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 사냥 Witch Hunt (1994)

2010.02.01 00:39

DJUNA 조회 수:5317

 

1.

폴 슈레이더 감독의 이 텔레비전 영화를 압도하는 것은 영화의 엉뚱한 설정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마법이 최신 유행이 된 50년대 할리우드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마법으로 셰익스피어나 디킨즈 같은 과거의 거장들을 불러오고 스타 지망생들은 성형외과의사 대신 마녀들을 찾아갑니다. 살인범은 총을 쏘거나 칼을 휘두르는 대신 피해자를 축소시키거나 마네킹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당연히 마법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상원의원 라슨 크로켓(에릭 보고시안)입니다. 도덕주의자를 자칭하는 이 정치가는 할리우드에서 대대적인 마녀 사냥을 벌입니다!

 

아하! 여러분도 이제 감을 잡으셨겠지요. 슈레이더의 장난은 순진할 정도로 노골적입니다. 매카시 열풍 당시 할리우드를 휘몰아쳤던 '빨갱이 마녀 사냥'을 진짜 '마녀 사냥'으로 만들어버린 거죠. 이 은유는 후반부의 마녀 사냥과 화형식 장면에서 극대화됩니다.

 

2.

슈레이더는 이 세계를 그리기 위해 필름 느와르 형식을 빌려오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사립탐정 러브크래프트는 할리우드 스타 킴 허드슨의 의뢰를 받아 부정한 남편을 미행하지만, 남편은 누군가의 마법에 걸려 살해당하고 맙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마녀 히폴리타 크롭트킨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수사하는데, 당연히 사건은 보기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러브크래프트는 부패한 크로켓 뿐만 아니라 사악한 마법사 핀 마샤와 좀비 악당, 영화 스크린에서 날아드는 총알과 싸워야 합니다.

 

판타지의 가벼움과 느와르의 무거움이 결합된 결과, [마녀 사냥]은 기괴한 코미디가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의 마법 버전을 보는 느낌입니다. 영화를 물들인 파스텔 조의 환한 색조와 곳곳에 삽입되는 컴퓨터 그래픽 때문에 더욱 더 그렇죠.

 

이것 자체를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나?]는 훌륭한 영화였습니다. 느와르와 판타지를 결합해서 코미디를 만들어도 훌륭한 게 나올 수 있다는 증거지요.

 

그러나 [마녀 사냥]은 [로저 래빗]의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건 폴 슈레이더는 결국 슈레이더일 뿐이지 결코 로버트 제메키스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겁니다.

 

영화의 가장 큰 결점은 슈레이더가 이 판타지와 은유를 너무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긴 '빨갱이 마녀 사냥'을 그렇게 가볍게 다루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화의 경쾌한 판타지와 엉뚱한 아이디어들은 '마녀 사냥'을 진지하게 다룰 만큼 진지해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묵직한 주제와 가벼운 느낌이 툭탁거리며 싸우는 거죠.

 

필름 느와르라는 장르 역시 주제와 싸웁니다. 장르의 형식이 워낙 막강해서 마녀 사냥이라는 본 스토리로 끌고 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게다가 잘못을 크로켓이라는 악당 탓으로 돌려 버리는 건 너무 손쉬운 선택이었습니다. 그나마 슈레이더가 건드리려던 주제까지도 날아가버리고 말았어요.

 

3.

[마녀 사냥]은 결코 성공적인 영화가 아닙니다. 가장 큰 이유는 감독이 소재의 엉뚱함을 충분히 견뎌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보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잖아요? 아이디어는 동강 나 있지만 그 부분부분만을 즐긴다면 꽤 재미있습니다. 이야기도 훌렁훌렁 잘 넘어가는 편이고요. (99/06/20)

 

★★☆

 

기타등등

주인공 이름인 H.P. 러브크래프트는 공포소설작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한테서 빌려온 것이겠지요.

 

감독: Paul Schrader 출연: Dennis Hopper, Penelope Ann Miller, Eric Bogosian, Sheryl Lee Ralph, Julian Sands, Debi M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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