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George Lucas 출연: Liam Neeson, Ewan McGregor, Natalie Portman, Jake Lloyd, Ian McDiarmid, Pernilla August, Anthony Daniels, Kenny Baker, Frank Oz, Terence Stamp, Brian Blessed, Ray Park

1.

시리즈 SF의 우주가 순식간에 창조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머리 속에 대충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치더라도 살이 붙고 수정되고 깊이를 더하는 과정은 점진적인 창작을 통해 일어납니다. 몇몇 우주들은 특별히 단일 우주를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어쩌다 생기죠. 아시모프나 하인라인의 미래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특히 아시모프 영감은 일관성을 의도하지 않고 멋대로 썼다가 나중에 그걸 끼워 맞추느라 노년을 다 허비하고 말았죠.

[스타 워즈]의 우주라고 예외일 건 없습니다. 루카스가 영화 만들기 전부터 대충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짜 역사는 영화의 집필과 제작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아이디어와 손에 잡히는 영화는 결코 같지 않으니까요.

시리즈가 연대기 순으로 나간다면 이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니, 문제가 전혀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적다는 거죠. 첫번째 [스타 워즈] 3부작만 해도 일관성에 문제가 있는 게 한 둘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대충 넘어갑니다.

하지만 프리퀄이라면 문제가 큽니다. 전편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더 많다는 거죠. 미래가 이미 고정되어 있기 때문에 스토리의 발전 가능성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반전을 만들기도 힘들고 캐릭터는 고정된 역사 속에 박제되는 꼴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충실하게 비주얼적인 면까지 일관성을 지키다가는 창작자의 원래 가능성까지 제한당할 겁니다. 하인라인이나 르 귄처럼 같은 역사를 배경에 깐 독립적인 작품을 쓰는 대신 중심 역사를 다루는 삼부작을 만든다면 그 제한은 더 심각해집니다.

[에피소드 1]은 이런 제한을 극복했을까요?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캐릭터들은 미리 정해진 길을 허겁지겁 따르느라 여유있는 캐릭터 발전의 기회를 잃었습니다. 스토리는 전편의 명성에 눌려 지나치게 종속적이고 심지어 전편의 자기 복제까지 해댑니다. 모두가 결말을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 스토리에서 어떤 신선함을 찾아보기도 힘듭니다.

그렇다고 프리퀄에 단점만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스토리의 신선함이 없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새 것'에 그렇게 집착한 것도 얼마되지 않지요. 그리스 관객들은 외디푸스의 운명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알고 있었지만 소포클레스의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관객들도 리처드 3세가 마지막 전투에서 죽는 다는 걸 알면서도 글로브 극장으로 그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왕과 비]와 같은 사극을 보는 관객들도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다 알고 있습니다.

신선함이 없다는 것은 친숙하다는 말과 같습니다. 친숙함은 상당한 장점입니다. [스타 워즈] 우주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우주 속에서 친숙한 (그러나 사극의 줄거리보다는 훨씬 열려있습니다) 이야기가 친숙한 사람들에 의해 끌어가는 걸 보면서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도 타피스트리의 한부분을 짜는 듯한 이런 이야기 구조는 상당한 장점입니다. 각본의 갑갑함을 어느 정도 보충해주지요.

그러나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고저가 없고 밋밋하게 흐르기만 하는 스토리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는 좋은 공동 각본가의 도움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이기 때문에 더욱 아깝습니다.

사실 루카스는 그렇게 기교가 능한 각본가는 아닙니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4]는 그의 각본 실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이지요. 유쾌하고 활달하지만 평면적이고 단순합니다. [제국의 역습]의 복잡한 드라마는 리 브라켓과 로렌스 캐스단과 같은 훌륭한 각본가의 도움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습니다. [에피소드 1]도 능력있는 스크립트 닥터가 뻔한 대사들을 맵시있게 수정하고 필요없는 부분을 잘라냈더라면 훨씬 날씬해질 수 있었을 겁니다.

2.

[에피소드 1]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그 비주얼적인 요소입니다. 냉소적인 비평가들은 특수효과로 떡칠을 했다고 하겠지만 특수효과가 많이 쓰였다는 것은 그만큼 영화팀의 시각적 상상력이 제한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개를 폈다는 뜻도 됩니다.

[에피소드 1]에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구경 한 번 잘했네!"라고 외칠만한 근사한 구경거리들이 가득합니다. 성격이 뚜렷한 세 행성을 누비면서 '팔도유람'을 하다보면 스토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입니다. 솔직히 말해 나탈리 포트먼의 패션쇼만 구경해도 본전은 찾을 수 있습니다. 미학적 과부하가 염려될 정도죠.

