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게돈 Armageddon (1998)

감독: Michael Bay 출연: Bruce Willis, Billy Bob Thornton, Ben Affleck, Liv Tyler, Will Patton, Steve Buscemi, William Fichtner, Owen Wilson, Michael Clarke Duncan, Peter Stormare

얼마 전에 [딥 임팩트]와 [아마게돈]을 다시 비디오로 보았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보니까 대충 입장이 정리가 되더군요. 냉소주의가 가라앉은 뒤 본 [딥 임팩트]는 훨씬 낫게 느껴졌고 특수효과의 공습이 줄어든 비디오로 본 [아마게돈]은 그만큼이나 형편없게 느껴졌습니다.

[아마게돈]은 제리 브룩하이머 식 블록버스터의 자만심이 극도로 부풀면 어떤 꼴이 되는지를 증명하는 단도직입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 종말 위기'라는 커다란 소재에 도취된 나머지 이 영화는 정말 질 따위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습니다.

영화가 개봉되기 전부터 그 징조가 보였습니다. [아마게돈]의 예고편들은 98년에 나온 예고편들 중 가장 형편 없었습니다. 특히 리브 타일러와 벤 애플렉의 러브 신에서 지구를 구하는 용사들의 활약으로 더듬거리며 이어지는 첫 번째 예고편은 한마디로 조소감이었죠.

영화가 개봉되자 예고편이 영화를 그대로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영화 내용이 너무나도 너절해서 공들인 특수 효과와 비싼 배우들이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돈들인 마케팅 때문에 영화는 상당한 흥행 성적을 올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가 지루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죠.

브룩하이머의 자아 도취는 여러 수많은 재앙을 초래했는데 그중 가장 끔찍한 것은 그 방만함이었습니다. 방만함은 브룩하이머식 여름 블록버스터의 특징이기도 했지만 이 영화는 도가 지나쳤죠. 이 영화는 발 루튼이라면 영화 하나를 끝내고도 남았을만한 시간을 낭비해가며 발사 이전을 묘사하는데 그 지루함은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브룩하이머와 베이는 이런 도입부가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내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죠. 그들은 지구를 구하는 엄청난 인물들이므로 당연히 관객들도 집중할 거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너무나도 노골적으로 뻔하게 폼을 잡아서 웬만한 지능지수를 가진 관객들은 그렇게 잘 속아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나머지 부분도 시간 낭비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건 꼭 한가한 방만함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브룩하이머는 자아도취에 빠져 몰랐지만 [아마게돈]의 소재는 스토리를 끌어가기에 결코 좋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주 액션은 소행성에 구멍을 뚫고 폭탄을 집어넣는 겁니다. 아주 단순할 뿐만 아니라 지루하죠. 여기엔 어떤 대결구도도 없습니다. 당연히 이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다양한 사고들이 등장하는 거죠. 우주 정거장의 폭발 사고, 우주선의 추락, 내부의 의견 충돌...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빈 러닝타임을 채우기 위해 임시방편으로 동원된 것들이기 때문에 한꾸러미로 단단하게 묶는 게 쉽지 않습니다. 브룩하이머는 사이즈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소행성 폭파라는 소재가 얼마나 빈약한지 몰랐던 거죠. 이건 두 번째 재앙입니다.

세 번째 재앙은 터무니 없는 똥폼입니다. [더 록]이나 [콘 에어]도 상당했지만 [아마게돈]은 끔찍한 수준이었죠. 특히 브루스 윌리스의 똥폼은 국내 관객들로부터 '미우월주의 알레르기'를 자동적으로 툭 튀어나오게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이 똥폼이 끔찍했던 진짜 이유는 '미우월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사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이 나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윌리스의 캐릭터가 선택한 희생도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습니다) 그 똥폼이 빈약한 내용과 졸렬한 캐릭터들이 정당화하기엔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딥 임팩트]와 [아마게돈]의 대결로 돌아간다면, 박스 오피스 성적이 어쨌던, 누가 먼저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냈건, 결국 진짜 승자는 [딥 임팩트]였습니다. [아마게돈]의 노골적인 단점들은 [딥 임팩트]가 얼마나 그 빈약한 소재를 잘 꾸려냈었는가를 증명하는 증거였으니까요.

이 대결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무생물의 기계적인 충돌은 결코 보기만큼 다루기 쉬운 영화 소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99/02/20)

★★