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쥬스 Beetlejuice (1988)

2010.02.12 22:32

DJUNA 조회 수:7209

감독: Tim Burton 출연: Geena Davis, Alec Baldwin, Michael Keaton, Winona Ryder, Catherine O'Hara, Jeffrey Jones, Sylvia Sidney, Robert Goulet, Glenn Shadix 다른 제목: 유령 수업, Beetle Juice

1.

코네티컷의 윈터 리버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바바라와 애덤 부부는 교통사고로 죽은 뒤 그만 자기가 살던 집에 갇히고 맙니다. 그런데 125년 동안 그들이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집에 뉴욕에서 온 부동산 중개업자 가족이 이사해오죠. 신경쇠약에 걸린 남편 찰스나 우울증 증세가 있는 딸 리디아는 어떻게 버텨내겠지만, 자칭 예술가인 아내 딜리아와 그녀의 친구 오토는 집을 멋대로 개조하면서 바바라와 애덤의 신경을 긁어놓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델쥬스(비틀쥬스)라고 하는 '바이오-엑소시스트'가 그들에게 접근해 옵니다...

2.

팀 버튼은 [비틀쥬스] 이전에도 그의 개성이 담뿍 담긴 흥미로운 영화들을 만들었습니다. 단편인 [빈센트]와 [프랑켄위니]는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버튼 영화였고 그의 첫 장편인 [피위의 대모험]도 버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비주얼로 가득한 작품이었지요.

하지만 [비틀쥬스]야 말로 버튼의 존재를 최초로 입증한 작품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빈센트]와 [프랑켄위니]는 단편이었고 [피위의 대모험]은 폴 루벤스와 피위 캐릭터가 가진 원래 개성 때문에 버튼의 개성을 확신할 수 없었지요.

[비틀쥬스]는 여러 모로 분명한 버튼 영화였습니다. 우리가 버튼 영화에서 기대하는 모든 것들이 있었죠. 일상성과 그로테스크함의 대립, 원색과 검은색의 대립, 노출증과 우울증의 대립, 이들을 장식하는 지극히 팀 버튼적인 비주얼... 이 작품을 본 비평가들은 그의 다른 작품들을 검토해보기 시작했고 결국 '작가' 팀 버튼이 탄생한 것입니다.

이런 대립들은 꽤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초자연적인 유령들의 세계와 일상적인 산 사람들의 세계가 툭탁거리다가 화해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정상적인 보통 사람들은 유령인 메이틀랜드 부부이고, 괴상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리디아와 딜리아죠.

비틀쥬스라는 유령이 중간에 등장하면서 또다른 대립쌍이 만들어집니다. 이 경우는 우울증에 걸린 산 사람 리디아와 비틀쥬스라는 화려한 미치광이의 대립이죠. 아까까지만 해도 대립의 한쪽 끝에 서 있던 메이틀랜드 부부는 순식간에 중간에 서게 되고 (이들이 중간에 서게 된 이유는 막 대립쌍의 한쪽 끝으로 밀려난 리디아가 가운데에서 중재역을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들이 뒤섞이는 과정을 통해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비틀쥬스]가 꽤 정신분열증적인 작품으로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각 대립의 양쪽 측면을 모두 지니고 있고 각각의 대립쌍에서 모두 다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화해로 끝나는 것도 당연하죠. 적과 아군은 커녕,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기도 힘든 상황이니까요.

3.

[비틀쥬스]라는 영화에서 스토리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장난감 퍼즐처럼 아기자기하게 짜여진 초현실적인 설정과 이를 구체화한 팀 버튼의 비주얼입니다. 물론 지나칠 정도로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처럼 독특한 재미를 주는 사후 세계 설정도 많지 않습니다. [천국의 사도 조던] 정도나 이와 맞먹을 수 있을까요?

[비틀쥬스] 사후 세계는 버튼의 영화답게 찬란하게 그로테스크합니다. 유령들은 그들이 죽었을 때의 모습을 극도로 과장한 괴물들입니다. 종이처럼 납작하게 눌린 남자, 머리가 줄어든 백인 사냥꾼, 상어에 다리가 먹힌 잠수부, 허리부터 두 동강이 난 여자... 이들이 각본이 만들어낸 복잡한 게임의 미로와 결합하면 영화는 정말 미치광이가 됩니다.

저승의 관료주의는 이런 괴상한 설정을 보다 극적으로 강조하는 고약한 코미디를 만들어냅니다. 물론 이들의 관료주의는 [천국의 사도 조던]이나 [천국으로 가는 계단]의 관료주의만큼 정상적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유령들은 모두 조금씩 미쳤으니까요. 메이틀랜드 부부에게 제공된 [초보 사망자 안내서]는 이 미치광이들의 세계가 가진 자체 논리를 제공해주는 안내서입니다. 애덤이 스테레오 사용서 같다고 불평한 책에는 다음과 같은 유쾌한 말들이 가득하죠. "Geographical and temporal perimeters. Functional perimeters vary from manifestation to manifestation."

다행스럽게도 이 영화는 컴퓨터가 특수 효과를 도배하기 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버튼은 맘 놓고 구식 특수 효과로 영화를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아카데미 상을 받은 롭 보틴의 분장이지만 종종 등장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즐거운 삽입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4.

[비틀쥬스]는 수많은 재능있는 배우들에게 새로운 기회의 장을 열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 생산성은 놀라울 정도지요. 위노나 라이더, 마이클 키튼, 지나 데이비스, 알렉 볼드윈 모두가 이 영화를 발판으로 스타가 된 사람들이니까요. 스타까지는 아니더라도 캐서린 오하라나 제프리 존스와 같은 중견 배우들의 입지가 넓어진 것도 이 영화 덕이고요. 물론 한참 고참인 실비아 시드니가 아직 건재하다는 걸 알려준 것도 역시 상당한 공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나 데이비스와 알렉 볼드윈이 따뜻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영화에 불어넣으며 관객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하는 쪽이라면, 위노나 라이더와 마이클 키튼은 버튼의 비틀린 미의식을 대표하는 쪽입니다. 모두 잘했지만, 전 늘 리디아 역의 위노나 라이더 쪽에 시선이 끌리는 편입니다. 가장 먼저 익숙해진 캐릭터여서일 수도 있겠고 (전 이 영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먼저 보았습니다) 팀 버튼의 영화에 가장 맞는 인물이어서일지도 모르죠.

그러나 영화를 진짜로 사로 잡는 사람은 역시 마이클 키튼입니다. 비틀쥬스는 타이틀롤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불분명한 역이지만 일단 이를 연기한 키튼이 등장하면 이 괴물은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산하며 관객들에게 광적인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5.

10여년이 지난 지금 [비틀쥬스]를 다시 보는 기분은 각별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숨겨진 수작이었던 작품이 이제는 모두가 아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 되었으니까요. 물론 이 영화를 보는 관점도 같을 수는 없겠지요. [비틀쥬스]를 다시 보면서 10여년 전의 신선함을 느낄 수는 없습니다. 우린 버튼의 세계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으니까요. (00/12/27)

★★★

기타등등

[유령 수업]이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영화지만 이제 아무도 이 제목을 쓰지 않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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