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 드레이크 Vera Drake (2004)

2010.01.29 22:17

DJUNA 조회 수:5298

감독 Mike Leigh 출연: Imelda Staunton, Phil Davis, Ruth Sheen, Peter Wight, Richard Graham,Sally Hawkins, Jim Broadbent

[베라 드레이크]의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한 여자들에게 불법 중절을 해주던 노동자 계급의 아줌마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어갑니다. 베라 드레이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낙태가 범죄이던 1950년대엔 베라 같은 사람들이 넘쳐 났겠죠.

이건 단점이 아닙니다. 영화의 전략 중 하나죠. 사실 마이크 리의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략으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리는 우선 이 영화에 [베라 드레이크]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시작부터 베라 드레이크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하나의 인격체로 봐달라고 관객들에게 요구하는 거죠. 영화의 처음 절반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베라 드레이크라는 인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갑니다. 베라는 그냥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자기 일에 열심인 중년 아줌마예요. 불법 중절도 돈을 노리고 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냥 난처한 일을 당한 여자들을 돕고 싶어서 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을 베라에게 소개시켜주는 릴리는 베라 모르게 소개비를 받지만요. 우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베라의 불법 중절을 맘 좋은 아줌마가 늘 겪는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중반부에서 베라가 도와주었던 여자 한 명이 죽을 뻔하자 베라는 체포됩니다. 여기서 리는 지금까지 공들여 한 사람의 인격체로 만들었던 베라를 형법체제의 기계 속에 던져 넣습니다. 베라가 체포되고 법정에 끌려가고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는 과정은 베라와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자기 일에 대해 잘 아는 직업 경찰관들과 법조인들에 의해 절차대로 진행됩니다. 가혹행위도 없고 은폐도 없고 주인공의 연설도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당시 거의 매일 일어났던 흔해 빠진 사건들 중 하나에 불과할뿐이죠.

정리하면 [베라 드레이크]는 두 가지 일상의 제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베라 드레이크 자신의 일상의 제식과 50년대 영국 형법 체제의 일상의 제식이죠. 둘을 따로 떼어 놓으면 특별할 게 없습니다. 하지만 둘을 붙여 놓으면 충돌이 발생합니다. 더 이상 양쪽 세계의 일상은 일상이 아닙니다. 그건 우리가 생각해보고 검토해보고 체험해봐야 할 어떤 것입니다.

마이크 리는 영화에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가 따로 삽입한 서브 플롯에서, 베라가 일하는 집의 딸인 수잔은 남자친구에게 강간당한 뒤 임신합니다. 하지만 수잔은 베라를 찾아가는 대신 100파운드의 돈을 지불하고 합법적인 편법을 통해 낙태수술을 받고 일상으로 돌아옵니다. 다시 말해, 이 모든 건 계급 문제인 겁니다. 베라가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노동자 계급의 가난한 여성들이 수잔과 같은 사치를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겁니다. 낙태문제를 계급이라는 하나의 코드만으로 본다면 모든 게 지나치게 단순해지지요.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마이크 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 강요하지는 않거든요. 그가 아무리 "나는 이게 기본적으로 계급 문제라고 생각해"라고 말해도 그게 영화의 최종 메시지가 되지는 않습니다. 영화는 그 뒤에도 여전히 가치평가 없는 조용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이 절묘한 균형잡기는 [베라 드레이크]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 다음 장점은 배우들의 질입니다. 이멜다 스턴튼이 단순하고 순진하며 선의로 차 있는 베라 드레이크라는 여성을 놀랄만한 설득력으로 그려내지 않았다면 마이크 리의 이 영화는 그냥 건조한 낙태 이슈 관련 멀티미디어 자료에 불과했겠죠. (05/10/31)

★★★☆

기타등등

샐리 호킨즈가 드디어 하녀 신분에서 벗어나 상류 사회 아가씨가 됩니다. 하지만 사는 꼬락서니는 오히려 더 못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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