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풀 걸 Beautiful Girls (1996)

2010.02.18 22:26

DJUNA 조회 수:5684

감독: Ted Demme 출연: Timothy Hutton, Matt Dillon, Noah Emmerich, Natalie Portman, Lauren Holly, Rosie O'Donnell, Max Perlich, Martha Plimpton, Michael Rapaport, Mira Sorvino, Uma Thurman, Pruitt Taylor Vince, Anne Bobby, Richard Bright, Annabeth Gish

1.

할리우드가 다루는 고교 동창회 이야기는 우리 나라 관객들이 쉽게 몰입할 수 없는 소재 중 하나입니다. 그 동네와 우리 나라는 사정이 다르니까요. 우리 나라의 고교는 대학 입시를 위한 공장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학교는 성적과는 무관한 나름대로 계층 구조가 서 있는 작은 사회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동창회는 지나치게 가깝거나 아주 상관없는 일상의 부분입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고교 동창회는 몇 년 마다 찾아오는 중요한 행사입니다.

그 결과 동창회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리 나라 관객들에겐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학교에서 고정되었던 계급 구조는 사회에서 다져진 새로운 계급 구조와 충돌합니다. 고등학교 때 가지고 있었던 꿈과 현실의 충돌은 훨씬 가혹하고요. 성적우선주의인 우리야 졸업 전부터 체념하고 나가지만 그 동네는 또 그게 아니잖아요.

2.

술집 피아니스트인 윌리는 동창회를 맞아 그의 고향인 메사추세츠 나이츠 리지로 돌아옵니다. 그는 나름대로 중대한 인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변호사인 여자 친구와 결혼해야 할까요? 피아니스트를 때려치우고 세일즈맨으로 새로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동네에 남은 친구들은 그보다 더 처량한 꼴입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고등학교 때의 과거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데다, 벽에는 수퍼 모델 사진을 붙여 놓고 꿈이나 꾸고 있으니까요.

이런 꼴이니 그들의 연애도 제대로 돌아갈 리 없습니다. 토미는 왕년의 고등학교 때 인기에 매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옛 프롬 퀸인 유부녀 다리앤과 놀아나고 있고, 정착하길 겁내는 폴은 7년 동안 사귀어 온 잰과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눈 앞에 펼쳐진 현실을 인정하기엔 꿈이 지나치게 큰 것이지요. 그들보다 훨씬 또릿또릿한 동창생 지나는 플레이보이지를 흔들어 대며 전형적인 스코트 로젠버그식 연설로 이들의 문제점을 설명합니다. "가슴 크고 엉덩이가 작은 여자는 없어. 가슴 큰 여자들은 엉덩이도 크고 엉덩이가 작은 여자들은 가슴도 작아. 신은 공평해." 뭔 뜻이냐고요? 플레이보이지의 환상에서 깨어나 주변에 있는 진짜 여자들과 잘해보라는 소리죠. 서글프게도 그들은 아직까지 그 교훈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해 고심 중입니다. 그 때문에 주변 여자들의 속을 잔뜩 썩이면서요.

3.

[뷰티풀 걸]은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만큼이나 고전적인 스트레이트 커플들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죠. 한마디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버텨왔는지 모르겠어요. :-)

영화가 이들의 관계를 양쪽 모두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보여주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남자들의 이야기니까요. 그러나 각본가 로젠버그는 남자들이 지금까지 고집해왔던 수 많은 약점들에 대해 나름대로 유쾌한 해석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 대부분은 동네 페미니스트인 지나의 입을 통해 전달됩니다.

이런 성찰이 아주 완벽하지는 않아요. 로젠버그나 감독인 테드 드미도 남자인지라, 영화에는 그들의 판타지 역시 상당히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 나오는 여자들은 외모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모두 남자들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입니다. 진짜 세계라면 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을 걸요. 미라 소비노나 로렌 홀리 같은 여자들이 우글거리고 술집에서 조금 기다리면 우마 서먼이 들어오는 데다 심지어 옆집 꼬마도 나탈리 포트먼인 동네에서 수퍼 모델 판타지를 꿈꾸지 말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죠.

영화는 남자들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한참 지나가다 보면 얼렁뚱땅 또다른 판타지에 녹아버리는 것 같기도 해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결함이라면 결함일 겁니다.

4.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은 영화의 주 스토리와 가장 동 떨어져 있습니다. 아니, 로젠버그와 드미의 판타지만 따진다면 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건 윌리의 반짝 로맨스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집에 돌아온 윌리는 옆집에 사는 조숙한 소녀 마티를 만나고 그만 정신없이 반해버리고 맙니다. 윌리는 심지어 마티가 어른이 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까지도 해요.

작은 동네 버전 [롤리타]로 나가기 딱 좋은 설정이죠. 그러나 음흉한 설정에 비해 그 결과는 놀랄만큼 깔끔하고 공감갑니다. 그건 그 위태로운 설정에도 불구하고 두 주인공이 이런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길을 찾을 수 있을 만큼 영리하고 정직하기 때문이지요. 저희는 그들이 미래를 결정하는 스케이트 장 장면을 좋아한답니다. 윌리의 '푸우와 크리스토퍼 로빈' 연설은 늘 재치가 지나치게 앞서는 로젠버그의 대사답지 않게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5.

유명한 배우들이 득실거리는 영화지요. 우마 서먼, 티모시 허튼, 맷 딜런, 마이클 라파포트, 미라 소비노, 로지 오도넬... 그리고 이들의 앙상블도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배우만 따진다면 영화보다 더 알차다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이들 중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풋내기 나탈리 포트먼입니다. 캐릭터가 가장 눈에 뜨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포트먼의 야무진 연기가 관객들에게 주는 즐거움은 그 이상입니다. 물론 무척 예쁘게 나오기도 하고요.

포트먼을 뺀다면 로지 오도넬의 인상적인 등장도 주목할 만합니다. 하지만 지나는 진짜 캐릭터보다는 연설용 도구 같아요. (00/01/21)

★★★

기타등등

로젠버그가 [뷰티풀 걸]의 길을 계속 트지 않는 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요새 그의 행로를 보고 있노라면 그나마 있는 재능도 다 깎아먹는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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