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의 정령 El Espíritu de la Colmena (1973)

2010.02.06 19:10

DJUNA 조회 수:4192

감독: Victor Erice 출연: Ana Torrent, Isabel Tellería, Teresa Gimpera, Fernando Fernán Gómez 다른 제목: The Spirit of the Beehive 

1.

제임스 웨일이 보리스 칼로프 주연의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을 때 심각하게 문제가 되었던 장면이 있었습니다. 대충 이런 거죠. 어린 소녀가 혼자 놀고 있는 호숫가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다가옵니다. 겁없는 아이는 괴물과 함께 호수에 꽃을 띄우는 놀이를 하지요. 꽃이 다 떨어지자 괴물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소녀를 물에 집어던집니다!

아주 절묘한 장면이었지요. 괴물이 어떤 악의가 있어서 소녀를 죽인 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그건 꽃을 띄우는 것과 같은 순진무구한 놀이였어요. 어린 아이와도 같은 결백함과 행동의 잔인함이 결합된 괴물의 이런 행동은 요새 기준으로 보아도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니버설 사의 제작자들은 이 장면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칼로프도 그 장면이 너무 잔인하다고 싫어했고요. 그렇다고 에피소드 전체를 지워버릴 수도 없었지요. 괴물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증오를 설명하는 아주 중요한 장면이었으니까요.

결국 그들은 괴물이 소녀를 물에 던지는 장면만 삭제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오히려 더 잔인해졌어요. 괴물이 정말 의도적으로 소녀를 죽인 꼴이 되어버렸으니까요.

2.

1940년, 카스티야의 어느 작은 마을. 다섯 살 소녀 아나는 일곱 살인 언니 이사벨과 함께 각각 동전 두 닢을 내고 마을 회관에서 상영하는 웨일의 [프랑켄슈타인]의 스페인어 더빙판을 보고 있습니다. 나라는 다르지만 자체 검열의 상처는 이 꼬마 관객에게도 심각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킵니다. 왜 그 착하던 괴물이 불쌍한 여자 아이를 죽였을까요?

당연히 아나는 언니에게 어떻게 되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이사벨이라고 10년 전 대서양 저편에서 벌어졌던 제작사와 감독의 예술적 충돌에 대해 알 리가 없죠. 대신 이사벨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영화에 나온 건 모두 거짓말이야. 괴물은 아이를 죽이지 않았어. 괴물은 아직도 벌판 어딘가에 돌아다니고 있어. 아무도 괴물을 죽일 수 없어. 괴물은 정령이거든. 난 그 괴물을 봤어."

아이들의 '거짓말'은 단순한 거짓말이 아닙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엄청난 사실을 말한다]와 같은 TV 쇼가 아이들의 그런 찬란한 환상을 울궈 먹으면서 끝없이 히트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사벨의 거짓말은 아이들이 세상을 보는 그 특유의 방법들 사이에서 스며나온 상당히 진지한 환상입니다. 그게 어린 동생을 놀려먹으려는 장난이었건, 언니의 위신을 지키려는 시도였건 간에요.

이사벨의 인스턴트 환상을 물려받은 아나는 괴물을 찾으러 근방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다섯살 배기 어린 여자아이가 동화 속의 거인을 찾으러 카스티야의 넓은 벌판을 콩콩거리며 돌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귀엽죠?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막 세상에 대해 알아가는 어린 아이의 환상은 어른들의 세계와 서글픈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그 결과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지며 이야기는 아주 이상하고 거의 마술과도 같은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3.

빅토르 에리세의 처녀작인 [벌집의 정령]의 배경이 1940년 스페인이고, 영화가 개봉된 해가 1973년이라는 사실은 이 영화를 이해하는 데 꽤 중요합니다. '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이 동화같아 보이는 이야기에 또다른 차원을 부여하는 것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이기 때문이지요.

스페인 역사책을 들추어 본다면 1940년이 얼마나 미묘한 해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2차 세계대전이 유럽의 다른 나라들을 뒤집어 엎고 있는 동안 스페인은 중립 선언 아래 숨어 조용한 평화를 누리고 있었지만, 스페인 내전이 끝난 직후 프랑코 정부 독재 하의 상황은 결코 아름답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아나와 이사벨의 부모인 테레사와 페르난도는 이런 시대적 상황을 뼛속까지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사는 카스티야의 작은 동네는 스페인 내전의 피해를 그렇게까지 입은 것 같지도 않고 영화 전체를 통해 정치적 발언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우리는 그 맥빠지고 음울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허탈감은 이 말없는 가족을 지배하고 그들을 가족의 다른 일원으로부터 고립시킵니다. 간단한 산수 계산으로도 알 수 있죠. 테레사와 페르난도는 영화 전체를 통해 단 한 번 밖에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것도 겨우 잘 다녀오라는 인사가 전부예요. 부부간의 의미있는 대화는 전혀 없습니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테레사가 끝없이 써대는 편지들과 벌과 벌집에 대한 페르난도의 집착, 그리고 그들 사이의 소름끼치는 침묵 뿐입니다.

