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과 괴물들 Gods and Monsters (1998)

2010.02.06 10:37

DJUNA 조회 수:3711

감독: Bill Condon 출연: Ian McKellen, Brendan Fraser, Lynn Redgrave, Lolita Davidovich, David Dukes, Kevin J. O'Connor 다른 제목: 갓 앤 몬스터 

제임스 웨일이라는 영국 남자를 아시는지요? 물론 할리우드 영화사에 익숙한 대부분 영화팬들은 웨일이라는 이름에서 옛 유니버설 호러 영화의 익숙한 분위기를 떠올릴 겁니다.[프랑켄슈타인][프랑켄슈타인의 신부][투명인간]과 같은 걸작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니까요. 할리우드 역사에 조금 더 익숙한 분들이라면 웨일이 할리우드에서 공공연한 동성애자로 살아온 몇 안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기억해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조금 더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이라면, 이 남자가 1957년 5월 29일, 자기집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사실도 아시겠지요.

웨일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검시 결과 혈관에서 다량의 알콜이 나왔다고 하고요. 하지만 웨일의 평판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에 뭔가 더 있다고도 생각했었답니다.

소설가 크리스토퍼 브램은 그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아버지]에서 그 빈 공간을 이용했습니다. 적당히 상상력을 동원해서 제임스 웨일의 마지막 나날들을 재구성한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을 영화화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신들과 괴물들]입니다.

이 영화에서 웨일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노인네입니다. 늙은 뇌는 슬슬 망령을 부리기 시작해서, 눈치 없이 툭툭 튀어나오는 그의 옛 기억은 끊임없이 현실 세계와 뒤섞입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제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경험, 그가 최대 걸작인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를 만들던 당시의 할리우드, 그의 풀장에 뛰어들던 젊은 남자들의 싱싱한 육체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건장한 전직 해병대원인 정원사 클레이 분이 들어옵니다. 웨일은 그에게 모델 일을 제안하고 웨일과 클레이 사이에는 분명히 정의하기 힘든 이상한 우정이 시작됩니다.

이 영화가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걸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야기 자체가 모호하기 짝이 없으니까요. 영화는 웨일의 회상을 통해 그의 삶을 재구성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클레이 분과 웨일의 관계를 통해 [롱 아일랜드의 사랑과 죽음] 식 스토리를 전개하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분명한 무게가 실려 있지 않아요. 클레이 분의 극중 역할도 분명치 않고요. 웨일은 그를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를 자살 도구 쯤으로 여기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를 통해 그가 오래전에 창조한 괴물의 부활을 보고 있는 걸까요? (브렌든 프레이저를 보면 정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닮기도 했습니다. 그 머리 모양이며, 커다란 덩치며, 뻣뻣한 동작이며...)

하지만 뜬금없이 늘어놓은 이런 이야기들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일단 우린 예술가로서의 제임스 웨일이라는 남자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게 됩니다. 그와 함께 1930년대 당시 할리우드 영화계의 동성애자 사회에 대한 상세한 지식을 얻을 수도 있죠. 호러 팬들은 [프랑켄슈타인의 신부]의 촬영 당시가 정교하게 재현되는 장면을 보고 황홀해할 수도 있습니다. 조지 큐커, 엘자 랭케스터, 보리스 칼로프와 같은 실존 인물의 그럴싸한 부활 역시 훌륭하고요. 뜬금 없다고 불평했지만 해도 이 망령난 영감의 꿈결같은 기억의 조합에는 서글픈 아름다움이 묻어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핵심은 이언 맥켈런 영감의 존재입니다. 맥켈런이 그려내는 망령난 동성애자 영감은 너무나도 강렬하거든요. 이미 잊혀져 가는 자신의 경력을 은근 슬쩍 내비치며 젊은 남자의 관심을 끌려는 그 수줍은 터치부터 모델이 된 클레이를 노려보는 뱀처럼 음흉한 표정까지 어쩜 저렇게 절묘할 수 있는지 몰라요.

맥켈런의 헝가리인 하녀를 연기하는 린 레드그레이브의 연기 역시 훌륭합니다. 브렌든 프레이저에 대해서는 그의 괴상함과 종종 축축한 게이 어필을 과시하는 그의 이미지가 상당히 잘 활용된 경우라고 말해야겠죠.

부분의 합이 전체보다 큰 영화도 있고 같은 영화도 있습니다. [신들과 괴물들]은 후자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그 조각들이 이처럼 흥미로우면 별로 불평을 하고 싶어지지 않습니다. (01/02/20)

★★★

기타등등

미국이 무대인 미국 영화지만 굉장히 영국풍인 작품입니다. 원작자, 주인공, 주연 배우들까지 모두 영국인이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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