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림 Scream (1996)

2010.02.08 23:43

DJUNA 조회 수:4677

감독: Wes Craven 출연: Neve Campbell, Courteney Cox, Skeet Ulrich, Rose McGowan, David Arquette, Jamie Kennedy, Matthew Lillard, Drew Barrymore

1.

슬래셔 무비는 어리석은 장르입니다.

욕이 아닙니다. 단지 이 장르의 작품들에서 어떤 논리나 치밀한 구성 따위를 찾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라는 말입니다.

슬래셔 무비가 노리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지 두뇌는 아닙니다.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놀래키고 겁먹게 하고 허탈한 웃음을 터트리게 할 것인가이지 이치가 닿는 설명이나 철학 따위가 아닙니다. 따라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려면 '어리석게'구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쓸데없이 이치를 따지다간 타이밍을 놓치고 맙니다.

슬래셔 무비가 짧은 유행으로 끝났던 것은 슬래셔 무비 제작자들이 어리석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장르가 아주 좁은 구멍을 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치광이 살인마가 연달아 틴에이저들을 죽이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내용의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결과 그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게 되고 클리셰를 양산합니다. 일반 관객들의 외면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진부함에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습니다. 장르 관객들을 흥분시키고 매료시키는 것은 바로 장르 특유의 진부함입니다. 싸구려 호러 팬들이 가면 쓴 살인마가 쿵쿵거리며 다가오는 것을 보고 열광하는 것은, 왕가위 팬들이 스탭 프린팅을 보고 열광하는 것과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기대하면서 영화를 보러 왔으니까요.

2.

[스크림]이 그렇게 많은 관객들과 비평가들을 매료시켰던 이유는 이 영화가 '메타 호러'였기 때문입니다. [스크림]은 호러 영화이기도 하지만 호러 영화에 대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스크림]은 바보같은 장르 규칙을 따르는 동안에도 그 규칙을 관객들 코 앞에 들이밀고 정의하고 고찰하고 인용하고 뒤집습니다.

메타 장르 영화는 참으로 편리한 도구입니다. 적어도 처음 몇 번은요. 비평가들한테는 한동안 레테르(메타 장르, 해체 주의, 자기 패러디, 혼성 모방... 아무 이름이나 대요!)를 붙이며 놀 수 있는 장난감을 제공해줍니다. 장르 영화팬들에겐 친숙하게 가지고 놀던 지식과 게임을 공유하며 새롭게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나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보다 일반적인 것입니다. 이런 자기 해체는 영화를 '영리하고 사실적으로' 만듭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호러 영화의 어리석은 플롯'을 견디지 못하는 관객들까지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스크림]은 상당히 이치에 닿는 호러 영화입니다. 물론 추리소설 팬들이라면 구멍이 꽤 많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사실 봐줄만한 것입니다. [스크림]에서 진행되는 사건들은 모두 그럴 듯한 당위성을 깔고 있습니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장면은 아마 시드니가 첫 번째로 살인마와 만나는 장면일 것입니다. 시드니는 '현관으로 나가면 될텐데 2층으로 달아나는 바보같은 가슴 큰 여자들'과 같은 호러 영화의 클리셰를 비웃는데, 나중에 그녀는 정말로 살인마한테 쫓겨서 2층으로 달아납니다! 그건 시드니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우연히 상황이 그렇게 전개되었거나 아마도 살인마가 일부러 그녀를 2층으로 몰아붙였기 때문이지요 (후자 쪽이 맞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살인마는 의식적으로 장르 전통을 따르려고 하고 있으니까요.)

하여간 이 장면에서 시드니는 '일반 호러 영화의 가슴 큰 여자들'보다 똑똑합니다. 일단 어리석어서 2층으로 달아나는 것이 아니며, 2층으로 달아나는 도중에도 자기가 바로 그런 '어리석은' 상황에 말려들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살인마나 관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자, 관객, 살인마 모두 그 진부함을 느끼면서 거기서 새로운 흥분을 발견합니다. 참으로 장르 재활용의 성삼위일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3.

