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가면 La maschera del demonio (1960)

2010.02.13 17:25

DJUNA 조회 수:3941

감독: Mario Bava 출연: Barbara Steele, John Richardson, Andrea Checchi, Ivo Garrani, Arturo Dominici, Enrico Olivieri 다른 제목: 블랙 선데이, Black Sunday, The Mask of Satan 

1.

때는 19세기 중엽, 조수 안드레이 고로벡을 데리고 몰다비아를 여행하던 토마스 크루바얀 박사는 17세기에 처형된 마녀이자 흡혈귀인 아사 바이다의 무덤을 지나치게 됩니다. 우연히 시체에 떨어진 크루바얀의 피로 다시 부활한 아사는 같이 처형된 하인 야부티치를 살려내고, 바이다 성은 다시 공포와 살육의 장이 됩니다. 아사는 부활하기 위해 그녀와 쌍둥이처럼 닮은 후손인 카티아 바이다를 노리고, 카티아를 사랑하게 된 안드레이는 아사의 저주로부터 카티아를 구하려고 하지만...

2.

믿거나 말거나 [사탄의 가면]의 원작은 니콜라이 고골리의 단편 [비이]입니다. "도대체 뭐가 어째?"라고 외치고 싶은 분들도 계시겠지요. 영화와 원작인 단편소설은 도대체 닮은 구석이 없으니까요. 심지어 이 영화에서는 비이가 등장도 하지 않습니다. 닮은 게 있다면 마녀가 나온다는 것이고 무대가 동구권 어딘가라는 것뿐입니다. 네 명의 각본가들이 각본을 고치고 고치는 동안 점점 원작으로부터 스토리가 떨어져 나와 엉뚱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이 영화는 고골리가 쓴 거칠고 소름끼치는 단편보다는 브램 스토커와 유니버설 호러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하여간 잘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탈리아 호러 영화가 쓸데 없는 잔혹함과 유치찬란한 각본의 조잡한 결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사탄의 가면]부터 시작해볼 일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탈리아 호러의 잔혹함과 유치찬란함을 사랑하는 팬들이라도 이 작품은 필수적으로 봐야 할 영화겠지요. [사탄의 가면]은 마리오 바바의 공식적 처녀작일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호러 영화의 공식적인 시조이기도 하며, 결정적으로 세련되고 무척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3.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가면]을 '호러 영화의 [시민 케인]'이라고 부릅니다만, 과연 그럴 정도로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영화가 [캣 피플]이나 [노스페라투]만큼 중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탄의 가면]은 그렇게까지 독자적인 장르를 연 작품이 아닙니다. 이 영화의 아름다운 흑백 비주얼은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유니버설 호러 고전들과 닮아 있고, 당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고어와 폭력은 해머 영화가 미리 다져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바바는 기존 호러 장르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솜씨 좋게 다져 자기 것으로 포장해낸 것이지요. 그래도 [시민 케인]의 비유를 고집하고 싶다면, 이 영화의 '종합적인' 측면을 파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그러나 전 억지로 이 영화의 역사적 무게에 집착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사탄의 가면]은 흥미로운 영화니까요. 네, 고어는 낡았습니다. 60년대 검열관들을 경악하게 했던 묘사들은 요샌 예전같은 충격을 주지는 않습니다. 스토리는 종종 맥없이 방황하고 폭발적인 클라이맥스도 없습니다. 모두 인정해요. 하지만 영화가 보여주는 창의성과 아름다움은 그런 단점들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영화의 가장 큰 힘은 아마 바바가 직접 찍은 흑백 화면이 잡아내는 그 음울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일 겁니다. 언젠가 스콜세지는 바바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죠. "그의 영화는 별다른 스토리 없이 안개가 자욱이 낀 가운데 여인들이 복도를 걸어가는 등의 분위기만으로 사람을 무섭게 한다." 바바가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과연 '무서운 것'인지는 모르지만 (스콜세지야 [죽음의 섬]과 같은 영화도 무서워서 벌벌 떠는 사람이잖아요!) 그 음습한 흑백 분위기가 주는 아름다움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분위기는 그림 형제의 작품들과 같은 옛 동화들이 풍기는 잔인한 분위기와 아주 닮아 있습니다. 팀 버튼이 이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이해할만 해요.

게다가 영화는 역사에 남을 근사한 장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크루바얀 박사의 피가 눈구멍에 떨어진 뒤 아사가 서서히 부활하는 장면에는 요새 호러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중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크루바얀을 맞이하는 야부티치의 마차는 [노스페라투]를 반대로 인용한 듯 하지만, 효과는 더 좋습니다. 저예산이지만 창의적인 특수 효과도 있습니다. 카티아와 아사가 늙어가고 젊어지는 부분들이 그래요. 바바는 노화와 회춘의 과정을 디졸브 따위는 쓰지 않고 한 컷에서 그대로 보여줍니다. 컴퓨터도 없었을텐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요? 흑백 영화에서나 가능했던 방법을 썼답니다. 푸른 조명과 붉은 조명을 번갈아 쓰면서 숨겨져 있던 메이크업이 나타나거나 사라지게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 영화에는 전설적인 스크림 퀸인 바바라 스틸이 있습니다. [사탄의 가면]은 바바의 출세작일뿐만 아니라 바바라 스틸의 출세작이기도 하죠. 개인적으로 스틸이 그렇게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만, 스틸의 괴물과 같은 이미지가 호러 장르의 영화에 주는 영향력은 굉장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 스틸이 아사를 연기하는 부분을 보세요. 납골당에 누워 지껄이기만 할뿐인 캐릭터가 이처럼 강렬한 성적 매력을 풍기는 영화도 찾기 힘들지요.

4.

제가 최근에 본 버전은 유럽 상영용 영어 더빙판입니다. 미국 상영판은 조금 잘렸고 더빙을 새로 하고 음악도 고쳐 달았으며 [사탄의 가면]이 너무 거칠다고 생각했는지, 제목도 [블랙 선데이]로 고쳐 달았습니다. 이 버전도 아주 오래 전에 텔레비전으로 보긴 했는데, 평가하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그 버전을 보기 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또 하나 살 생각도 없고요.

많은 이탈리아의 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도 사운드가 그저 그렇습니다. 더빙 역시 아주 좋다고는 못하겠어요 (어떤 사람들은 미국판 더빙이 더 낫다고 하더군요.) DVD가 다른 더빙 버전도 수록하고 있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다들 미진한 건 마찬가지였겠지요. 어느 나라말로 봐도 입이 안맞는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졌을 거예요. 하여간 더빙은 영화의 분위기를 깨는 요소들 중 하나입니다. (00/03/25)

★★★☆

기타등등

아까도 말했지만, 팀 버튼은 이 영화의 열렬한 팬입니다. 그는 바바라 스틸의 열성팬이기도 하죠. 특히 그의 최근작 [슬리피 할로우]에는 [사탄의 가면]의 영향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리자 마리가 연기한 레이디 크레인은 바바라 스틸과 무척 닮아 있고, (버튼이 리자 마리에게 끌린 것도 그 사람이 스틸과 조금 닮아서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레이디 크레인의 '철처녀' 장면은 [사탄의 가면]의 도입부를 그대로 인용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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