씬 커지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다스 베이더의 대사에 루크가 아들임을 그가 알고 있다는 복선을 깔아두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든 사실을 알고 보면 다스 베이더의 행동이 조금 일관성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듀나 저는 레이아의 발전에 더 주목하고 싶습니다. [스타 워즈]에서 레이아는 단순히 악당들에게 사로잡힌 당돌한 틴에이저 소녀였습니다. 하지만 [제국의 역습]에서 그녀는 단순히 품위 있을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놀랄만큼 성숙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적어도 저한테 레이아는 이 시리즈에서 가장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입니다. 솔로처럼 단순하지도 않고 루크처럼 절대적 운명에 말려든 영웅도 아니니까요.

파프리카 [스타 워즈]는 백인 남성들의 잔치였지만 후반 시리즈로 넘어갈수록 다른 인종이나 외계인, 여성들에게까지 범위를 넓혀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레이아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단순히 구해주어야 할 대상이지만 [제국의 역습]에서는 드라마의 갈등 축을 구성하는 성인 캐릭터로, [제다이의 귀환]에서는 당당한 한 명의 전사로 등장하지요. 처음에는 악당이나 바운티 헌터로만 등장하던 외계인들이 나중에는 저항군의 엄연한 일원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인 남성들의 잔치'라는 비난에 루카스가 어떻게든 대응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제국의 역습]에서는 최초의 흑인 캐릭터로 랜도 칼리시안이 등장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랜도는 상당한 기회주의자입니다. 그가 다시 '착한 사람'이 되는 것도 인종차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눈가리고 아웅'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듀나 저는 랜도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솔로의 친구 이상의 인물입니다. 도시 전체를 책임지는 우두머리니까요. 그에게는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솔로를 넘기는 행위는 따지고 보면 매우 타당한 도덕적인 기반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이 헐리웃 세계의 이상한 도덕률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부당하게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 친구를 넘기는 일이 랜도라고 편했겠어요? 스크린에 나오지 않을 뿐이지 그는 한 솔로의 몇 십배 더 갈등을 겪었을 인물입니다.

파프리카 요다의 등장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듀나 요다야 말로 [제국의 역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아주 잘 만든 캐릭터지요. 그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당연히 등장해야 할 뻔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각본에 묘사된 캐릭터의 행동 역시 뻔합니다. 하지만 프랭크 오즈가 재치있게 창조해낸 요다는 그 뻔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귀엽고 재미있으며 연기도 잘하는 데다가 깊이가 있습니다. 요다는 쉬운 어휘로 구성된 몇마디 단순한 말로 [스타 워즈] 우주의 핵심을 설명합니다. [스타 워즈] 세계의 철학이라고 뭐 특별히 독특한 게 있을 리가 없겠지만 요다가 이야기하니까 뭔가 다르고 심오해 보여요.

파프리카 다른 두 편과는 달리 [제국의 역습]에는 농담이 거의 없고 분위기는 암울합니다. 루카스는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통과제의 내용을 도입해서 스토리를 보다 원형적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것이 '의도적으로 만든 기성품'이라는 사실이죠. 루카스 자신도 [스타 워즈] 시리즈를 만들 때 조셉 켐벨의 [천의 얼굴을 한 영웅]을 수없이 되풀이 읽었다고 하더군요. 뭔가 순서가 바뀐 거 같지 않아요?

듀나 아뇨. 판타지 작가들이라면 다들 그렇게 할 걸요. 물론 현대 판타지 문학 장르 전체에 시비를 걸고 싶다면야 할 말은 많겠지만...

파프리카 좋아요, 됐어요.

듀나 [제국의 역습]의 추적전은 시리즈 중 최고입니다. [스타 워즈]가 일차원적인 게임과 같았고 [제다이의 귀환]에서는 그 발달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우주전 자체에 그렇게 큰 무게를 부여하지 않았었지요. [제국의 역습]의 추적전은 다른 두 작품처럼 클라이맥스를 구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긴박감과 구성면에서는 단연 선두에 섭니다. 나중에 [인디펜던스 데이]도 이 영화의 몇몇 장면들을 모방했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아직도 [제국의 역습]이 앞섭니다.

파프리카 그리고 호스 행성에서 벌어지는 제국군 워커와의 흥겨운 전투 장면도 있어요. 하지만 정말 워커는 말도 안되는 기계지요. 느려 터진 데다가 케이블로 다리를 감아도 픽 넘어져 부서지고... 게다가 그거 타면 멀미가 지독하게 심할 거예요. 하여간 제국군이 워커를 타고 느릿느릿 접근하는 대신 타이 파이터 몇 대를 보내 실드 제너레이터를 파괴했다면 저항군들은 박살났을 거예요.

듀나 타이 파이터의 화력이 워커보다 떨어지나 보죠.

파프리카 그럼 그 커다란 배에 고것들보다 쬐끔 센 전투기가 하나도 없단 말입니까?

듀나 그래도 워커가 생긴 건 근사하잖아요.

파프리카 맞아요. 순전 전시용이죠, 뭐.

듀나 진짜 말이 안되는 장면을 들라면 역시 그 소행성의 우주괴물을 들 수 있죠. 클라크도 그의 [2010 :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그 괴물을 언급한 적이 있지요. 정말 그 불쌍한 괴물은 거기서 어떻게 숨을 쉬고 무엇을 먹고 살까요?

파프리카 멍청한 스타 디스트로이어가 우연히 들어오면 꿀꺽?

듀나 그렇다고 칩니다. 하지만 우주복도 없이 산소마스크만 쓰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는 레이아와 솔로의 용감무쌍한 행동은 또 뭐지요?

파프리카 말도 안되는 장면이라고 하니까 생각나는게 또 하나 있네요. [스타 워즈]에서 제국군과 루크 일행이 쫓고 쫓기는 장면이 있잖아요. 걔들이 추적전을 벌이는 복도가 원형으로 굽어 있지요. 하지만 죽음의 별이 그렇게 크다면 그 원호가 엄청나게 커서 관객들이 그 굽음을 거의 눈치챌 수 없을 거예요.

듀나 꼭 그게 별 중앙에 중심을 둔 원이 아닐지도 모르잖아요.

파프리카 그냥 그렇다는 거죠.

듀나 [제국의 역습]은 결말을 완전히 내지 않고 다음 편을 예고하며 적당한 선에서 영화를 끝내고 있습니다. 사실, 이 결말도 [제국의 역습]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한 역할을 합니다. 일단 여운을 남기는 멋도 있지만, 사실 어떤 영화를 결말내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또 기대는 언제나 실제보다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역습]은 마무리를 짓는다는 힘겨운 짐을 [제다이의 귀환]에게 떠넘기고 잽싸게 달아났습니다. (97/05/25)

★★★★

기타등등

스페셜 에디션에 대한 이야기는 [제다이의 귀환] 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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