아이들도 부모들이 느끼는 삶의 무게를 물려받습니다. 사실 영화 전체가 그 무게에 깔려있지요. 그리고 이 영화가 발표된 1973년이라는 해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코가 죽으려면 아직 2년이나 더 남아있었으니까요.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조심스럽습니다.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말이 없고 가장 대사가 많은 아이들도 죄지은 것처럼 속삭이기만 해요. 심지어 아무도 없는 들판에서도요.

영화 역시 긴 속삭임 같습니다. 직접적인 이야기를 하는 대신, 에리세는 영화 전체를 통해 알 수 없는 상징들을 뿌려놓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테레사와 페르난도에게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테레사가 편지를 쓰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부상당한 남자'의 정체는?

뭐 테레사가 바람피우고 있었다고 하거나 부상당한 남자가 정치범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이런 영화에서 구체적이고 일관성있는 정답을 찾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런 종류의 해석은 오히려 영화의 내용을 축소시키고 말죠. 일관성있는 해석이 영화의 중의적인 아름다움을 손상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가지 의식적인 암시들을 잡아낼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나와 이사벨을 따라가는 관객들은 끊임없이 다양한 죽음의 상징들과 마주칩니다. 페르난도가 발견한 독버섯, 아나가 넘기는 흑백 사진 앨범, 초등학생용 인체 모형, 이사벨이 벌이는 죽음의 게임, 창고에서 총에 맞아 죽은 '부상당한 남자', 그가 남긴 핏자국, 손가락 상처에서 나오는 피로 입술을 칠하는 이사벨... 물론 그 절정은 죽은 자의 몸으로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인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입니다.

4.

영화의 내용이 가장 구체적이 되는 부분은 '부상당한 남자'의 등장입니다. 사실 너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위험할 뻔했습니다. 이 정체 불명의 남자는 아나가 괴물이 산다고 믿는 창고 안으로 숨어들어오고 '아마도 그를 괴물로 생각한' 아나는 그에게 음식을 주고 아빠의 옷가지를 가져다 줍니다.

여기에서 이야기가 멈추었다면 큰일났겠지만 에리세는 그런 실수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남자는 총격전 끝에 죽고 페르난도가 아나의 행동을 알아차리자 영화는 잽싸게 진짜 클라이맥스로 돌진하니까요. 이렇게 보면 부상당한 남자는 꽤 영리하게 삽입된 셈입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아나는 어린아이다운 순수한 환상의 절정에 이르지만, 그 에피소드 이후 관객들에게 그 환상은 단순한 어린아이의 환상이 아닌 것이지요.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괴물은 칼로프의 괴물보다 훨씬 슬퍼보입니다.

5.

내용이 어찌되었건, 이 영화가 만들어내는 분위기의 힘은 아주 강렬합니다. 73년에 개봉된 영화니 당시에도 '짜증날 정도로 긴 롱테이크'가 그렇게까지 신기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 적절한 사용은 칭찬할만 합니다. 게다가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루이스 쿠아드라도의 근사한 촬영도 한 몫을 하죠. 사실 영화관에서 보아야 더 어울리는 작품입니다. 화면의 그 강한 콘트라스트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비디오로는 그게 많이 손상되니까요.

게다가 저희가 본 야누스 필름 버전은 그렇게 만족스러운 게 못되었어요. 레터박스는 레터박스인데 끊임없이 화면이 올라갔다 내려갔다해서 좀 짜증이 나더군요.

6.

[떼시스]에서 주인공 앙헬라를 연기했던 목이 길어 슬픈 배우 아나 토렌트를 기억하세요? 이 영화가 그 배우의 처녀작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나 역을 했을 때 겨우 다섯 살이었지요. :-)

토렌트는 이 영화에선 정말 귀엽답니다. 까만 눈을 반짝이며 숲 속의 엄지동이처럼 쫄랑쫄랑 돌아다니는 이 꼬마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가슴이 찡해지죠. 단순히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그저 스크린 앞에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영혼까지 잡아끄는 희귀한 재능까지 겸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재능은 상당히 단단한 것이었습니다. 카를로스 사우라의 고전 [갈가마귀 키우기 Cría Cuervos]는 토렌트가 얼마나 실력있는 아역배우였나를 증명하는 또다른 예였지요.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해야 할 것 같군요. (98/09/23)

★★★★

기타등등

1. 오프닝 크레딧에 나오는 그림들은 모두 아나 토렌트와 이사벨 테예리아가 직접 그린 것입니다.

2. 촬영감독 루이스 쿠아드라도는 이 영화를 찍을 때 거의 장님이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시력을 거의 잃어가던 남자가 순전히 기억과 감으로 잡아낸 이미지가 이처럼 압도적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걸까요.

3. 눈치채셨나요? 이 영화의 네 주인공들은 모두 그 역을 연기한 배우와 이름이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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