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스러운 여인 The Mysterious Lady (1928)

2010.01.31 22:37

DJUNA 조회 수:3891

감독: Fred Niblo 출연: Greta Garbo, Conrad Nagel, Gustav von Seyffertitz, Albert Pollet, Edward Connelly

그레타 가르보가 연기한 타냐 페도로바는 비엔나에서 활약하는 러시아 스파이입니다. 칼 폰 라덴 대위는 타냐와 사랑에 빠지지만 비밀 경찰 우두머리인 삼촌에게서 타냐의 정체를 알게 되고 배신감을 느끼죠. 자기에게 모질게 대하는 대위에게 역시 배신감을 느낀 타냐는 그가 운반하는 비밀 서류를 훔치고 대위는 체포됩니다. 다행히도 삼촌 빽으로 몰래 빠져나온 대위는 피아니스트로 변장해 러시아 스파이들의 아지트인 바르샤바의 카페에 잠입하죠. 진짜 내부 스파이의 정체를 밝히고 타냐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요.

[신비스러운 여인]의 소재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 벌어졌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연합제국과 러시아 제국의 첩보전입니다. 1920년대 말의 평범한 미국 관객들은 어느 쪽을 응원했을까요? 답은 '신경쓰지 않았다'입니다. 영화는 스파이물이지만 정치나 역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레타 가르보라는 여신을 주인공으로 한 로맨스의 역학에만 집중하고 있지요. 한 마디로 어느 한쪽의 나라가 악당인 구조가 아니라, 젊고 예쁜 두 연인이 선한 쪽이고 그들을 갈라놓는 재수없는 영감탱이가 나쁜 놈인 구조인 것입니다.

어떻게 봐도 그렇게 깊이있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첩보물로서 가장 약한 부분은 주인공들이 임무와 충성심, 연애에 대해 느끼는 갈등이 피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나마 있는 갈등도 몽땅 여자 쪽으로 치우쳐져 있지요. 남자 주인공은 그냥 이전처럼 충성스러운 제국의 신하 노릇만 하면 되고, 사랑 때문에 조국을 배반해야 하는 건 순전히 여자 몫이에요. 물론 그런 구석으로 주인공을 몰고 간 건 직장 상사인 치사한 러시아 장군이지만요. 하여간 아무리 그래도 웬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그래도 덕을 보는 건 가르보입니다. 콘라드 네이글이 연기한 칼 폰 라덴 대위는 가르보에게 가르보 연기를 할 대상 이상의 존재가치는 없죠. 배우가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부터 가르보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영화라 아무리 좋은 배우라도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가르보는 유혹하고 사랑에 빠지고 갈등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고 호소합니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내내 무성영화 디바 특유의 광채를 발산하죠.

감독인 프레디 니블로는 거의 절정에 이른 할리우드 무성영화의 테크닉을 느긋하게 취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로 튀지는 않을지 몰라도 무척 여유롭고 재미있는 시도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무성영화이면서 푸치니의 [토스카]에 나오는 아리아(십중팔구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일 것 같은데)를 그럴싸한 사랑의 테마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지요. DVD에서는 비벡 마달라가 작곡한 새 음악이 그 노래를 덮어버렸지만요. (07/05/08)

★★☆

기타등등

루돌프 아른하임이 [예술로서의 영화]에서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한 적 있죠. 그 때 이 영화의 제목을 처음 접했습니다. 후반에 인용된 장면이 나오니까 괜히 반갑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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