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백과 축영대 Liang Shan Ba yu Zhu Ying Tai (1963)

2010.01.31 01:09

DJUNA 조회 수:3410

감독: Li Han Hsiang 출연: Betty Loh Ti, Ivy Ling Po, Miao Ching, Yanyan Chen 다른 제목: The Love Eterne

[양산백과 축영대]는 두 불운한 연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유명한 중국 설화로, 이 이야기는 이 영화말고도 상당히 많은 매체로 옮겨졌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극이 [양축]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한 적 있고 이들을 주제로 한 유명한 음악 작품도 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이 이야기를 다룬 [양산백전]이라는 고전소설이 쓰여지기도 했고요.

내용은 비교적 간단해요. 우리의 주인공 축영대는 남자로 변장을 하고 항주의 학당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학당으로 가는 동안 만난 양산백과 의형제를 맺게 되지요. 3년 뒤 축영대는 부모의 강요에 못이겨 집으로 돌아가고 축영대가 여자라는 것을 알게 된 양산백은 청혼하려 하지만 축영대의 집안에서는 이미 마태수라는 실력자의 바람둥이 아들과 딸을 맺어주려 하고 있었죠. 좌절한 양산백은 병에 걸려 죽고 축영대도 그 뒤를 따릅니다. 나중에 둘은 나비가 되어 하늘에서 맺어진답니다. 한마디로 반은 [옌틀]이고 반은 [로미오와 줄리엣]인 이야기지요. 이런 식으로 꼭 서구 문학 작품들과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말이에요.

이한상의 영화는 유명한 중국 황매극을 원작으로 삼은 뮤지컬 영화입니다. 영화 전체가 노래로 가득하죠. 이 영화가 나왔을 무렵엔 이 영화의 노래들을 모두 담은 네 장 짜리 LP 세트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고 하더군요. 배우들 역시 사실적인 연기 대신 중국 황매극의 양식적인 스타일을 이용하고 있고요.

영화의 전체적인 스타일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할리우드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각색물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보다 순진하고 소박하지만 와이드스크린 화면을 거대한 무대처럼 사용하는 기본 개념은 같죠. 사실 당시의 이런 영화들이 더 와이드스크린 영화답게 느껴지지 않나요? 요새처럼 비디오 시장과 타협하는 수퍼 35밀리 영화들에겐 옛 와이드 스크린 영화들의 꽉 찬 듯한 느낌이 부족하지요.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귀엽고 예쁩니다. 영화는 아무런 안전망 없이 두 연인들의 기쁨과 좌절을 그대로 토해내기 때문에 저처럼 냉소적인 시대를 사는 현대 관객들에게는 굉장히 순진하게 느껴지거든요. 고도로 세련된 장르 테크닉과 수사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영화가 학예회처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일 거예요.

이 결백한 느낌의 가장 큰 원인은 남자 주인공 양산백역을 여자배우인 능파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졌던 60년대의 중국 영화에서는 이런 종류의 러브 스토리에서 여자배우가 남자역을 연기하는 건 당연한 전통이었다더군요. 역시 무대 전통이 영화로 옮겨진 것이지요. 이런 종류의 캐스팅엔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야기의 성적인 느낌을 제거하고 남성 캐릭터를 이상화시키는 것이죠. 둘 다 순진무구하기 짝이 없어요.

하지만 이런 캐스팅은 옛 중국인들의 성적 수줍음만을 투영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동성애의 개념에 익숙한 현대 관객들은 이 키스신 하나 없는 수줍은 영화에서 복잡한 이중의 서브텍스트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능파는 그냥 여자주인공을 상대로 남자주인공으로 연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로 변장한 여자주인공을 상대로 남자주인공을 연기하지요. 능파와 낙체의 연기나 분장엔 기본적으로 어떤 차이도 없습니다. 영화를 중간부터 본 관객들은 누가 진짜 남자로 행세하고 누가 남자로 변장한 여자로 행세하는지 한참동안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오히려 낙체보다 키가 조금 작고 어려보이는 능파가 더 여성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가끔 나오는 남성적인 제스처도 오히려 그런 여성성을 강조하기만 하거든요. 결정적으로 양산백의 죽음을 묘사하는 능파의 마지막 연기를 보세요. [라 트라비아타]가 따로 없죠!

결과는 흥겹습니다. 영화는 두 이성애자들의 러브스토리를 그리고 있지만, 정작 결과는 두 남자들의 러브스토리나 두 남자들로 분장한 두 여자들의 러브스토리처럼 보입니다. 특히 축영대가 양산백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서 온갖 성적인 암시로 그를 유혹하는 유명한 장면을 보세요. 뒤섞인 서브텍스트가 넘쳐 폭발할 지경입니다.

물론 당시 관객들은 그런 데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이 영화는 온갖 순수한 감정들으로 가득 차 있는 진솔한 러브스토리였지요. 그리고 별별 잡생각들로 머리가 가득한 저와 같은 현대 관객들에게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영화의 순진함에 끊임없이 미소지었고 만드는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을 서브텍스트들을 가지고 신나게 놀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철철 넘치는 감정을 놓치지도 않았단 말이에요. (03/07/15)

★★★

기타등등

1. 이 작품은 이안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라더군요. 여기로 가면 이안이 뉴욕 타임즈와 가진 흥미로운 인터뷰가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참, 읽으시려면 가입을 해야 해요.

2. 온라인에 [양산백과 축영대]의 번역본이 떠 있군요. 여기로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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