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Mikael Salomon 출연: Rob Lowe, Andre Braugher, Donald Sutherland, Samantha Mathis, Rutger Hauer, James Cromwell 

지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한동안 79년도 미니 시리즈 [세일럼스 롯]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웠던 호러물이었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전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무섭게 보긴 했죠. 지금 봐도 그 때 그 기분이 느껴질까요? 아닐 거예요. 나중에 그 시리즈를 다시 본 사람들은 다들 저에게 그 때 기억을 간직하고 싶다면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하긴 호러물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죠. 세월과 함께 이전의 날카로운 맛을 잃어버리는 겁니다.

오늘 이야기할 [스티븐 킹의 세일럼스 롯]은 2004년에 만들어진 리메이크입니다. 원작은 당연히 같고 스토리도 비슷하죠. 벤 미어스라는 작가가 고향인 세일럼스 롯에 돌아옵니다. 하필이면 그 무렵 수상쩍은 골동품상이 마을의 폐허가 된 저택을 구입하고요. 저택에 새 주인이 들어온 뒤로, 마을 사람들이 한 명씩 죽어나가거나 실종되는데, 미어스는 그게 뱀파이어들의 음모라고 믿게 됩니다.

스티븐 킹의 원작 소설은 일종의 장르 게임입니다. 일단 그는 가장 뻔한 뱀파이어 설정을 골랐습니다. 유럽에서 온 사악한 뱀파이어가 랜필드식 조수의 도움을 받아 관에 실려 마을의 빈 저택으로 들어오는데, 그 뱀파이어를 죽이려면 나무 말뚝을 심장에 박거나 햇빛이 있는 쪽으로 끌어와야 한다는 거죠. 킹은 이 뻔한 설정을 메인 주의 스티븐 킹 랜드에 풀어놓고 자기만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재창조해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얼마나 노련한 장르작가인지 보란 말이야!"라는 선언 같아요.

물론 킹의 소설은 단순한 기교 과시가 아니었습니다. 그에겐 언제나처럼 할 말이 있었습니다. 그가 뱀파이어들을 끌어들인 세일럼스 롯은 결백한 작은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나태하고 어리석은 보통 사람들의 사악함이 지배하는 역겨운 곳, 한 마디로 킹이 체험했고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현대 사회의 축소판이었죠. 킹의 관점에 따르면, 뱀파이어 발로우는 원래부터 그들이 품고 있던 자멸의 씨를 흔들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잘로몬의 미니 시리즈는 킹의 비전을 완벽하게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그럴 시간이 없지요. 아무리 미니 시리즈가 극장용 영화보다 시간 여유가 있다고 해도 어울리는 속도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따르려면 스티븐 킹이 차갑고 냉정하게 그려낸 현대 미국 사회의 지저분하고 사악한 일상의 디테일을 포기하고 주인공의 액션에 치중해야 합니다.

그걸 고려해 보면 미니 시리즈는 자기 역할을 썩 잘해낸 편입니다. 시리즈가 시대에 맞게 살짝 업데이트시킨 2004년 버전 세일럼스 롯은 금지된 욕망과 진부한 추악함 그리고 구원받을 만한 소수의 선의가 적당한 비율로 섞여 있는 곳으로, 이 정도면 킹의 주제가 비교적 잘 살아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스타일도 나쁘지 않습니다. 일단 촬영감독 출신 감독의 작품답게 비주얼이 괜찮습니다(잘로몬이 일급 촬영감독 자리를 버리고 십여 년 넘게 이급 감독 노릇에 만족하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지만요). 발전한 특수효과와 분장 덕택에 영화가 그리는 뱀파이어들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엄청나게 무섭지는 않지만... 79년도 버전도 지금 보면 특별히 더 무섭지는 않을 거예요. 배우들도 적절하게 캐스팅된 편입니다. 발로우 역의 루트거 하우어는 노스페라투 짝퉁 같았던 오리지널 발로우보다 덜 튀지만 더 무섭고요.

단지 21세기 초로 시대배경을 옮기자, 원작의 고립감이 많이 사라져버렸습니다. 70년대엔 고립된 한 마을이 뱀파이어들에게 점령된다는 설정이 통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시대입니다. 그런 완벽한 고립은 설득력이 없지요. 원작과는 달리 주인공 벤의 해결책도 그렇게 와닿지가 않고 벤의 회상으로 전개되는 액자 구성도 조금 얇다는 느낌이 듭니다.

리메이크 버전 [세일럼스 롯]은 비교적 잘 만들어진 미니 시리즈입니다. 하지만 원래부터 스티븐 킹 원작 미니 시리즈의 평균적인 완성도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죠. 어딘가에 보이지 않는 벽 같은 게 있나 봅니다. 아마 그건 원작자의 간섭일지도 모르죠. (06/03/22)

★★☆

기타등등

맷 버크의 동성애 성향은 오해를 살 위험이 있습니다. 버크는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의 성적 욕망이 마을의 다른 사악함과 묶여 도매금으로 취급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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