"자연은 예술을 모방한다"라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습니다. 의도는 그렇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 영화 검열관들이 좋아하는 말이 되어 버렸지요. 정말 호러 영화는 반사회적인 인물들을 양산할까요?

이 영화에서 살인마는 나름대로 호러 영화를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해요. "호러 영화는 살인마를 만들지 않아. 단지 살인마를 더 창조적으로 만들지."

아마 그럴지도 모르죠. 또 아닐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런 내용을 다루었다고 해서 [스크림]을 '반사회적'인 영화로 규정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크림]은 [경찰청 사람들]과 다릅니다. 구체적인 살인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예술과 모방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옛 논쟁에 새 불을 당겨주었으니 검열관들 쪽에서 고맙다고 해야지요. 성공적인 호러 영화들이 대부분 관객들이 원래부터 마음 속에 품고 있던 두려움을 끄집어 낸 작품이란 걸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검열관들을 위한 공포 영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예술을 모방하는 추종자'로서의 살인마가 영화를 더욱 섬뜩하게 만든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그건 살인마가 영화를 보고 모방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이 더 무섭다'라는 단순한 장르 계명을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입니다.

4.

그랑프리 극장에서 시사회로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역시 이런 영화는 극장에서 직접 보는 것이 효과가 큽니다. 화면에 꽉 들어찬 와이드 스크린과 관객들의 요란한 비명은 이 장르에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무삭제'라고 광고를 해대는데,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기억력은 그렇게 좋지가 않거든요. 하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자막판보다는 짧을 걸 각오해야 할 거예요. 국내에 돌아다니는 비짜 자막판들은 감독판 LD를 복사한 것이니까요. 구체적인 차이는IMDb의 Alternate Versions for Scream에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몇몇 문화코드가 와 닿지 않는 것이 보이더군요. 예를 들어 이 영화에 등장하는 교장 선생 역의 배우는 [해피 데이즈]의 폰지를 연기했던 헨리 윙클러인데, 국내 관객들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클루리스] 인용도 영어 뉘앙스가 번역되지 못했던 여기에선 먹히지 않고요. 'Liver alone'과 같은 영어식 말장난이 통하지 않는 것도 당연합니다.

자막 번역은 아주 나쁩니다. 오역이 그득하군요. '30초 지연'을 계속 '30초 늦었다'로 번역하고 있고 영화 상식도 부족해서 인용들을 계속 오역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캐리]에서는 돼지피를 썼어"죠. 제대로 번역하려면 "[캐리]에서는 콘 시럽을 돼지피 대용으로 썼어" 쯤이 되어야 합니다.

실수투성이일 뿐만 아니라 방만하기도 합니다. 시드니의 첫 번째 위기에서 '2층으로 달아나는 여자' 운운의 대사를 '그냥 달아나는' 정도로 밋밋하게 처리해서 영화의 유머를 반감시켰습니다. 핀슬리 교장이 프레디 크루거 옷을 입은 웨스 크레이븐을 보고 "당신이 아니오, 프레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프레디'라는 이름을 지워버린 것도 어리석은 실수입니다. 그런 주제에 또 무슨 친절에서인지, 테이텀의 '웨스 카펜터 영화' 운운의 대사를 '웨스 크레이븐'으로 교정까지 해주는군요.

시드니의 대사인 "내 운으로는 토리 스펠링 영화가 제격일 거야"를 그냥 넘긴 것도 불만입니다. 물론 문화 갭이 자리잡고 있지만 2편과의 연결고리가 되는 대사니까요.

번역자는 "당근이지" 따위의 속어를 끼워넣는 데 정신을 파는 대신 공부나 좀 더 했어야 했어요. 비짜 비디오 번역이 백 배 낫습니다. (99/01/13)

★★★

기타등등

이 영화에서 호러 영화를 본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장면은 시드니와 카메라맨 케니가 몰래 카메라로, 살인자가 희생자의 등 뒤에서 접근하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희생자에게 외칩니다. "뒤를 봐!" 아무도 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린 얼마나 자주 이런 고함을 질러댔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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