동적인 구경거리들도 있습니다. 가장 큰 부분은 [벤 허]를 [스타 워즈] 식으로 업데이트한 포드 경주 장면입니다. 콰이곤 진, 오비원 케노비, 다스 몰이 벌이는 광선검 결투는 시리즈의 어떤 작품보다도 박진감이 넘칩니다.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탄생한 배틀 드로이드나 겅간 족들은 분장의 한계 속에 갇혀 있던 로봇과 외계인들에게 새로운 자유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체적 긴장감은 떨어지는 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액션이 자그만치 세 군데로 나뉘어져 집중하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 벌리기'는 액션의 거대함을 과장하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클라이맥스를 약화시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액션 둘을 줄이고 하나만 강조하는 편이 나았을 걸 그랬어요.

특히 우주전 장면은 문제가 많습니다. 9살 짜리 주인공을 전쟁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다보니 어쩔 수 없었던 거죠. 이 장면은 순전히 일련의 우연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없고 거의 허무하기까지 합니다. 차라리 자자 빙스의 운좋은 무공 쪽이 웃는 재미나 있죠.

3.

제이크 로이드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에 적역이었는가는 의문입니다. 이 친구는 동글동글 귀엽기만 할 뿐 어린 시절의 다스 베이더가 가져야 할 것 같은 모호함과 이중적인 면은 없기 때문입니다.

유안 맥그리거가 낭비되었다고 하는 평이 많은데, 이건 아직 섣부른 판단이라고 봅니다. [에피소드 1]은 도입부일 뿐이니까요. 시리즈 전체로는 중요한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도입부에서는 역할이 작을 수도 있습니다. 맥그리거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요.

리암 니슨은 그럴싸한 위엄을 보여주고 콰이곤 진이라는 캐릭터도 꽤 그럴 듯하게 구현되어 있습니다. 니슨과 콰이곤 진은 이 영화에서 가장 존재감이 큰 존재입니다.

나탈리 포트먼은 비교적 좋습니다. 그 묵직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질질 끌고 다니면서도 너무 이른 나이에 중책에 오른 조숙한 소녀의 고뇌를 상당히 공감가게 그려냅니다. 물론 이 친구가 가장 편하게 연기하는 부분은 메이크업과 작위적인 악센트를 벗고 파드메 파트를 연기할 때입니다.

다스 몰 역의 레이 파크는 광선검을 휘두를 때는 날고 기고 폼도 잘 잡지만 캐릭터의 비중이 폼에 비해 너무 작습니다.

CG 배우 자자 빙스에 대해서는... 글쎄요. 이 친구는 굉장히 노출이 심한 코믹 연기를 하기 때문에 아주 어필할 수도 있고 신경을 박박 긁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어땠냐고요? 저희는 그렇게까지 이 캐릭터가 싫지는 않았지만 짜증날 만한 장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었지요.

4.

자자 빙스와 겅간 족 묘사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이들이 인종차별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외계인들한테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 같기 때문이지요.

로저 이버트는 이런 PC 경찰들이 지겹다고 하겠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영화가 꼭 PC하라는 법은 없습니다만 적어도 꽤 PC해진 현대 관객들에겐 이런 스테레오 타입이 그렇게 편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으니까요. 루카스도 슬슬 외계인 캐릭터를 묘사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5.

[에피소드 1]은 소문만 무성한 범작일까요? 글쎄요. 이 영화는 나름대로 덩어리가 꽤 많은 영화입니다. 관객 동원도 예상보다 적다고 할 수도 없고요.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넷 마슬린이나 로저 이버트와 같은 '두목격'의 비평가들은 영화에 꽤 호의적이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이 사람들의 평부터 기억할테니 비평적 성과가 그렇게까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희의 의견은 어떠냐고요? 판단을 유보하고 싶습니다. 어느 정도 자기 완결적이었던 [에피소드 4]와는 달리 [에피소드 1]은 철저하게 시리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리즈가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알려면 적어도 다음 편은 나와야 합니다. 뒤의 에피소드들이 잘 움직여진다면 [에피소드 1]의 가치도 덩달아 올라가겠지요. (99/06/29)

★★★

기타등등

이티, 또는 이티를 닮은 외계인 세 명이 잠시 나옵니다. [윌로우]의 타이틀롤을 했던 워윅 데이비스의 카메오를 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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