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포 콜럼바인 Bowling for Columbine (2002)

2010.01.26 11:19

DJUNA 조회 수:4644

감독: Michael Moore

1999년 4월 20일, 덴버의 리틀턴이라는 교외 주택지에 있는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트렌치코트 마피아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두 고등학생들이 교내를 돌아다니며 총기 난사 소동을 벌였던 거죠. 그 결과 15명의 학생과 교직원들이 목숨을 잃었고 23명이 부상했습니다. 범인들은 소동이 끝나자 마자 자살했고요.

영화의 제목은 이 둘이 총격난사사건이 있었던 날 아침에 볼링을 했다는 주장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근데 이건 사실이 아니라고 해요. 그들이 볼링 수업을 듣는 것도 사실이고 볼링을 자주 쳤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날 아침에 쳤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이클 무어의 비판가들이 꼬리 잡을 일이 하나 더 생긴 거죠. 아니, 하나가 아닙니다.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심쩍은 사실 기술로 가득하니까요. 예를 들어 마이클 무어는 계좌를 만들면 총을 준다는 미시간의 은행에 들어가 한시간만에 총을 들고 나오는데, 그 역시 엄격한 사실은 아닙니다. 일반 사람들은 총을 받으려면 열흘은 더 기다려야 한다니까요. 그 장면도 연출된 것이지 실제 일어난 사건을 담은 건 아니라는군요.

모든 건 무어의 영화를 보는 방식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볼링 포 콜롬바인]을 학술 논문이나 기사의 참고 자료로 삼을 생각이라면 전 두 손 들고 말릴 겁니다. 이 영화는 결코 객관적인 자료가 되지도 못하고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마이클 무어가 지금까지 만들어 온 영화들 중 사실 왜곡과 연출이 개입되지 않은 작품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무어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가며 자신의 주장을 설파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지, 사실 기술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관객들이, 자기네들이 보는 게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고만 있다면 더 정직한 영화 만들기일 수도 있어요. 100 퍼센트 객관적인 다큐멘터리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좋아요. 그럼 무어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요?

영화는 일단 총기 규제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콜롬바인 총기 난사 사건으로 운을 뗀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이 얼마나 총기에 매혹되었었는지, 그가 어떻게 NRA 평생 회원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총기 규제가 전혀 없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총기 살인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총기 소유 권리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죠.

그러나 무어는 총기 문제만에만 집중하지 않습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재미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그는 총기 문제를 미국이라는 나라를 해부하기 위한 메스로 이용합니다. 우선 그는 콜럼바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곳에 록히드 마틴의 거대한 군수 공장이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순식간에 총기 문제와 미국의 대외 정책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여기까지 논리를 끌어온 것도 흥미롭지만 무어는 조금 더 나갑니다. 그는 왜 미국만큼 총기가 난무하는 캐나다에서는 그처럼 총기 사태가 적은지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순식간에 총기 규제에 대한 단순한 이슈는 미국 대외 정책과 피로 물든 미국의 역사, 대중들의 공포를 먹고 사는 매스컴과 정부 정책이 꼬리를 물고 얽혀 있는 난장판으로 연결됩니다.

이 이야기들 중 얼마나 믿을 수가 있을까요? 글쎄요. 여러분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솔직히 말해 무어의 논리는 종종 과장과 무리한 추론으로 흐르며 구멍도 많습니다. 몇 개는 정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쉽게 반박될 수 있죠. 예를 들어 제가 막판 클라이맥스의 희생자였던 찰턴 헤스턴의 위치에 있었다면 그렇게 쉽게 당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캐나다가 총기 천국이라는 정보까지 자발적으로 제공해주었는데, 그냥 얻어맞기만 한다면 섭섭하죠. 그렇다고 영화 속의 찰턴 헤스턴에 대한 거부감이 덜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종종 무리한 논리 전개에도 불구하고 무어의 논점은 살아 있으며, 어느 관점에서 보더라도 흥미로운 토론 거리를 제공해줍니다. 그의 논리를 매정하게 모두 물리친다고 해도 그의 질문까지 무시할 수는 없어요.

여러분이 아주 야무지게 굴어서 그의 질문까지 무시한다고 해도 여전히 [볼링 포 콜럼바인]은 좋은 다큐멘터리입니다. 일단 무척 재미있고 조작되지 않은 진짜 분노와 효율적인 유머로 가득 하니까요. 이 다큐멘터리에서 마이클 무어는 완벽한 스타입니다. 빠르고 위트넘치고 뻔뻔스럽고 야비하고 스타 근성이 철철 넘쳐 흐르지요. 그는 카메라 뒤에 서 있는 대신 행동합니다. 정말 캐나다 사람들이 문을 잠그지 않는지 확인하기 위해 남의 집에 무단침입하고, 콜럼바인 희생자들을 끌고와 K-마트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고, 막판엔 NRA의 회장인 찰턴 헤스턴의 집으로 쳐들어가 그 어리버리한 노인네를 묵사발로 만들어놓죠. 종종 그의 행동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K-마트는 무어가 설친 뒤로 권총 탄약의 판매를 단계적으로 포기했습니다. 영화쟁이가 실제 세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증거지요.

결론지어 말한다면 [볼링 포 콜럼바인]은 멋진 다큐멘터리입니다. 재미있는 영화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이 잔뜩 녹아있는 영상 에세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 그냥 그에게 끌려다니지는 말라고 경고하고 싶군요. 영화를 보신 뒤 직접 정보를 찾아다니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영화의 논리를 검증하고 자신만의 논리를 세우세요. 이 영화는 결코 수동적으로 삼켜서는 안되는 작품입니다. (03/04/10)

★★★☆

기타등등

캐나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 괜히 기분 좋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공동 제작사가 Alliance Atlantis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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